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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세밀화명상(10) 명상의 목적,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가볍지 말 것

“그림을 그리려면 뭐든지 자연 자체를 그래도 옮겨라. ...... 자연은 그야말로 한 폭의 살아있는 커다란 그림이다.” (이탈리아 피렌체파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

 

언젠가 내 글에 인용할 양으로 <나의 백과사전 3>에 옮겨 놓고는 사르토가 한 말대로 자연을 찾아 주변을 훑었다. 나비가 날고 있었다. 올해 처음 보는 나비다. 보고 그리려니 이미 딴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기꺼이 내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생각은 없었다.

 

 

나비가 그랬는지 내 생각인지, 아무튼. 흘겨본 대로 스케치로 그려보기로 하자며 연필을 집는데 사르토의 말이 적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렇게 긴 소설인지 몰랐다.-꽤 두꺼운 책을 그래서 부러 외면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나비는 쉽게 그려지겠지만 똑같이 따라 그려보기로 한 이상 원본이 없으니 핑계가 생겨난다. 나중에! 그러며 소세키를 다시 집어 들었다.

 

“자네가 곧이곧대로 믿을 줄은 몰랐네. 하하하.”

 

이탈리아 화가가 한 말이 아니라 인용까지도 지어냈다는 글이 이어졌다. 그 ‘자네’는 나이기도 했다. 속았구나, 그냥 무턱대고 베껴 쓴다면? 큰 탈 낼 뻔했네 하고 <나의 백과사전>에 옮겨 쓴 글씨를 성을 내며 찍찍 그어버렸다. 다행이지, 하며 더 읽는데 소설의 인물로 즐기는 골계미에 속아도 웃을 수 있었잖아? 자위해본다. 이렇게 웃길 수도 있구나,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소세키의 재주에 탄복한다.

 

<개미>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열여섯 살 때부터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왔다는 글-그가 나름 유명해진 후 <상상력사전>으로 세상에 나왔다.-을 읽고 나도 매우 뒤늦은 오십 넘어 따라 시작한 <나의 백과사전>이 두꺼운 대학노트 세 권 째를 채워가고 있는데, 다 남들의 글을 모은 인용모음으로 소세키 소설이 정성 들여 옮긴 이것들을 믿어도 될까, 의문을 넘어 의심하게 만든다.

 

나 같은 사람을 빗대어 고양이로 의인화했겠거니 하며 그 소설을 읽는데 고양이는 위장병과 허세와 자기기만의 소세키 자신이기도 하다는 걸 알고 또 역시 위안 삼아본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한다.

 

‘남을 따라 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 한 부끄러울 순 없다.’

 

남의 그림이나 사진 보고 따라 그리기를 위한 변명이지만 따라 그리면서 무작정 따라서만 그려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똑같이 그려내지 못하는 솜씨의 서투름 때문이겠지만 그리는 중에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은 나의 맘씨를 하나로 꽤나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솔직함이랄까. 좀더 확장하면 정직일 수도 있다. 쉽게 말하자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서의 맘씨일 테다. 명상에 목적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가볍지 말 것.

 

그래서 보통 명상 때 눈을 감게 하는데 나의 세밀화명상에선 반대로 두 눈을 더 부릅뜬다. 이것이 다른 명상과 다르다. 두 눈을 더 부릅뜨면서도 마음은 평안으로 한결 같아지고 오히려 정신은 일관되어간다. 눈을 감지 않기 때문이요,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씩 늘어나는 솜씨도 느껴온다.

 

또 남의 글 모음인 <나의 백과사전>엔 이런 글이 옮겨있다. 누가 했든 믿거나 말거나, 의미로 공감하면 되지 않겠는가. 공자왈맹자왈처럼, 행동과 다른 말이나 글들은 웃기려는 개그보다 더 웃게 하는데 개그와 달리 조소가 곁든다. 그들의 한결 같은 제스처인 점잔 빼는 표정이나 동작은 어느 개그보다 탁월하다. 웃긴다는 점에선.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는다는 화가의 대다수 거짓말의 매우 진중한 듯한 태도도 그렇다. 웃긴다. 웃다가 자빠질 뻔하니 개그보다 더 낫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말이 또 있을까. 타고난 재능이라곤 없었음에도 위대한 일을 이뤄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어떤 자질들을 통해 위대함에 도달하여 소위 ‘천재’가 되었으며, 그 자질이란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의 부족함을 결코 자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먼저 부분들을 완전하게 구축하는 법을 익히고 나서 커다란 전체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장인의 진지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부분들을 구축하는 데에 기꺼이 시간을 들인 이유는, 눈부신 완성품이라는 결과물보다는 부차적이고 신통치 않은 것들을 훌륭하게 개선하는 일에서 더욱 큰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꺼이 내가 세밀화에 시간을 들이는 이유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니체가 대신 잘도 설명해 놨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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