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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9)

28 pageturner.

 

환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희망을 심지 않는다. 더욱이 용기를 불어넣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할 일, 그 날 할 일, 그 날 그 날 할 일에 충실하다 보면 희망도 용기도 생겨났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전 지금 페이지에 성실할 뿐이다. 삶은 픽션이 절대 될 수 없다. 영화관이나 인터넷 창의 화면에 갇힌 좁은 공간의 픽션이 결코 삶일 수 없다. 삶은 무한히 넓고 무한정 열려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더라도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기를 바라지만, 희망으로 포장하거나 용기로 과장하려 하지 않는다. 반전을 꾀하지도 않는다. 반전은 픽션일 뿐인 소설과 영화의 몫이다. 내가 넘겨야 할 책장은 작은 것일지라도 변화에 있지 비현실적 반전에 있지 않다. 결코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허무나 염세는 더욱 아니다. 지금주의자라고 해야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말장난에 휩쓸리지 않는다. 휘둘리지 않으려고 이런 말을 경계하는 편이다.

 

출근하면 처음 하는 일이 책상 맞은편 옅은 하늘색 벽에 걸린 꽃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로 세워보는 것이다. 십호 크기의 작은 꽃그림이 넉 장 걸려있는데 모두 내가 그린 세밀화다. 수련, 진달래, 붓꽃 그리고 수선화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꽃들이지만 꽃말의 의미를 둬서 고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좋은 것에 이유를 붙이는 일을 꺼린다. 벽면과 그림의 크기에 맞춰 고르다보니 어쩌다 꽃 네 개가 골라졌는데, 자꾸 보다보니 꽃의 의미일 꽃말까지 외우게 되었다. 그래서 꽃들마다 사연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흔들리지 않아 그대로 있는 그림액자들을 매일 아침 바로 세우면서 꽃들과 얘기한다. 나는 고작,

 

“밤새 잘 있었니?”

 

짧게 말을 걸지만 꽃들은 그렇지 않다.

 

아주 옛 날, 이집트 나일강 언덕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던 꽃밭이 있었대.

 

......

 

어느 날, 한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절벽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붙은 꽃을 꺾어달라고 했대.

 

......

 

낭떠러지에 간신히 의지하며 꽃을 따려는 순간 새의 날개짓에 놀라 그만...

 

남자 친구는 절벽 아래 물 속에 떨어져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 물 위에서 꽃 하나가 피어났어.

 

청순한 마음을 꽃말로 갖고 있는 수련이 다정하게 얘기해주고,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던 선녀가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고 땅으로 내려왔어.

 

......

 

절제, 청렴, 사랑의 기쁨... 꽃말을 많이 갖고 있는 진달래는 첫 사랑이란 꽃말이 너무 고와 더 좋아하지 않았나 싶고,

 

......

 

나비가 날아와 앉을 만큼 똑같이 그리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는 아이리스의 제안에 화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그렸대.

 

이 여자의 이름을 따 서양에서는 아이리스라고 부르는 붓꽃은 여러 꽃말 중 존경이 맘에 들었고, 그 화가처럼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에 붓꽃을 고르게 되었을 것 같다.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도 다른 꽃 못지않게 제 얘기를 들어달라고 붙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쁜 소년, 나르시스는...

 

하늘색 벽을 배경으로 모여 있는 꽃들로 정원을 이룬 사무실을 둘러볼 때마다 치유된 나를 보곤 한다. 가장 싫었던 색인 하늘색이 지금은 나를 속박하지 않는다. 극복은 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치는 것이다. 뛰어넘는 것도 아니다. 마주할 수 있을 때 극복할 수 있게 됨을 내가 품고 있는 기억의 하늘색이 일깨운다. 사무실 문 쪽 벽면에는 오빠의 서툰 그림을 사진으로 복제해 붙여뒀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그래서 도망쳐온 어릴 적의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사무실은 연민일 수 있고 향수일 수 있다. 연민이나 향수는 대체로 울적하게 만들기에 내가 입에 올리지 않는 단어라서 피하고는 싶지만, 꽃그림으로, 오빠 그림으로, 하늘색으로 나는 우울하기보다는 웃음이 나오기에 연민이라 해도, 향수라 해도 상관이 없다.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이제 꾸진 않지만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즐기는 편이다. 꽃그림들과 대화를 하고나면 나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예약환자를 훑어보고 시간대를 확인한다. 내게 주어진 빈 시간을 체크해둔다. 오늘은 환자들에게 시간을 모두 바치는 날, 사무실에서의 내 시간은 없다. 빡빡하게 짜인 일이지만 내가 할 일이다.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부부 환자가 있다. 남편으로부터 상습폭행을 당해온 사십 대 초반의 여자는 삼 개월 전 이혼법정 대신 나를 찾아왔다. 훤칠한 키에 꽤 미남형인 남자는 감청색의 정장을 차려입고 있어 더 핸섬했다.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동양인을 대하는 서양백인의 얕보는 유의 표정을 지으며 누울 듯 의자에 몸을 뉘었다. 거만하다기보다는 천박했다. 꾸며진 거만은 언제나 추하기 마련이다. 상담을 위해 한번 본 적이 있는 여자가 남편이라며 소개했다. 의사가 묻기도 전에 남편이 말을 걸어왔다.

 

“몇 살이나 됐습니까? 결혼은 해봤는지...”

 

도대체 왜 이런 데로 자기를 데려왔느냐는 사십 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는 연신 고개를 가만 놔두지 못하고 사무실 안을 기웃거렸다. 꾸민 거만 안에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불안이 숨겨있다. 내가 대답을 않자 옆의 아내에게 소리로 윽박질러댔다.

 

“어린 동양인 여자가 우리의 삶에 대해 뭘 알겠어?”

 

일어나려했지만 아내가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엉거주춤 다시 앉는다. 아내를 존중해서가 아니다. 그는 아내에게 불리한 처지에 있음이 분명했다. 아내의 일방적인 정신치료의사에 고분하게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임을 그의 거만스럽게 보이고 싶어하는 어줍은 동작에서 엿볼 수가 있다. 첫 날, 이 정도의 상견례로 나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전화를 걸어 부부가 함께 오지 말고 따로 오라고 알렸다. 아내는 겁에 질린 듯 나를 걱정했다.

 

“그러지 못할 겁니다.”

 

남편은 사회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다. 변호사다. 술은 마시지만 과음으로 초래될 폭행은 한 번도 없었다. 평상시에는 지나칠 만큼 점잖다는 게 아내의 남편에 대한 평가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그가 아닌 아내 때문인가.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는 여자의 눈에도 정숙하고 빼어난 미색을 갖추고 있다. 꽤 침착하다. 그 뒤 아내만 수 차례 병원을 찾았고 남편은 아내의 예약에 사전 연락도 없이 약속을 어겨댔다. 첫 내원 후 한 달이 지나서야 그가 나타났다. 떠름한 표정의 가면을 쓰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영어를 곧잘 하는데 미국 태생이냐?”

 

귀찮아서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또박또박해서 어눌해 보일 말투로 물었다.

 

“여기 왜 왔는지는 충분히 알 만한 사람 같다. 아내가 아닌 본인이 여기 올 이유가 없다고 하면 난 당신을 안 받는다.”

 

그가 고개를 뒤로 제키며 깔깔깔 웃어댔다. 나는 일어나서 문을 활짝 열었다.

 

“나가라.”

 

문 쪽에서 붓꽃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라고 고작 그림일 따름인 꽃이 말을 걸어온다. 의외로 그는 의자에서 버텼다.

 

“이번에 치료하지 못하면 그는 감옥이든 정신요양소든 강제 수용되게 됩니다.”

 

아내가 부탁했었다.

 

직업이든 재력이든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사는 많은 부유층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선민의식은 비상식적이고도 몰상식적인 언행으로 나타나곤 한다. 상식으론 졸렬한데 비상식은 우월하다. 오만에 덮여 치졸한 줄을 모른다. 수치심이 들기는커녕 뻔뻔스럽다. 더욱 야비해진다. 철저한 이기심에 잔혹하고 잔인하다. 대부분 안중에도 없지만 더러 굴욕도 굴종에도 무관할 때가 있다. 지극히 계산적이어서 손해 볼 일 앞에서는 제 정신을 차린 듯이 변전하는 카멜레온이다. 이기적 타산으로 두드려지는 계산기의 작동에 의해 그들은 행동할 따름이다. 어깨에 견장이 얹힌 홍위병들이다. 안하무인인 이들의 눈빛이 강자에겐 한없이 비굴해도 낯빛은 당당하다. 계산기를 때려보면 굴욕은 이득이다. 기만의 힘은 그들의 자존심이다.

 

수선화를 본다. 자기애에는 계산기가 없다.

 

감옥엔 들어가기 싫다. 마지못해 왔다. 왔지만 순순히 따라줄 순 없다. ‘내가 왜?’ 이것이 그들의 자존심이다. 다시 강자의식이 발동한다. 다시 우월해지고 싶은 것이다. 어찌 모를까. 내세우고자 하는 자존심이 비상식이며 치졸하며 야비한 짓임을. 두르려보니 자만을 떨만 했다.

 

“여기 밖에 없는 줄 알아?”

 

그가 모르고 있을까. 모든 자존심이 말살되는 감옥의 초입에 그가 있음을 모르고 있을까. 들어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더 이상 나도 어떻게 해 볼 수 없어요, 여보.’

 

그래서인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비굴하고 비열하고 타산적이더라도 다행히 삼십 분 동안 의자에 달라붙어 얌전했다.

 

성취했지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변호사지만 변호사 세계와 자기 자신 안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는 유난히 경쟁을 의식했고 쟁취하고자 함에만 집착했다. 어떻게든 이겨야만 했다. 하지만 집착은 한 번의 실수나 실패도 용납을 불허한다. 집착은 편법을 도용한다. 편법이 정당하지 못함을 변호사인 그가 더 잘 안다.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늘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정당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한 행동에 자기가 약자임을 그 스스로 더 잘 안다. 그러나 가중된 집착의 고착으로 강자로 군림해야만 한다. 이래야만 돼, 강자의식은 허위로 채워진다. 강자의식은 열등감을 갖은 허위로 숨기지만 열등의식에 다름 아니다. 강자의식이나 권력의지는 약자가 갖는 공통된 허점이다. 채우고자 함이 허기와 같다. 그것은 배고픔이다. 폭력으로 나타난다. 폭력 대신 자조로 발전되기도 한다. 기회타산적인 그는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만만한 데에다만 가능하다는 것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첫 상대는 아내며 자식이다. 그 중 아내가 가장 만만하다. 아내는 순종적이기까지 하다. 순종은 폭력도 흡수한다. 순종은 악의 없이 폭력을 키우며 폭력의 희생자를 자청한다.

 

“앞으로 일부로라도 강하게 나가셔야 합니다. 이것이 남편을 지키는 겁니다.”

 

정에 연연하면 남편도 당신도 다 파멸할 뿐이라는 사실을 처방전으로 내놓는다. 나는 부부를 따로 불러 이간질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문제일 뿐입니다. 당신의 행동으로 왜 착한 아내가 죄인이 되어야 합니까? 멀쩡한 아내가 환자가 되어야 합니까?”

 

어르고 벼르고 추스르고... 환자인 그를 다스리기보다 우회의 방법을 쓴다. 치료는 상대인 아내에게 달렸다. 남편에게 강자가 되면 된다. 착하고 순종적인 그녀는 처음엔 수용하지 못했다.

 

“나만이라도 받아주지 않으면 그는 더 폐인이 되지 않을까요?”

 

남편에게 한 것과는 달리 짜증이 나서 사무실 문을 확 열었다. 남편에게 한 것보다 더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나가라, 당장. 계속 얻어맞고 살아라.”

 

뺨을 치고 나서 얼러야 한다.

 

“부부 간의 폭력이라 해도 어떤 폭력도 이 미국사회가 용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나는 한국 속담이라며 ‘되로 주고 말로 갚는다’를 영어 단어로 풀어 들려줬다. 되는 말의 십분의 일 용량 단위 어쩌구저쩌구... 그녀가 진지하게 웃어 보인다. 미국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며,

 

“소우 더 윈드 앤드 리프 더 훨윈드.(Sow the wind and reap the whirlwind.)”

 

작지만 잔잔한 한 페이지의 일기를 매일 써가며 산다. 일기장 대신 할 일로, 글 대신 행동으로 써가는 일기다. 그녀는 악수를 청하며 다음엔 친구로 오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안 될 것 없지요?” <글.그림=오동명/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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