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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세밀화명상(8) 시골마을 국제음악제에서의 깨달음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려는데 선 하나로 마쳐야 할 그림인 줄 알건만 미덥지 못해 선을 얹고 또 얹으며 수정하려고만 한다. 지우개를 거의 쓰지 않는 성미라서지만... 결국 종이를 바꿔 새로 시작해보는데 이번엔 잡념이 끼어든다.

 

筆法雅妙 無一點俗氣

 

‘잘 그려야지’가 ‘똑같이 그려내야지’로 둔갑한 욕심 때문이리라.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뷔용이 마스터클래스(개인레슨)에서 피아노를 더 잘 연주하고 싶어 왔을 한 학생에게 피아노는 옆으로 제켜놓은 듯 마음다스리기로 주어진 한 시간을 다 할애한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은 연신 훌쩍훌쩍 흐느낀다. 많이 떨었던 게다. 제대로 연주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스러워서 울고 있는 것일 게다. 음악수업으로 들리지 않는다. 어깨와 손가락 그리고 손등의 뼈 움직임에 대해 마디마디 차근차근 일러주는 모습이 마치 체조 레슨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지난 2월 전북 남원에서 제2회 지리산 국제음악제가 열렸다. 음악콩구르에 참여한 학생들은 마스터클래스를 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 비하면 참으로 시골다운 우리 마을에서 이런 국제음악제가 열리다니, 은근히 깔봄이 깔렸을 호기심에 들렸다가 되레 더 큰 수확을 얻었다. 바로 마스터클래스를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어서다.

 

드뷔용 교수는 올해 서울예고에 입학한 한 남학생의 연주를 듣고 잠깐(꽤 짧지만 길게 느끼게 한 침묵) 후, 이 곡을 치면서 떠올린 게 무어냐고 묻는다. 학생은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떻게 느낌 없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 피아노와 무관한 내가 혼자 대답한다. 대답을 기다리던 드뷔용 교수가 웃는데 그 학생처럼 멋쩍어 보인다. 황당... 내가 든 기분과 얼추 같아서 였으리라.

 

“같은 곡조를 세 번 연거푸 연주하는데 똑같이 한 덩어리로만 들린다. 학보 상 같은 곡조이지만 다 다르다. 다른 느낌을 가져봐라.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지 말고 담아서 걸어 가봐라. 발을 하나하나 떼듯이.”

 

마스터클래스를 마치고 나오는 고 1 예비 피아니스트에게 물었다.

 

“어떤 느낌으로 쳤느냐고 물을 때 대답을 못하던데 왜지?”

 

역시 웃기만 하는 학생에게 손가락 기교만 가르치는 선생들이 떠오른다.

 

다른 학생의 마스터클래스. 내 귀에 꽤 잘 쳤다. 이 대학생은 이번 콩구르에서 개인레슨 때와 같은 곡을 쳐서 1등을 하게 되는데, 연주를 들은 드뷔용은 그 전 학생보다 더 긴 침묵(그래봐야 30초를 넘진 않았지만)을 깨고, “손가락 기교는 호로비치의 장점이다. 그런데 베토벤으로 슈만을 친다면? 모차르트를 차이코프스키로 친다면?”

 

그는 피아노에 앉아 학생이 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쉬카 대신 다른 곡을 실연해 보인다.

 

“노래와 반주, 그리고 페달이 다 뒤섞여서 듣고 싶은데 후루룩 달아나버린다. 너무 빠르고 덩달아 제스처도 지나치게 크다.”

 

내 귀엔 매우 빨라 드라마틱하게 들린 연주가 잡음으로 들린다는 이유의 지적이다.

 

“숨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은 속력이다. 달리 말하면 도망치는 것과 같다. 출렁출렁거리며 가봐라.”

 

드뷔용이 무용을 하듯 두 손과 어깨를 덩실거린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대화, 곧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단어장 읽는 것처럼 연주하고 있다.”

 

그는 끝으로, “페달과 페달 사이에 공기가 있다고 생각해봐라. 강·중·약이 아니라 강에서 중으로, 중에서 약으로 그 사이의 무수한 단계를 느끼고 페달을 밟아보도록 하라.”

 

그는 연주 없이 페달을 밟아 보이는 데 마치 바람 찬 공을 밟는 것 같이 물렁물렁 때론 말랑말랑, 짜랑짜랑도 했다.

 

내친 김에 다른 교수의 마스터클래스를 기웃거렸다. 어제 연주에서 피아노 듀오로 갈채를 받은 일본에서 온 노부히토 나카이 교수다.

 

“살에 날카로운 게 닿을 때 느낌을 알겠느냐? 그 느낌에는 섬뜩도 있을 수 있고 차가움일 수 있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시원함으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에서는 무엇이 느껴지는가?”

 

행위를 언어로 바꿔 듣는다. 일본인 학생은 한국 학생들과 다르게 머뭇거리지 않고 무어(일본말)라고 대답한다. 일본인 교수와 제자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네 언어로 말하며 웃는 것을 엿듣는데 대화의 느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의성어는 세계공통어라서 였을 것인데,

 

“쾅쾅쾅(과) 콰웅콰웅콰웅...”은 다르지 않느냐? 오른손을 치켜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친다. 한 번은 바로, 한 번은 중간 멈춤으로 번개가 치듯한 행위에서 폭풍을 예로 드는 것 같았다. 강약과 농담을 들려주고자 하는 것으로 들렸다. 말로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나카이 교수에게서 열정과 온정이 섞인 사랑이 전해왔다.

 

드뷔용과 나카이의 개인레슨에서 문득 10여 년 전 삼익피아노가 후원한 피아노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던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이 떠올랐다. 강충모 교수가 맡았는데 너무나 비교가 돼서다. 아들 바로 전에 연주한 서울예고 3학년 여학생은 강 교수가 잘 아는 학생인 듯 말한다.

 

“니가 잘 치는 건 안다. 그렇지만 너 혼자만 잘 친다고 알고 있는데 ...... 언제 날 찾아와 본 적 있어?”

 

듣는 나나 옆의 아내나 아들의 피아노 선생님도 모두 횡설수설로 들렸다. 듣고 있자니 자기를 찾아오지 않았다라든가, 자기에게 레슨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학부모들이 있는 공개된 자리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의도된 것인지 모른다. 다른 부모도 들으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공개장소에서는 해선 안 되는 말을 저렇게 버젓이 해댈 수는 없질 않은가.

 

그가 가져야 할 수치심은커녕 듣는 우리에게는 소위 최고의 음대를 보내고 싶은 학부모에게 겁을 주는 것으로 느껴야 했다. 그 몇 년 후 차이코프스키국제 음악콩구르가 한국 수원에서 열렸는데, 강충모에게서 사사한 학생들이 꽤 많았다. 거기서 들리는 얘기, 그 교수에게 사사해야...

 

그렇구나, 그래서 한국의 예술-여기선 적어도 피아노-수준이? 몇 년 뒤 확인하고 확신을 하게 되었는데, 드뷔용이나 나카이 교수의 마스터클래스에서는 꼬박 1시간을 다 채우던 개인레슨과는 달랐다. 같은 레슨비 20만원(15년 전 때와 같다.)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10분? 으로 끝내고 말았고 그 내용도 듣고 있기 민망할 정도로 음악의 문외한인 내가 판단해도 수준 이하의, 인신공격까지도 불사한 꼴불견이었다.

 

보자. 아들 차례. 많이 떨고 있는 게 연주 중에 훤히 보였다. 앞서 연주한 아주 잘 치던 누나가 강충모에게 거침없이 깨지는, 더더구나 어린 초등학생이 듣기에도 피아노 외적인 이유로 기를 죽이는 것을 보고 쫄지 않을 수 있었겠나. 후에 물으니 그랬단다. 피아노 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마스터클래스 참여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실토했다. 어쨌든 아들의 연주가 끝났다. 강충모의 첫 마디는 아직도 생생하다.

 

“여긴 왜 왔냐? 이 곡만 육 개월을 치고 온 게 분명하다.”

 

듣고 있던 나는 ‘한 달’이라고 소리쳐 시정해주려다가 학부모라는 약점으로 들킬까봐 가만 있어야 했다. 아내가 내 성깔을 미리 알고 내 손을 잡아줘서 멈췄다. ‘한 달도 안 쳤다’라고 대답도 못하고 눈물만 찔끔거리는 아들에게 강충모는 급기야 어린 아이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왜 피아노를 치려고 하냐? 다른 거 하라.”

 

1시간 예정의 개인교습을 불과 3분 만에 끝내고 내려오는 아들을 안아주며, “그래 피아노는 여기서 그만 두자. 이런 한국에선 더 가르치고 싶지 않구나.”

 

아무튼 그 땐 마스터클래스(이 명칭이 주눅 들게 만든다.)라는 게 다 그런 줄 알았고 그래서 그냥 내 아들 부족탓과 애비로서의 경제력탓으로 돌리고 물러났었는데 십여 년 후 시골의 국제음악제에서 우연히 본 프랑스와 일본 피아니스트들의 마스터클래스를 보니 뒤늦게 사기 당한 기분에 영 마음이 찝찝하고 괘씸하다. 레슨비를 떼먹힌 데에 사기 당한 기분이고 국내 최고 수준의 피아니스트가 고작?

 

괘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동네 피아노학원 선생님의 열정으로 예원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떨어졌다. 아빠인 나는 떨어져서 잘 했다고 했다. 피아노를 하루 10시간 이상씩 칠 개월을 쳐온 아들이었다.

 

“그런 노력이라면 뭘 하든 해낼 거야.”

 

아빠가 해준 격려는 기껏 이 말 한마디였지만, 1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드뷔용 교수가 아들처럼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학생에게 해 준 말과 사뭇 비슷해서 안타까움 섞인 자조가 절로 나온다.

 

“잘 할 수 있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 그때는 긴장감도 자연히 풀어지게 되니 열심히 피아노를 사랑하라. 그러나 피아노만을 사랑하지 말고 자연의 하나로서 피아노를 받아들여라. 피아노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피아노를 떠나라는 건 아니다. 즐겨라. 그럼 다시 말하지만 잘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어느 순간이 온다.”

 

아들은 피아노를 취미로 갖게 할 수 있었던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고 회고한다. 최근에 물었더니, “그 강충모가 고맙지 뭐. 정나미 떨어지게 만들어줬으니. 그때 예원중 가고 예고 가고 더 잘해 서울대 음대에 갔다면 그 자를 보려하지 않아도 봐야 했을 거 아냐. 그러니 고맙지 뭐. 그런 손가락장난교향곡이나 칠 무식쟁이와의 인연을 그때 깨준 게. 그가 그랬잖아. 다른 거 하라고. 그 충고도 고맙고. 그렇게 하고 있잖아 지금.”

 

베껴 그리는 중에 알게 해주는 것. 분노는 비로소 앎이며 분출한 깨달음임을. 그러기에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게 분노라는 것을.

 

드뷔용 교수가 제2회 지리산국제음악콩구르에서 우승한 서울대 음대생의 연주에 대해 흡족치 못해하던 표정과 그가 한 말,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단어장 읽는 것처럼 그저 대목대목 씩씩하게 치는 게 음악이 아니다. 그럼 피아노는 타악기일 뿐이다.”

 

같은 곡을 중국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들어봤다. 정말 그랬다. 같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쉬카지만 전혀 다른 곡처럼 들렸다. 그 날, 마스터클래스를 받은 부산에서 온 대학원 여학생의 말이 요점을 정리해준다.

 

“진즉에 이런 기회가 내게 있었더라면?”

 

마스터클래스의 장면사진을 그림화하는 데 든 잡다한 생각들이 속기(俗氣)이리라.

 

筆法雅妙 無一點俗氣(필법아묘 무일점 속기/그림이 우아하고 묘한 구석이 있으나 더러운 기운 한 점 없다.)

 

그림을 그릴 때 이 문구를 먼저 새기는데 번번이 깨고야마는 잡념들로 오히려 그림은 역부족의 자각으로 더 흡족하다. ‘너 자신을 알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잡념은 깨달음으로 발전하는 때가 가끔 있곤 해서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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