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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15)

21 버스 차창 밖의 한국은 13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복잡하고 어수선하고 떠들썩하다. 이것이 한국의 발전상인가, 한국 밖에서 한국이 보인다. 한국 안에 한국이 숨어있다. 강화도 마니산으로 가던 길목의 김포는 아파트만 더 늘었을 뿐 도로확장공사는 십삼 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하고 눈이 따가울 만큼 도로 주변이 혼란스럽다. 부산하기 그지없는 차창 밖의 발전 한국에서 안정감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불안감이 짙게 느껴진다. 버스 앞으로 한 사람이 분주하게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고 버스는 행인의 등을 할퀴고 지나듯 쏜살같이 질주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이런 위태로운 상황은 연속되지만 행인이나 운전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해서 자유로워 보일 정도다. 혼란이 규칙으로 착각이 든다. 위태롭게 생각하는 내가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 같아 주변을 둘러보니 승객들은 모두들 잠에 빠져있어 편해 보인다. 평온처럼 보이는 혼돈이 더 두렵고 무섭다. 차창 밖만이 아니라 내 자신도 덩달아 어수선하다. 차내 안내방송을 틀어놨긴 하지만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 지경이다. 친절하게 영어도 간간히 나오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버스 앞으로 나가 기사에게 부탁한다.

 

“군하리에 도착하면 알려주시겠어요?”

 

버스기사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방송이 나오지 않느냐, 며 핀잔을 준다. 무섭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스피커 쪽에 귀를 종긋하고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수다를 떠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온다. 라디오방송으로 고요한 차내는 더 난장판이 된다. 한국의 라디오방송 수준은 버스기사가 결정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방송채널이 버스기사의 취향에 맞춰지기 때문이며 이를 잘 아는 방송관계자들이 주체성을 잃고 이에 편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디오에선 깔깔깔 웃어대는 소리가 나오지만 승객들은 무관심한 듯 거의 모두 눈을 감고 있다. 간헐적으로 라디오가 멈추고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지만 모든 서비스가 잡음이며 소음이다. 버스가 섰고 운전기사가 소리를 질러댄다.

 

“군하리에서 내린다던 사람 누구요? 안 내립니까?”

 

황급히 배낭을 챙겨 감사하다며 내리는 내 등 뒤로,

 

“미리 미리 나와 있어야 할 것 아냐?”

 

 

발을 땅에 다 내려놓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한다. 휘청거리며 군하리에 닿은 나는 비로소 오빠를 떠올린다. 변호사 사무실이 있을 곳 같지 않다. 한우식당이며 곰탕집, 치킨가게가 즐비한 주변엔 사무실이 들어설 빌딩은 없다. 혼잡한 상점간판들만 눈에 든다.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건물로 무표정한 잿빛 얼굴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죽은 건물들을 바라보는데 허기가 인다. 오후 한 시경, 칼국수를 한다는 식당으로 들어선다. 식당 안은 생동감이 넘친다. 왁자지껄 떠들며 먹어대는 사람들의 표정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같은 사람일진대. 한국의 힘은 먹는 힘인가. 먹고자하는 자각이 이만큼 살만하게 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식당들이 먹는 힘의 물증 같기도 하다. 이 또한 한국을 떠나기 전 십삼 년 전과 다르지 않다. 바지락 칼국수는 혼자 다 먹기에 넘칠 만큼 푸짐하고 맛도 꽤 좋다. 바지락 껍질을 핥으며 속살을 발라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지락을 좀 더 얹어 드릴까요?”

 

식당 아주머니가 온정으로 말을 걸어온다.

 

“여기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여기? 군하리나 김포, 이 동네를 말한 것일 테지만 나는 한국을 떠올리며 미국을 상기한다.

 

“예. 오빠가 여기에 살아요.”

 

오빠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내보이며 물었다.

 

“이 근처인가요?”

 

아주머니가 나를 다시 쳐다보는 눈빛이 새삼 다사롭다.

 

“문규범 씨면... 변호사이신?”

 

맞구나, 오빠가 여기에 사는구나, 주소로만은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쉬이 문제가 풀리니 반갑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가슴이 설렌다.

 

“예. 오빠가 가까이에서 사는가 봅니다.”

 

아주머니가 다시 나를 쳐다보는데 이번엔 퍽이나 낯설다. 짐작하고 사정을 먼저 털어놓는다.
“제가 미국에 있어서 오빠를 본지 오래 되었거든요.”

 

“그럼 지금, 미국에서 오시는 길인가요?”

 

“예. 맞습니다.”

 

“아니 이런. 방금 전에 식사하고 가셨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요. 바지락칼국수까지... 어머 어쩜. 조금만 일찍 오셨더라면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주머니가 식당 근처 교회를 알려준다. 오빠가 교회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왜요? 물으려다가 만다. 오빠에게 물을 일이다.

 

“서울로 들어가신다고 했는데 ... 교회에 가시면 목사님이 계실 거예요.”

 

핸드폰번호를 아느냐, 연락은 하고 왔을 것 아니냐, 얼마만이냐, 여동생이 있는 줄 몰랐다, 반갑겠다 ...... 수다스런 호의를 뒤로 하고 식당을 나왔다. 일러준 대로 포장도로를 따라 200여 미터를 걸었다. 공장 같기도 하고 창고 같기도 한 시멘트 벽체의 큰 건물과 주유소를 지나니 사무실 용도의 삼 층짜리 건물이 나왔다. 그곳 삼층에 교회가 있단다. 아동센터의 안내팻말이 먼저 눈에 띈다. 이곳이 오빠가 사는 곳? 이라니, 멈칫 주저하고 있을 때 벨소리가 울린다. 셀마다.

 

“오빠는 만났어요?”

 

“부모님 고향은 잘 찾아가셨습니까? 부모님은?”

 

그녀와 김포공항에서 헤어져 지난 시간 이래야 불과 세 시간쯤. 그 사이 달라질 것 없는 차편 이동시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시간과는 다른 과거에 집착하고 있었다. 과거는 시간이 아니다. 공간에 더 가깝다. 함께 하지 못함은 시간이 아니었다. 부재는 잃어버린 공유이기에 시간보다는 공간으로 확인된다. 셀마도 나도 지나가버린 시간을 찾는 게 아니었다. 내가 오빠를 만나는 일도, 셀마가 부모님을 만나는 일도 시간되찾기는 아니었다. 만남은 시간되돌리기가 아니라 마주 하고 함께 하고자하는 열망이다. 그렇다. 열망이다. 간절한 바람이다. 시간에는 없는 가슴채우기이며 이러하기에 공간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처럼 어느 곳인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찾아가는 곳이 셀마에겐 제주도고 나에겐 김포 군하리다. 그녀의 부모가 있을 곳이고 나의 오빠가 사는 곳이다.

 

“이곳이 참 아름답습니다. 내가 사는 곳은 산과 사막에 싸여 있는데 이곳에 와 보니 제주도는 섬입니다. 화산섬이랍니다. 검은 돌들이 무척 이채롭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주도 바닷가를 걷고 있습니다.”

 

두려운 거군요, 말을 하려다가 만다. 부모와의 상면이 기쁘기보다는 두려울 것이다. 미국으로 입양되지 않았다면 살았을 곳을 더듬고 싶었으리라.

 

“아이들이 바닷가의 검은 돌 사이에서 무엇을 줍고 있습니다.”

 

30년 전 자기가 그랬을 모습이었다. 30년 전 자기도 저렇게 살았을 광경이었다. 그러나 하지 못한.

 

“아이들이며 바다며 모두가 다 평화롭습니다.”

 

이처럼 평화로운 섬에서 왜 먼 이국 미국으로 가야했는지, 내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들려온다. 과거는 비로소 시간이 되고, 돌이켜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회한이 된다. 그녀는 연신 “뷰티풀, 뷰티풀”을 외쳤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녀가 울먹인다.

 

“제주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계시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한 달 전에 돌아가셨구요. 죽기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 고향, 제주도를 처음 말씀해주셨습니다. 미국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끝내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입양된 게 아니었군요?”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리고 만다.

 

“미안합니다.”

 

“왜, 어떻게 미국이 아버지를 죽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셀마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아동센터로 들어가는 중년의 남자가 흘끗 쳐다보는 시선에서 내가 어느새 건물 삼층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주도로 곧 갈 테니 만나자는 말을 내가 그녀에게 왜 했을까. 후회보다 이른 약속을 해버린 나는 무작정 제주도로 떠나고 싶었다. 오빠를 만나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싶었는지 모른다. 엄마의 죽음이 나와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은 죽임과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은 많은 환자들을 접하면서 얻은 내 나름의 결론이다. 모든 죽음엔 그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엔 자신 외의 요인들을 상당수 갖고 있다. 자연사조차도 그러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오빠와 식당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다행으로 생각했다. 빠르고 이르고 서두른다고 해서 순조롭다고는 할 순 없다. 시간은 흐르지만 멈추기도 한다. 악보의 쉼표 같은 기다림이 그것이다. 타이밍은 맞춤보다는 적정해야 한다. ‘숨은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다.’고 중용에서 그랬던가. 쉼표도 기다림도 나타나지는 않는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며 만날 시기를 조율해주는 것은 더 잘 보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숨은 힘이다. 아동센터로 들어갔던 나이 50 후반의 남자가 문을 삐끗 열고 내게 묻는다.

 

“어디를 찾아오신 거지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목례로 대답을 대신하고 셀마에게 제주도로 오늘 바로 떠날 거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포공항에서 탄 같은 번호의 버스에 올랐다. 글.사진=오동명/ 20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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