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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세밀화명상(15) 그림으로 마음이 아름답게 더듬어지는 명상

 

따라 그리려다가 안 되겠다싶어 더 배우자 한다. 웬만한 것, 곧이곧대로 따라는 그리겠다는 자만을 스스로 들통 내고 만다. 언제나 그렇듯이 좀 알고 나면 더 힘들어진다. 모를 때는 무식해질 수 있지만 아는 한 무식함을 인정하게 된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진정 아는 것의 힘이 아닐까.

 

몰상식한 제 주장만 하는 자와 그런 주장이 20여 퍼센트 이상 먹혀드는 사회(지난 번 대통령선거에서 한 후보자가 극렬하게 보여주었지만, 절대 정치로만 선을 그어서 볼 일이 아니다.)를 보고 있자면 무식하고도 뻔뻔할 수 있는, 알지 못하는 것의 힘을 체감한다. 무식은 부끄러움이며 부끄러울 때 무식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무식의 힘이 존재한다 함은 무치해도 당당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진대, 무식-무치-무식의 순환, 바로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무식하고 무치해지고 싶지 않아서, 비록 염우는 없더라도 염치는 달고 살자 해서 든 책이 나를 더 부끄럽게 한다.

 

수채화의 대가(헤이즐 손/영국인)가 쓴 책(<종이 위의 마법, 수채화>/방소연 번역하고 소네트에서 냄)의 이 구절이다.

 

“내가 그린 거의 모든 것은 여전히 내게 실험이며, 수채화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나는 수채화를 그릴 때 요구되는 고도의 집중력, 그림에 완전하게 빠져드는 행복감, 아름다운 색의 유혹, 손끝에 전달되는 감각적인 붓의 느낌, 텍스처가 살아있는 섬세한 종이를 사랑한다.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는 것이나 그림에 미세한 터치를 더하기 위해 최적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 못지않게 나를 흥분시킨다. 그림을 준비하고 그리는 과정 자체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완성된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

 

내가 실체화로 명상을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짚어 표현한 글이라 내 마음을 들켰으면서도 고맙다. 인용도 따라 쓰기나 따라 하기일 것이다. 따라 그리기와 사뭇 같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만큼 쓰지 못하는 글을 남이 대신해주는 것은 내가 그만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그림을 대신해 따라 해보는 것과 같을 테니까 말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갖는 빠져드는 행복감, 손끝에 전달되는 감각적인 느낌이 주는 즐거움’은 헤이즐 손이 그런 것처럼 결과물인 그림의 완성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에 절대 공감한다. 나는 ‘따라 그리기’로 자연스럽게 명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결과물(따라 그린 그림)이 다소 만족스러울 때엔 자족으로도 흡족해서 기분이 한결 좋아지곤 한다.

 

수채화를 더 좀 잘 그려볼까 해서 꺼낸 책이 여느 철학책보다도, 어느 심리학책보다도 더 철학적이고 심리적으로 더 동감하게 만든다. 공감과 동감이 그려내고자 하는 그림으로도 나타나는데 이의 깨우침은 왕양명이 주장한 지행합일로 이어진다. 지선(至善), 즉 정성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정성을 다하지 못함이 행동으로 나타날 뿐이다, 라는 심즉리(心卽理)를 양명학 공부에선 갸우뚱하며 의문하던 것이 오히려 따라 그리기로 깨닫게 해준다.

 

처음에는 털끝만큼의 차이가 나중에는 엄청난 틈으로 벌어진다는 마음가짐의 강조는 분명 나타내야 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면사무소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데 초로의 여인 둘이 양산 하나로 뜨거운 햇볕을 함께 가리고 다정하게 담소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자마자 인상적이었다. 아름답게 인상적이었다. 예뻤다. 저 모습을 그려봐야지, 하고 따라 그릴 견본으로 쓸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는데 한 할머니가 주변을 둘러본다.

 

“꽃도 없는데 왜 찍는다냐?”

 

들키자 인사를 하고,

 

“두 분이 앉아 얘기하고 있는 게 너무 아름다워서요.”

 

또 다른 할머니가,

 

“누굴 보고 아름답단 거유? 이상한 양반 다 봤네.”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보는 게 이상해서 잘못하다간 성추행으로 발전하든 반전하든 할 수 있겠다 하면서도 개의치 않을 수 없어 물었다.

 

“자매세요?”
“자매긴. 불알, 에구 거시기 납짜기 친구지 우린.”

 

꾸벅꾸벅 허리 굽혀 여러 차례 인사하며 돌아서는 나를 정말 이상한 양반 보듯 계속 쳐다본다. 그리고 들려온다.

 

“우릴 찍은 건가 보네. 꽃을 찍은 게 아니라.”

 

이런 마음이, 이런 마음가짐이 그림에 정성으로 담기고 내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잘 나와 줬다. 제대로 따라 그리지 못한 것은 실제 보기보다 열 살은 더 젊게 그린 건데, 이 역시 예쁘게 보인 내 마음이 담긴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니 그리고 보니 내 그림으로 내 마음이 좋아지고 내 마음도 잠시잠깐 아름답게 더듬어지면서 씨익 얼굴에 나타난다. 이런 명상이 절로 어린애가 되게 한다. ‘최적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 못지않게 나를 흥분시킨다’는 나의 수채화선생님 헤이즐 손의 글 역시 지행합일의 이치를 말하고 있음도 이해하게 된다. 두텁디두터운 양명학이 아니어도 얄브스름한 그림공부책에서.

 

“우리는 배워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배운다. 우리는 건물을 지으며 건축가가 되고 리라를 연주하면서 리라연주자가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의인이 되고, 온화한 행동을 함으로써 선한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을 함으로써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 ...... 또 그 자체를 위해서 욕망할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유일하다.”

 

옳거니, 나는 남의 그림이나 사진을 따라 그리면서 이천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합일을 본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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