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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6)

31 십 삼년 만에 보내려는 편지는 쓰는 데도 오래 걸렸다. 오빠의 아내, 오빠의 여자를 묻다가 그만 편지를 멈추고 말았다. 어릴 적에 그랬듯이, 답답한 숨통을 터주던 우표첩을 꺼냈다. 많은 우표 중에 하나가 눈길을 잡았다. 한 남자가 자전거 안장에 올라탄 것처럼 긴 버스 위에 걸터앉아있었다. 보고 그대로 그렸다. 오빠가 그려졌다.

 

네가 그런 말 안 했으면 그날...

 

미국으로 떠나기 몇 개월 전 늦은 저녁 무렵, 집으로 가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오빠를 우연히 만났다. 앞에 걸어가는 오빠를 따라갔다. 위아래 감청색 양복의 말끔한 회사원 차림이었다. 등이 반가웠다. 붙들려다가 더 뒤를 따랐다. 꽤 느린 걸음이라 따라가기 더 힘들었다. 전엔 빨랐는데...... 키가 큰 편이라 보폭도 넓은데 거드름을 피우는 걸음이 일부러 속도를 줄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떨구고 계속 땅만 쳐다보고 걸었다. 오빠 걸음에 맞춰 보폭을 좁혔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선이다.

 

“문 검사, 지금 바로 올라와 봐.”

 

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검장이 등받이가 높은 검정색 인조가죽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 쪽으로 옮겨 앉았다.

 

“뭐하고 있나? 앉지 않고.”

 

소파 옆 협탁 서랍을 열어 노란 대봉투를 꺼냈다.

 

“아직도 전철로 출근한다며? 우리 신변,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해. 세상이 달라져서 세상 강도 잡는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라고. 이거면 웬만한 차 한 대를 뽑을 수 있을 걸세.”

 

 

대봉투를 오빠에게 내밀었다. 뭡니까? 물어볼 것도 없다. 뇌물이면서 뇌물이 아니어도 괜찮은 것은 해석에 있다. 이것이 세상살이의 요령이다. 요령은 자의에 있고 편의 따라 해석된다. 더구나 손에 쥔 권력에 기울게 돼 있다. 좌우하는 힘은 해법이 아니라 해석이다. 법은 창녀가 되고 뇌물은 화대가 된다. 최대한의 고객만족을 위해 서비스에 충실해야 한다. 보험을 드는 것도 아닌데 구구절절 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설명이 짧을수록 좋은 게 요령이다. 우리 다 아는 거잖아? 세상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이것이 세상 사는 지혜이니 정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의는 권력이 정의한다.

 

“잘 처리하겠습니다.”

 

오빠는 지검장에게로 두툼한 봉투를 되밀었다.

 

“넣어둬. 건방떨지 말고.”

 

오빠는 상식에 벗어난 일을 하고 있고 이래서 오만을 떠는 짓을 하고 있었다.

 

“밑에 직원들 하고도 회식도 하고 그래야지. 고생들 많은데. 밑에 애들 영악해서 자네 혼자 꿀꺽한 걸로 알아. 아랫것들 이걸로 차 사고 남으면 챙겨줘. 공생하라는 말이야. 또 그래야 도리고.”

 

지검장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언론이 달라붙기 전에 오늘 중으로 처리하게. 노동자들은 대표 만나 그쪽에서 따로 손쓴다고 하니까.”

 

 오빠도 일어났다.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검장실을 나오려는데,

 

“혼자 깨끗하게 군다고 세상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물고기도 맑은 물에선 못 산다는 거, 우리 배워 잘 알잖아?”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문을 채 닫기도 전에 건방진 자식, 이 들려왔다. 사람을 시켜 차 하나는 살만하다던 두툼한 봉투를 사무실로 보내왔다. 오후 네 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또 내선이다.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방금 다 처리했습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인데, 오늘 저녁 반포동에서 보세. 알지? 홍 마담이 경영하는 카페. 팔래스호텔 서래마을 쪽 말일세. 그 정 회장이 고맙다고 자넬 보고 싶어하더군. 이 기회에 안면 터 두는 게 좋아. 자네는 CPA(공인회계사) 자격증도 있지 않은가.”

 

내려놓으려는 지검장의 전화를 오빠가 잡았다. 돌려서 얘기해봐야 뻔히 알게 될 것을... 직설법을 쓰기로 한다. 더러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성깔이 처세를 극복해주기도 한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오늘 어머님이 급히 돌아가셔서요.”

 

바로 드러날 거짓말인 줄 알지만 친구의 어머니를 또 죽일 순 없었다.

 

“그래? 어쩐 일로? 좀 전까지 아무 얘기 없지 않았나?”

 

전화를 끊었다. 십 분도 안 돼 또 내선 전화기가 울렸다.

 

“이 자식이, 너 지금 장난해? 누구 앞이라고. 그래 가지고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자. 꼴값을 떨고 있네. 그 지랄, 얼마나 더 가나 내가 지켜보지. 이런 호로 쌍놈이 다 있어.”

 

오빠는 더 듣고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사무실을 나왔다. 남부지청을 나와 도로를 따라 걸었다. 빨간 우체통이 보였다. 받는 이 주소도, 보내는 이 주소도 없는 노란 대봉투를 그 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도둑고양이 흉내를 더는 낼 수 없었다. 더디기도 했지만 이렇게 집으로 곧장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오빠의 오른쪽 어깨를 내 왼손바닥으로 톡 쳤다.

 

“오빠”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놀라지도, 그렇다고 반겨하지도 않았다. 눈알이 고정된 나무인형 하나가 목만 돌리는 듯했다. 인형의 일직선 시선은 회절하지 않는 빛처럼 보였다. 빛에 감정이 실려 있을 리 없다.

 

“검사들은 다 그래?”

 

한 지붕에 살면서도 자주 보지 못한 얼굴이지만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말면 더 못 볼 얼굴이라 들어가면 각 방으로 흩어질 아파트보다 다른 곳이 필요했다.

 

“우리, 오백 하나씩만 하고 들어갈까?”

 

우리 남매는 오백이 아닌 천을 각자 들이켰다.

 

“네가 그런 말 안 했으면 그날......”

 

아쉽고 안타깝고 부럽고 밉다는 표정이 다 섞인 얼굴로 오빠가 입을 열었다.

 

“아니다. 잘 다녀와라.”

 

“나? 어디? 미국? 안 올 건데?” <글.그림=오동명/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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