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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11)

26 “아빠에겐 엄마에게 없는 부분이 있었단다.”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배려며 양보고 이래서 불편과 손해를 혼자 다 감수하기까지 한, 말 그대로 착한 사람, 순하디 순한 사람이 바로 아빠란 걸 알겠다. 욕심 많은 엄마가 아빠의 이해심에 처음 끌렸을 듯 싶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 후 아빠의 장점은 단점 투성이의 무능으로 변질되어갔다. 아빠가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받아들이는 상대가 변할 뿐이다. 엄마도 그렇고 오빠도 나도 그렇다.

 

답답해. 재미없어.

 

배려는 이렇게 짜증으로 돌아섰고,

 

그래, 그래. 좋아, 좋아.

 

늘 보이는 웃음은 무관심을 넘어 무책임으로 받아들였다.

 

급기야 엄마는 무뇌인간이란 말까지 했다가 어린 우리 남매의 눈치를 보고 이내 수정했었다.

 

너희 아빠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그치?

 

엄마는 생활이며 교육이며 더 옹골지게 꾸려가야 했다. 우리 남매에게 집착하는 엄마의 욕심은 아빠에 대한 포기도 일조했을지 모른다.

 

내가 중학교 삼학년쯤이었으니 오빠는 고등학교 삼학년이었을 때였다.

 

“엄마가 가여워.”

 

오빠가 나를 놀리는가 했다. 뚱딴지같은 소리에,

 

“뭐가? 저렇게 씩씩한데? 아빠가 난 더 불쌍해.”

 

오빠는 감은 눈을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우리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의 바람을 꼭 들어드리자.”

 

이러면서 오빠는 희생에 대해서 물었다.

 

“사마귀는 종족보존을 위해 수컷이 제 생명까지 내놓고 희생한다는 말, 들어봤니?”

 

“그럼, 물론. 그거 초딩 때 이미 뗐지. 그 땐 짝짓기나 교미가 뭔지 모르고 외워댔지만, 지금은 무슨 말인지 알아. 근데 웬 사마귀?”

 

“수컷만 희생하는 걸까?”

 

“암컷에게 먹히잖아. 그러니 희생이지. 것도 아름다운 희생!”

 

“그렇구나. 귀희가 정확하게 말했다. 아름다운 희생. 그럼 암컷 사마귀는 포획자란 건가?”

 

남편일 수컷 사마귀가 포획물일 순 없다. 하지만 잡아먹긴 하지 않는가.

 

“암컷의 마음은 어떨까?”

 

아름다운 희생에 걸맞는 말을 중학생인 나는 찾고 있었다.

 

“오빠, 수컷보다 암컷이 더 아프겠는걸. 수컷은 몸이 아프고 암컷은 마음이 더 아프겠다. 암컷의 희생은 아릿한?”

 

“그렇지? 먹히는 수컷은 몸이 잘려나가 아파서 울 것 같고 먹어야 하는 암컷은 몸을 뜯을 때마다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 것 같지 않니?”

 

“오빠, 그런데 눈물은 사람만 흘린다던데.”

 

“감정의 눈물을 말하는구나. 곤충이라고 단지 몸의 아픔만 있을까? 소리 내지 않는다 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해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닐 거야.”

 

“본능이라잖아.”

 

오빠는 좀 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들이 본능이란 단어를 만들어놓고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고 구별하는데 나는 이에 반대입장이야. 조물주가 인간을 조물주의 모습으로 가장 마지막에 만들었다고 하는 종교에서 나온 선택된 동물로서의 인간? 난 이거 믿고 싶지 않아. 생명은 크든 작든 모두 소중한 거니까. 그리구 인간도 동물처럼 본능대로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

 

공감한다고 머리를 끄덕거려줬다.

 

“그래서 오빠는 엄마가 가엾다고 하는 거구나?”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오빠의 두 눈에선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오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랑 뭔 일 또 있는 거지?”

 

오빠는 엄마가 가엾단 말만 여러 번 속삭이며 연신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오빠가 고삼이라 정말 힘들구나.”

 

이 말은 훌쩍이던 오빠를 화나게 했다.

 

“이 바보야, 엄마가 운단 말야. 엄마가 울고 있더라구, 이 바보야.”

 

나는 믿기지 않았다. 오빠는 이제 소리 내며 울어댔다.

 

“엄마가 왜 울어? 엄마가 뭣 때문에.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잘 돼 가고 있지 않나? 우리 둘 다 공부는 아주 잘하지. 오빠, 이번에 성적 떨어졌어? 아빠랑 싸웠나? 아빠가 엄마랑 싸울 사람인가? 피하고 말 사람이지. 아냐, 엄마는 안 울어. 적어도 우리 엄마는 울지 않는다구.”

 

바보, 바보, 넌 바보야 만 계속 중얼거릴 뿐 엄마가 왜 우는 지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도 몰라. 근데 하여튼 우리 엄마가 울긴 울어. 운다구. 씩씩한 우리 엄마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말하던 날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던 엄마를 등 뒤에서 안았을 때 엄마가 울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는 전해와 훈김으로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운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 엄마가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진 않을 거다, 난. 내가 할 거야. 해야 하고. 가여운 엄마를 더는 나도 못 보겠다. 귀희도 열심히 공부해서 사마귀 암컷 같은 엄마의 희생, 그래 아릿한 희생에 꼭 보답하자. 물려 뜯기는 것보다 물어뜯는 게 더 아플 수도 있어. 귀희도 더 나이 들면 내가 하는 이 말의 뜻을 알게 될 거다.”

 

더 이어진 오빠의 짜장면 이야기에 난 웃고 말았지만 오빠는 웃는 내게 바보, 라고 몇 마디 던지며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엄마가 짜장면 싫다고 하는 게 정말 먹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엄마도 우리처럼 먹고 싶은 건 같아. 참을 뿐이지. 감출 뿐이지.”

 

탑승 후 기내식이 한번 돌자 복도를 지나는 승객들로 부산하더니 이내 기내등이 꺼지고 조용해졌다. 모두들 잠이 들어가는 시간에 나의 과거는 더욱 새록새록 쏟아져 흑백영화처럼 감긴 눈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십여 시간 후면 만날 수 있는 아빠나 오빠보다 이젠 마주하고는 만날 수 없는 엄마가 자꾸 지나갔다. 아빠의 어디가 좋냐고 물었을 때 갈증나게 대답을 피하던 엄마가 내가 스무 살로 성인이 되던 날 저녁에 차를 한 잔 하자며 십년 전 질문을 잊지 않고 그 대답을 들려줬다.

 

 

“아빠는 웃게 하는 힘이 있단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엄마가 갖지 못한 것은 상대를 웃게 하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었구나. 바로 이것이 결코 성에 차지 않을, 전혀 격에 맞지 않는 아빠와 결혼할 수 있게 한 거로구나. 그래도 아빠의 웃게 한 힘은 상상으로라도 불가능했다. 아빠가 웃겨? 믿지 못하겠단 표정을 내게서 읽었는지 엄마는,

 

“그 땐 그랬단다. 그리고 아빠가 속여서 웃기게 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좋아서... 아빠 덕분에 많이 웃었지.”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만나고 사귀었는데도 여전히 처음처럼 어색하단 말야. 난 그 처음처럼이 아주 지긋지긋해. 네 탓은 아니지만 널 부르기 매번 진짜 짜증나게 애매하다구. 재수 씨, 문재수, 그냥 재수라고 부르면 어엿한 여대생이 시험 봐야 하는 재수생이나 불러내 술이나 퍼마시게 하고 놀게만 하는 것 같고. 나처럼 이렇게 재수 없는 여자도 없을 거다, 안 그래? 문재... 에구, 그만 두자.”

 

아마도 상법·민법·형사법, 거기에 형사소송법까지 그 두꺼운 책이 들어있는 소연의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문재수는 제 화구며 스케치북이 달린 화판을 양손에 들고는 힘든 표정 대신 짓궂게 얼굴을 찌푸리면서 웃는다.

 

“재수 없긴, 재수 여기 있다! 뭐, 복잡하게 생각해. 남들처럼 자기야 하면 되지.”

 

소연이 재수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찬다.

 

“또? 내가 싫다잖아. 자기는 수없이 많아. 그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이고 싶진 않다구. 또 한 번 자기 어쩌구 해봐.”

 

엉덩이로 또 한 차례 발길질이 올라온다. 재수는 희죽 웃을 뿐이다.

 

“어쩌다가 깡패를 만나서 ... 소연이란 이름은 절대 너답지 않아. 너무나도 여성적인 이름이 네게는 안 맞는다고. 이응 하나 더 붙여 송연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넌 날 송연하게 해. 모골이 송연하게 하는 여자라니깐.”

 

치올려오는 발길질을 엉덩이로 받지 않고 화판으로 막는다. 판자대기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제법 크다. 어쭈, 하며 응수하지만 소리에 놀란 소연이 주변을 돌아보더니 맥주나 한 잔 하고 가자고 한다. 앉자 주문도 전에 작명을 시작한다.

 

“이 기회에 우리만의 이름을 지어보자. 나도 내 이름 소연인 왠지 싫어. 요즘 애들에게 흔한 이름이 돼버렸거든. 전의 미자·영자·순희처럼.”

 

이름 한 자만 빼내 외자로 불러보기도 하고 예명을 만들어보기도 해보지만 각자 생맥주 네 조끼씩이나 비워도 마뜩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재수의 스케치북 한 장이 다 채워질 만큼 많은 이름을 뽑아봤지만 다 신통치 않고 여의치가 않다. 꺼내 놓은 이름이래야 별 것 없었다. 이름짓기는 핑계 같고 술이 고팠고 휴식을 갈증냈는지도 모른다.

 

“한자도 많이 알고 어휘력도 무지 풍부한 네가 이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다니... 쯧쯧”

 

재수가 거론된 이름들을 스케치북 위에 모으니 뿔난 흉물이 나타났다.

 

“상상이야? 아님 실제 동물?”

 

소연이가 묻는다.
“널 그린 거야. 시도 때도 없이 발로 차질 않나 주먹이 날아오질 않나, 흉악하지? 바로 네 모습이라고.”

 

“언제는 귀엽다며? 스펀지 같다며?”

 

“그래, 언젠가 비 맞은 네가 내리칠 땐 물 먹은 스펀지라 좀 따갑긴 했지만.”

 

“저 능청, 은근히 사람 웃겨.”

 

“웃기려는 게 아니라 아프기도 따갑기도 하다니까. 네 손이나 발이 얼마나 매서운지 아니? 이게 바로 너야, 바로 너란 말야!”

 

재수는 유행가를 흉내 내며 집게손가락으로 소연을 가리키고 스케치북을 가리킨다. 괴물은 흉하긴 해도 귀여운 구석도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로스 같이 몸통 따로 머리 따로 짬뽕 짜깁기 괴물 같아 보이네.”

 

소연이 스케치북을 제 쪽으로 돌려본다.

 

“뿔이 톱 같다. 맞아?”

 

“다시 그린다면 손도 발도 다 톱으로 그릴 거야. 소연이답게. 이 동물이름이 뭔지 아니?”

 

“이 동물에 이름도 있어? 기린이나 해태 같은 상상동물이 맞긴 한가보다, 그치?”

 

“그래 맞아. 안톨롭스라는 중동지역의 신화 속 동물인데 성질이 대단하고 포악해서 사냥꾼마저도 벌벌 떨게 했대. 하지만 그 성질을 주체할 수 없어 머리에 달고 있는 톱 같이 생긴 뿔을 함부로 휘두르며 탐욕을 부린다거나 방탕하게 굴면 덤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 결국 붙잡히고 만다는 거야.”

 

몸을 일부러 옴찔해 보이며 떠는 시늉을 내던 소연이가 재수에게 또 장난매질을 하려던 팔을 제 쪽으로 잡아당긴다.

 

“내가 안~ 뭐? 안톨롭스 같다구? 그런데 난 귀엽게만 보이는데. 부러 이렇게 그렸지? 내가 귀엽긴 하니까.”
“널 안톨롭스라고 부르고 싶지만 너무 길다.”

 

“싫어 싫다구. 이름이 길어서가 아니라 너한테니깐 내가 이러는 거야. 너하고 있으면 난 짓궂어진단 말야. 더 장난치고 싶어진다구. 웃기만 하는 체셔고양이가 되어간다구. 왜일까?”

 

재수가 입을 삐쭉 내민다.

 

“만만해서지.”

 

소연이가 재수의 손을 잡는다.

 

“아니 절대. 편해서 그래. 넌 날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어.”

 

재수가 평소답지 않게 껄껄 웃어댄다.

 

“재주? 문재주로 이름을 한 자만 바꿔 봐?”

 

“것 봐. 날 웃기잖아. 날 웃게 하잖아.”

 

재수의 어깨로 볼을 기울이며 소연이는 옹알거린다.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때.”

 

한 자의 오식이라도 따져대고 따져야했던 소연의 성격은 법에 가깝다.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은 법대에 들어가서도 잘 통했다.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과도 소통은 수월했다. 그러나 그 소통이란 역시 치밀성을 요구하고 파악이라는 상대성을 강제하기에 늘 경계와 경쟁의 속에서 숨통을 죄었다. 답답했다. 갑갑했다. 끊기지 않으려는 긴장감은 언제나 피곤했다. 같은 답, 한정된 답안으로 풀어내야 하는 경직된 사고는 탁월한 머리로 인정받았던 재능을 점점 기능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재수는 부족하고 때로는 무능해보이긴 해도 도 아니면 모라는 속박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재수가 가진 스무네 색의 그림물감이 만들어내는 색은 이보다 훨씬 많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색을 새로 만들어낸다. 법은 법 그대로에서나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응용이란 남이 전에 적용한 틀 안의 판례가 고작이다. 이 또한 응용이랄 수 없다. 답습이고 무작정 따라가기와 다를 게 없다. 법대 동료나 선후배들은 얼굴과 머리로 숨을 쉬고 있지만 적어도 문재수는 가슴으로 또는 어깨나 등으로도 숨을 쉬고 있었다. 문재수가 한소연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쥐고 흔들며 들썩거려보였다.

 

어깨로 숨을 쉬어봐. 이걸 어깻숨이라고 해. 몸 전체를 놔두고 언제나 머리로만 모든 것을 다 하는 듯이 보이더라. 어깨가 웃고 손도 웃는다는 것을 너희들은 이해하니?

 

머리가 아닌 다른 신체부위로 숨을 들이키자 갑갑하고 답답했던 가슴이 트이는 듯했다. 벗어나니 날아갈 듯 가벼웠다. 몸이 가볍자 편안함을 몸이 받아들였다.

 

책상 하나면 족한 0.6평의 고시촌은 그 작은 평수만큼이나 사람을 졸렬하게 만들었고 두꺼운 법전만을 달달 외워대는 머리 속은 치밀함과 동시에 치졸하게도 만들었다. 어깨에 평생 견장인 법복의 무게에 눈이 쏠린 집착은 마치 불빛에 몸을 던지는 곤충의 집요와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극도로 편협하기에 편집광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밝은 만치 어둠도 짙은 법이다. 빛이 얻음이라면 어둠은 잃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그렇듯이 둘은 함께 오기 마련인데 편협·편집광들은 두 곳을 다 바라보지 못한다. 두 곳을 바라보려하지도 않는다. 잃으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얻는 것이 미덕이다. 문재수가 편한 것은 그의 유머가 뛰어나서도, 마음이 유난히 선해서만도 아니었다. 빛과 영광만을 쫓느라 편집광들이 보지 못하는 어둠을 문재수 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고 보여줄 수 있어서다.

 

다방 소파에 기대어 앉은 한소연이 바라보는 곳은 고시촌만큼이나 좁은 공간의 음악실이지만 그곳은 음악이든 메모든 방송이든 때로는 웃음소리로도 안과 밖이 오고가며 나누는 공간이다. 고시촌은 오로지 개인의 욕구로 채워진 불통의 공간, 일방통행만이 자유이고 상식인 막다른 골목에 다름 아니다. 그곳에서 삶에 대해 배우는 게 있다면 충만, 즉 채우기일 뿐이다. 채움으로서만 만족하는 그들에게 비움은 비상식이며 비효율이요 불필요며 불이익에 불과할 뿐이다. 채움은 타산으로 계산되는 축재이지만 비움은 이타로 환치되는 나눔이다. 그들이 이를 알 리 없고 알고자 함 역시 없다.

 

돈 맥클린의 <And I Love So>를 저만치 떨어져서 틀어줘도, 이만치 멀리서도 감화하는 나눔의 공간 속에서 한소연은 문재수가 마냥 편안했다.

 

좋아?

 

응.

 

애써 말하지 않아도, 굳이 들으려하지 않아도 그들은 주고받았다. 소연의 평온은 믿음으로 발전했다. 그 날이었다.

 

“책이 안 읽혀져.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뭔지 아니? 소설, 연애소설. 문재수, 내가 이러는 거, 이해돼?”

 

그 후 소연은 의암의 절간 고시촌보다는 강촌의 이층 다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글.그림=오동명/ 25편으로 계속 >>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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