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의 100세 이상 어르신은 225명이다"

  • 등록 2025.07.01 10: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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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오복(五福)의 선두주자 치아 덕에 아는 자리돔의 맛

요즘 들어 어머니의 하루는 오후가 되어서야 시작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오늘은 애간장과 인내심을 거의 다 태우고 나서, 저녁 7시쯤에 눈을 뜨셨다.

 

그 사이에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눈을 뜨지 않으신다. 어떡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이번에는 어려우실 듯 하다’는 등의 하소연을 해댔다. 하나마나 한 걱정이라서일까, 아니면 노인들의 잠은 보약과 같아서 그럴까? 한결같이 보내오는 응답이 ‘그냥 주무시게 놔둬라. 잘 만큼 자고 나면 일어나실 게다’라는 소리다.

 

어머니의 시간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줄을 알면서도, 마치 혼자서 걱정하다가 무슨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다. 어쩌면 책임질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서 미리 공유하려는 듯 꼭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아, 나의 이 한없이 나약하고 비겁한 마음을 어찌할거나.

 

정말로 노인에게는 잠이 보약이다. 기운이 충전되셨나 보다. 어머니는 필요한 만큼 주무셨는지, 슬며시 눈을 뜨셨다. 백설공주가 따로 없지 싶다. 누구나 깊은 잠에 빠져서 눈을 뜨지 않을 때는, 저러다가 깨어나지 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의심과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올 것이다.

 

‘스멀스멀’이란 말이 나왔으니, 평생에 잊히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요즘처럼 더위가 시작되던 초여름이었던 듯 하다. 아마도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낮 시간에 방안에 오글오글 모여들어서 잠을 잤으니까 말이다.

 

아주 달게 깊게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눈이 크게 떠졌다. 벌떡 일어나 보니, 세상에! 내 머리맡으로 뱀들이 오글거리며 기어 나오는 게 아닌가. 허옇고 누렇고 징그러운 실뱀 덩어리였다. “아버지, 여기 봅써!” 하며 소리치자, 옆 자리에서 주무시던 아버지께서 얼른 일어나셨다. 다음 일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무서워서 방안을 뛰쳐나가 마당으로 도망을 쳤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후로는 ‘뱀’이란 단어가 등장하면, 언제나 이 사건이 형광등처럼 불을 켠다.

 

오늘도 나의 글은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요즘의 내 기억과 일상이 그렇듯이. 103세 어머니와 서로 발을 맞대고서 자서 그렇까? 103에 내 나이 65를 더하고서 평균을 내면 84세가 된다. 적어도 나는 내 동년배들보다 10년은 더 늙어진 느낌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박완서 선생이 79세에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그때까지도 계속 글을 쓰셨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 이렇게 글을 실어주는 지면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

 

요즘은 사람 이름과 날짜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일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탓하게 된다. 어머니와 같이 23년을 살아오는 동안 13년을 한 방에서 지내고 있다. 그래서 생겨난 수면부족의 문제가 나의 기억력을 크게 갉아먹었다 생각하며 후회도 하고 자책도 해본다.

 

이러한 내 마음을 하늘이 헤아리고 계셨을까? 오늘 아침에 뜻밖의 전화가 멀리서 걸려 왔다. 탐라대학교 시절, 고단하고 피곤해지면 중문으로 내려가서 쉬곤 했던 광명사의 보살님이다. 누룽지를 맛있게 끓여주시던 생각에 마음이 어느새 따사롭고 정다워진다.

 

갑자기 스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나서 홀연히 짐을 싸고 육지로 떠나신 분. 그분이 8월이나 9월이 되면 놀러 오신단다. 이제부터 누룽지를 열심히 모아서 한 보따리 싸들고서. 눈물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려 한다. 우정이란, 사랑이란 하늘이 우리에게 예비해 놓으신 선물인 게다. 우리가 열심히 저금을 한다고 해서 우정이 생기는 게 아님을, 이제 노인이 되고 보니 아련하게나마 알 듯 하다.

 

다시 어머니와 발을 맞대고서 밤을 지낸다. 어머니는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나는 북쪽에다 베개를 놓고. “이디 왕 나영 발 막앙 자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간청을 해도 모른 척 하던 내가. 날씨가 무더워지니, 낮 시간에 잠깐씩 조는 일이 생겼다. 어머니 방에서, 어머니 말대로 서로의 발을 막고서 눈을 붙인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편안해 온다. 이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낮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어머니의 편안한 숨소리가 내 마음을 가만가만 어루만져 준다.

 

내가 '물애기'(갓난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내 덕분에 젖을 물리는 시간 동안, ‘마음 내려놓고 눈을 붙였다’고 하셨다. 열 명을 낳아서 아홉을 그렇게 키웠다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이 휴식이고 사랑이고 행복이었다고. 새근새근 잠이 든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노년에는 외로움이 가장 큰 슬픔이겠다 싶어서, 울컥하니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른다. 이 여름을 잘 버텨내셔야 할 텐데...

 

지난주에는 어머니가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다 벗어 놓으셨다. 왼손에 3개, 오른손에 3개씩 끼셨던 거다. 평생 밭 일과 바당 일을 해 오신 어머니에게 무슨 반지가 있었으랴. 어머니 회갑에 언니가 해드린 금반지를 빼내고서, 대신에 막 끼어도 좋은 것으로 두 배를 끼워드린 거다. 청옥, 황옥 반지에다 누가 ‘성당에서 기도할 때 낀다’며 선물해 준 것을 더했다. 거기에다 어쩌다 생겨났는지, 철사 반지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따금 어머니가 금반지를 빼놓고서 잊어버릴 때가 있어서 예방조치를 한 셈이다.

 

옥 반지는 금 반지처럼 누렇지도 않고 색깔이 아름다운지라, 어머니는 오히려 더 좋아하셨다. ‘모전여전’이라고, 나도 반지의 값과 멋을 모르므로, 24K 순금반지보다 이름의 이니셜을 넣은 은반지를 골랐었다. 어머니가 빼놓은 반지가 왠지 기죽어 보이기도 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해서 내심 마음이 울적하던 차. 엊그제는 그 반지를 다시 당신의 손가락에 주섬주섬 끼우셨다. 아, 얼마나 안심이 되고 다행스러운지. 사람이나 물건이나 제 자리에 있어야 만사가 편안하지 않던가....

 

요즘들어 달라진 게 하나 더 있다면, 돈에 대한 애정의 강도다. 지난주에 미국에서 놀러 온 손자들이 할머니 용돈이라며 ‘돈봉투’를 드렸다. 파란색으로 빳빳하게 빛나는 게 스무장이었다. 일부러 헤아리는 기분과 손에 잡히는 느낌을 고려한 배려였다. 어머니는 한 번 두 번 세 번 헤아려보더니, 봉투를 아무도 모르게 당신의 요 밑으로 집어넣으셨다. 아, 그러곤 잊어버리셨는지, 예전처럼 아침저녁으로 확인차 꺼내보는 일이 없으시다. 그 좋아하는 돈도 잊어버리신 게다. 보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나이. 인생이란 이렇게 강물처럼 마냥 흘러가는 것인가.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때마다 106세 철학자이신 김형석 교수님의 ‘행복론’을 듣는다. 철학의 원조이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행복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정작은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다. 인격이란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남을 대하고, 일을 하면서 거기에 쏟아 놓는 진심이다. 나는 어머니께도 진심을 다하지 못 하니, 어른이 되기엔 아직도 멀었다.

 

저녁 식탁에 언니가 손수 지져서 가지고 온 자리(자리돔을 일컫는 제주어)를 한 접시 올려 놓았다. “아고, 이 자리! 오글오글 허게 누게가 이추룩 잘 지져시니?” 자리 하나를 통째로 집어서는 입에다 넣고서 오물오물 씹으신다. 아, 저 튼튼한 치아의 힘, 보목동 자리의 부드러움이여! 신체 오복이란 튼튼한 치아, 원활한 소화 기능, 밝은 시력, 예민한 청력, 원활한 배설 기능을 말하니, 역시나 치아가 오복의 선두 주자다. 물론 균형 잡힌 식단,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가 기본이지만 말이다.

 

올 여름의 이 무더위를, 제주의 백세 어르신들 모두 잘 이겨내시길 빌어본다. 2025년도 5월 말 현재 제주도의 100세 이상 어르신은 225명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ohur19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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