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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세밀화명상(4) 필요한 건 창호지, 색연필 또는 여러 색 수성펜

 새해 새로운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오동명의 ‘세밀화명상’입니다. 오랜 기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또 광고기획 일을 했던, 그리고 기자로서 카메라를 맸던 오동명 작가의 연재입니다. 모진 세상풍파와 맞닥뜨렸던 그가 그의 ‘자존’을 지키고자 그의 손놀림으로 다듬었던 채색과 스케치를 곁들인 명상의 담론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게 된 2017년-. 우리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상식의 사회’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주경야독을 멋 좀 부려 주축야서(晝築夜書) 낮에는 벽돌 등 쌓으며 집짓기하고 밤에는 글쓰기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한지 두 달이 거의 다 됐다. 계획과는 달리 글쓰기는 못했다. 낮에 다섯 시간쯤 마당에서 노동을 하고나면 지쳐 바로 눕게 되고 남의 책 읽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좋다. 60년 동안 장작불 지피는 부뚜막으로 쓰여 왔던 곳을 책들을 쌓아둘 공간으로 바꿔보겠다며 시작했는데 이런 노동을 안 해봤으니 서툰 건 당연하고 더딘 건 지당하다. 요령이 없어 힘든 것은 애초 예상했고 그대로였다. 공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시작 전 구상이나 설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설계는 수시로 바뀌었다. 이렇게 바꿔가는 서툼도 지나면서 재미로 바뀌었다. 전문가인 업자에게 맡기면 기일은 빨라지겠지만 남들과 다름없는 똑같이 반듯하고, 다름없이 공산품과 같아질 것이 분명한데 극히 서툰 관계로 삐뚤빼뚤한 작업은 지멋대로 작품으로 승화(?)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가 된 듯 착각한다. 멀쩡한 타일을 깨대는 그를 남들은 놀람을 넘어 미쳤다고도 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건물들은 지금 유네스코문화유산이 됐다. 가우디에게 재정후원자가 붙었듯이 내게도? 요런 불가능한 상상의 가능성을 접으면 그런대로 자가당착·아전인수는 가우디만한 자부심으로도 부풀려진다. 혼자 하는 재미의 가장 큰 매력은 착각일 게다. 이것은 마력이다. 한참 늦었지만 부뚜막도서관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와서 본 사람들이 카페 같단다. 입구 문 위에 걸어놓은 현판을 우러러 보고는 웃는다.

 

“부뚜막도서관? 재밌는 이름이네요.”

 

개성은 물론이거니와 운치가 있다는 칭찬마저 들었다. 돈도 적게 들었다. 그 비싼 인건비가 들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그런데도 편백나무로도 벽을 입혔다. 시멘트는 줄이고 비싼 황토몰탈도 썼다. 아이들이 드나들 곳이기에. 이런 마음 씀씀이의 이타로도 넉넉하게 가슴 뿌듯하다. 내가 남은 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곳이라는 자신에게의 이기적 투자가 그리 밉지 않다.

 

창이 두 개, 유리가 달려있지 않아 차가운 바람이 든다. 이내 창호지가 떠올랐다. 여기에 그림을 넣는 거야. 갓 난 고양이가 마당을 바람처럼 찾아든다. 나는 거의 안 먹는 소시지를 사다 줬더니 우유배달원처럼 매일 찾아온다. 늦잠 자고 나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이 들었다. 창호지 위의 그림으로 당연 고양이가 떠올랐다. 우리집 주변엔 도시비둘기와는 색이 다른 산비둘기들과 산까치(흔한 검은 빛의 까치와 다르다. 하늘색이 많이 돈다. 물까치라고 하는데 사는 곳을 봐서 산까치가 더 맞다.)들이 정말 많다.

 

마당 옆에 작은 대나무숲이 있는데 그 안에 그들은 보금자리를 잡고 산다. 산비둘기·산까치와 사는 나는 역시 당연하게 새들을 그리기로 했다. 창작그림은 서툴러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릴 그림을 찾았다. 첫 직장으로 제일기획에 다니던 때 매달 구독하던 일본의 광고사진 월간잡지에서 찾아냈다.

 

30년 만에 들춰보는 잡지책 안에 사회생활을 처음 하던 내 모습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여기에 만족하고 눌러 있어서는 안 돼.’
잡지인데도 사진이며 그림들이 대개 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독학으로 열심히 사진공부를 하긴 했구나.’

 

동물이나 식물 그림을 가끔 그려보곤 하는데 그리면서 이들에게 말을 걸곤 한다.

 

“너희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낫다. 어쩌면 이렇게 색이 곱니. 우리처럼 애써 번 돈을 주고 기껏 사 입어야 할 옷도 전혀 필요없겠어.”

 

스트레스가 될 세속적인 일은 금세 잊는다.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잊는다. 베스트셀러 무조건 따라하기, 인위적인 긍정이 아니며, 작위적인 자기암시(동기부여, 마인드컨트롤)도 아닌 저절로. 닮게 그리고 싶은 마음에 역시 저절로 집중하게 되고 집중은 쓰잘데없는 사념들을 또 역시 저절로 없애준다. 버림도 집중도 모두 자연스럽다.

 

세밀화 또는 임화(臨畵, 유명 작품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린 그림)로 그리는 일은 그 대상을 닮아가는 과정이며 마음이 깨끗해지고 한결 가벼워져서 평화롭고 행복하다. 정신건강이란 말을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자연스러운데. 서울에서 후배가 내려왔다. 부뚜막도서관 창의 그림을 봤다.

 

“오 선배, 그렇게 백수로 놀기만 하지 말고 인테리어업자로 나서보지 그래? 돈 벌겠어.”

 

칭찬이든 핀잔이든 추임새로 듣는다. 째지도록 기분 좋다.

 

문득 아재, 듣고도 남을 웃긴 말이 생각난다.

 

“째져야 좋은 건?”
“기분!”

 

1. 연필로 선 그리기
--창호지는 선긋기가 다른 종이보다 까다롭다. 그래도 창호지를 고집하는 것은 풀을 먹이면 탄력이 붙어 마치 북처럼 탱탱해지고 질겨진다. 마른 뒤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튕겨보면 탱탱 맑은 소리의 울림으로 청각도 만족시켜준다.

 

 

 

 

 

 

 

2. 새 그리기

 

 

3. 연필로 그린 선 위에 색연필로 다시 입혀 그리기(선에 명암·강약을 넣는다.)-손가락에 주는 강약의 힘이 리듬으로 변한다. 이 리듬을 타며 그리다보면 춤을 추는 것 같다.

 

 

5. 색 번지기(손끝으로 문대어 번지게 하든가-색연필인 경우, 물을 적게 묻힌 붓으로 번짐효과를 낸다-수채화색연필의 경우. 또는 연필이나 색연필로 문대어 경계의 선명함을 줄인다.)

 

 

 

6. 첫술에 배부르면?
잘 알듯이 탈만 난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이러다보면 인내심과 절제력도 덤으로 얻게 된다.
(이 책에는 순서가 없다. 보고 따라하기 좋거나 맘에 드는 그림부터 따라 그려보면 된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계속 그려보는 것도 좋다. 피카소는 미술선생인 아버지의 주문으로 비둘기발가락만 무려 수천·수만 장을 그렸다고 한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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