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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세밀화명상(5) '제대로 따라하기' 맹종·추종 극복, 그리고 창조

 새해 새로운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오동명의 ‘세밀화명상’입니다. 오랜 기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또 광고기획 일을 했던, 그리고 기자로서 카메라를 맸던 오동명 작가의 연재입니다. 모진 세상풍파와 맞닥뜨렸던 그가 그의 ‘자존’을 지키고자 그의 손놀림으로 다듬었던 채색과 스케치를 곁들인 명상의 담론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게 된 2017년-. 우리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상식의 사회’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따라하기는 여러 면에서 유용하고 유익하다. 하지만 유행과 같은 맹목적인 따라하기와는 구별해야 마땅하다. 멘토여야 하고 모델이 될 만한 것의 바탕에는 이성이 깔려 있다. 그 이성에는 자존감이 깃들어있다. 자존감이란 따라하더라도 그 따라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따라할 만하니 따라한다는 것은 따라하는 것만으로 그치게 하질 않는다. 따라함을 넘어서는 것에 따라하기의 힘이 있다.

 

그래서 따라하기의 전제에 무조건이 아닌 ‘제대로’가 붙는다. ‘제대로 따라하기’는 결코 똑같이 따라하기는 아니다. 반복의 순환, 거듭되어진 순치를 넘고, 맹종·추종을 극복하는 창조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제대로 따라하기’가 될 수 있다. 창조는 내 것이 아닌 저 너머 다른 남의 것으로는 될 수 없다. 결코 거창하지 않은 데에서도 충분히 창조는 이뤄낼 수 있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이란, 누구나 창조적인 사고나 실천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존재,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나.

 

일테면 이런 것이다.
중학 2학년생인 승민이는 곤충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하지만 그의 지식은 눈솔깃하게 화려히 편집된 초등학교 때 읽은 그림책들에서 얻은 것이 다다. 중학생이 되고 나와는 공부라는, 결국 성적이라는 목표로 만나긴 했지만, 곤충에 대해서는 빠삭한 그가 다른 과목에는 신통치 못하다.

 

관심이 실력이라는 등식을 이 어린 학생이 일깨워준다. 좋다. 우회적이지만 그의 관심으로부터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제 중학생답게 그림만이 가득한 책을 피해서 글이 더 많은 수준 높은 곤충관련 책을 하나 사서 선물했다. 그리고 공책 하나도. 공책 앞 부분에 곤충책에 실려있는 딱정벌레 하나를 골라 그대로 베껴 그렸다. 그리고 그 곤충이 승민이에게 거는 말, “승민이 형~~~” 말풍선도 넣었다. 그 그림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군더더기, 사족이 될 것이고 잔소리가 될 터인데. 따라 베껴 그린 그림과 짧은 말풍선에 내가 승민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었다.

 

이런 용도로 내 자신도 세밀화명상을 해본다. 승민이가 더 멋진 어른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바로 그 명상이다. 따라 그리고 베껴 새기는 동안에 미국의 루시 스톤을 떠올린다.

 

미국의 여성참정권 획득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여성이란다. 백오십 년 전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녀가 주장한 대로 실천했다.

 

“우리 여성들은 사회의 부속품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다.”

 

그후 그녀를 따라 여성의 권리와 그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된 여성들이 줄을 이었다. 루시 스톤을 따라한 여성들을 루시 스토너라고 한다.(애덤 그랜트가 쓴 <오리지널스>에서) 여성의 권리는 입법이라는 한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역사 이래 남자들이 독점해온 모든 분야에서 루시 스토너들이 활약했다. 바로 이것이 ‘제대로 따라하기’이다. 루시 스톤을 무조건 따라하기 한 여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들은 곧 루시 스톤의 영역을 침범해 루시 스톤의 적이 된다. 그럴 수밖에. 무조건 따라하기의 한계이다. 무조건은 창조일 수 없고 추종에 그치고 결국 추잡스러워지고 만다. 유행쫓기가 바로 그것이다.

 

승민이에게 곤충그림을 베껴 그려주면서 단지 어릴 적 그림책 수준에만 머물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승민이길 바란 마음이 전해졌는지, 승민이가 올 봄에는 내 작은 텃밭(<누구나오게 아무나오게 학당>에 딸린 땅)에 복수박 씨를 뿌려 그곳에 달팽이 등을 키워보겠단다.

 

바로 창조이지 않은가. 창조를 크기로 따져 비교한다면 창조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만다. 창조를 맹목이나 맹신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남의 것, 그저 부러운 것으로 자괴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승민이가 내게 더 살갑게 다가온다. 신뢰감이 생긴 것일 게다.

 

“공부도 슬슬 재밌어져요.”

 

내가 해내고 있구나, 하면서 내가 참 약단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 약아빠진 내가 그리 밉지 않은 건 왜일까? 아마도 나도 창조자가 되었다는 기쁨 때문이 아닐까. 승민이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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