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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3)

34 바로 이 자리인데, 하며 엄마는 우체국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은 우표를 무척 좋아하기에 신이 나서 엄마 뒤를 따라 들어갔다. 서울하고는 다르게 아주 작은 우체국이었다. 창구의 한 젊은 여자에게 엄마가 물었다.

 

“그 전엔 여기가 일층엔 식당, 예 맞아요. 빙어요리를 해주던 맛있는 식당이 있었고, 이층엔 다방이 있던 곳이지 않았나요?”

 

“잘 모르겠는데... 잠깐 기다려보세요.”

 

여자는 소장님, 하며 안쪽으로 허리를 돌렸다.
그랬다. 그 사이에 바뀌었다. 아빠가 알바하던 그 다방도 사라졌고 아빠 월급날이면 빙어튀김을 함께 먹었던 식당도 없어졌다. 참 맛있었는데... 사라지고 없어져도 기억은 더 살아나고 생생해진다. 아쉬움은 상실이 아니라 간직이며 회귀이며 재회이다. 되찾는 만남이다.

 

“엄마, 기념우표가 나왔나 봐요.”

 

남들은 재롱을 피우며 마냥 뛰어놀 나이에 우리 남매는 일찍이 책상이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고 책은 우리의 장난감이었다.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다. 부모나 책 외에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우표들이었다. 오빠와 나에게 아빠가 유치원 입학 때 선물해준 우표첩, 오빠 것은 자동차·기차·비행기 등 탈 것들이 그려져 있는 우표들이 많았고, 내 것은 꽃과 새들 우표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 우표보다는 외국우표가 많았다.

 

세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단다. 차들도 많고 꽃들도 많고 새들도 많고, 우리가 보는 것보다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단다. 여기의 우표들로 넓은 세계를 여행해보렴.

 

아빠가 우표첩 앞에 써놓은 글을 지금 서른여섯인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나보다 세 살 많아 지금 서른아홉인 오빠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빠는 나보다 우표를 더 좋아했으니까. 우리는 우표첩을 서로 바꿔 나눠보기도 했다.

 

“맞다 맞아. 아빠가 서른여섯이 되셨잖니.”
광복 36주년 기념우표를 샀다. 아빠는 광복의 해에 태어났다. 엄마도 아빠랑 세 살 차이가 난다. 내가 오빠랑 그렇듯이.

 

 

엄마는 어떤 일이나 꼭 의미를 부여했다. 아마 엄마의 유일한 취미가 의미가 아닐까.

 

“우리, 아빠한테 편지 쓸까? 써서 아빠 나이가 적힌 이 우표를 붙여 여기서 보내보자. 어때? 좋지? 좋아하시겠지?”

 

엄마의 큰 가방에는 언제나 필기도구가 들어있었다. 엄마 것만이 아닌 우리 것까지. 노트를 꺼내서 세 장을 뜯었다. 오빠와 나에게 연필을 각각 얹어 편지지가 된 노트 한 장을 건넸다.

 

“엄마, 우리 아까 본 강가로 가서 거기서 아빠 편지 써요. 좋죠?”

 

나는 또 강물을 보고 싶었다. 다리 위에서 띄워 보냈던 종이배는 잘 떠내려가고 있을까. 역시 또 상상이지만 가서 보고 싶었다. 흐르는 것들, 움직이는 것들을 보고 싶었다.

 

“다시 여기 와야 하잖아. 편지 부쳐야 하니까.”

 

오빠는 이내 이 말을 취소했다.

 

“아니야. 나도 좋아. 엄마도 좋지?”

 

엄마는 바로 대답을 않고 오빠 얼굴을 뚫어질 것 같이 쳐다봤다.

 

“그런 소리 다신 하지 않는다면!”

 

그런 소리? 아, 내 꿈? 버스운전아저씨?
“걱정마세요, 엄마. 검사돼서 엄마꿈 이뤄드릴게요.”

 

엄마가 이번엔 오빠를 측은하게 쳐다봤다.

 

“엄마가 이뤄내지 못한 거긴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꿈은 아니야. 문규범, 내 아들의 자랑스러운 삶이지 엄마 것은 아니란다. 너희 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늘 갖고 사는 게 엄마의 꿈이란다. 엄마꿈? 우리 가족 행복이지!”

 

우린 북한강변으로 한숨에 달려가 서울에서 혼자 일하고 있을 아빠를 만났다.

 

엄마·오빠·나는 쓴 편지를 한번 접어 구겨지지 않게 엄마의 노트 안에 넣어 우체국으로 다시 갔다. 엄마는 뭐라 썼을까? 당신과 같은 나이의 우표발견,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추억, 그리고 오빠가 엄마를 실망시킨 일...... 엄마는 강촌 북한강변에서 내가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을 꿨다는 것은 모르고 있겠지. 나는 오빠처럼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우표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꽃들을 봤다. 집에선 늘 우표를 보고 그려봤지만 꽃을 직접 보고 그리니 기분이 달랐다. 사실 그리기가 더 힘들었다. 바람 때문이었다. 바람이 불어와서 꽃을 자꾸 흔들었다. 그릴 수가 없어서 난 처음엔 좀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깐 내 마음이 변해있었다. 나는 알았다. 알아냈다. 바람이 꽃에게 다가와서 같이 놀자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흔들리지 않는 꽃은 외로워보였다. 하지만 바람이 와서 흔들 때는 꽃도 좋아하는 것 같이 느꼈다. 외로워 보이지 않고 신이 나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꽃이 웃었다. 움직이는 것은 다 신나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쓸쓸하다. 나는 꽃동무인 바람도 그려 넣고 싶었다. 바람은 우표에도 그려 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바람을 그렸다. 바람처럼 흔들어서 그리면 됐다. 이 그림도 아빠에게 보냈다.

 

아빠, 난, 나중에 어른 되면 화가가 되고 싶어. 아빠가 하시려 했던 것처럼. 그림 그릴 때가 가장 신나. 그림 그릴 때가 너무 좋아. 근데 이거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나는 의사가 되어야하잖아. 아빠, 내 그림에서 꽃하고 바람하고 친구인 것 같아 보여?

 

한참 후에 들었는데, 오빠는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에 오빠꿈을 쓰려했지만 못했다고 했다. 오빠랑 나랑만 있던 내 방에서 오빠가 어느 날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이랬다.

 

검사하면서 꼭 버스운전아저씨도 될 거야. <글.그림=오동명/ 33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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