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랑 아프지 말라 이!"

  • 등록 2022.10.17 11: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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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이제는 다 살았다 (2)

아침마다 기저귀를 갈면서 가만히 살펴보면, 어머니의 다리가 많이 가늘어진 듯 하다. 그래도 장딴지 만큼은 다른 어르신들보다 튼튼하시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죽만 남아서 탄력 없이 헐렁거린다. 엉덩이 부분도 볼기의 두둑한 살이 많이 빠져서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쭈글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 오래 사시느라 너무 수고가 많으셨다. 이 두 다리로 한라산 중산간과 오름을 누비면서 얼마나 많은 고사리를 캐셨던가. 물질하러 바다를 오갈 때는 산지동산을 오르내리고 고닥고닥 돌짝길을 걸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2남7녀를 키워내시느라 동새벽에 일어나서 물항아리 가득 물길어 놓고,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빌레왓으로 내달리실 때는 얼마나 마음이 다급하셨을까.

 

100년을 사시면서 얼마나 힘겹게 땅을 밟고 버텨내셨으면, 이렇게도 힘살들이 녹아들었을까. 깃털처럼 가볍게 말라버렸을까. 이게 어머니가 지나온 삶의 흔적이구나.... 아, 제주도 여인의 일생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 온다.

 

 

코로나19의 격리기간이 닥치기 전에는 교회 여성들이 토요 봉사모임을 만들어서 독거노인을 방문하곤 하였다. 주로 말벗이 되어드리는 게 목적이지만, 혼자 사시는 분의 경우에는 이왕 찾아간 김에 청소도 해드리고 음식도 마련해 드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어르신이 계신데, 물질을 하면서 혼자서 두 아들을 키워내신 강할머니시다. 할머니의 남편은 ‘돈 버는대로 곧 돌아온다’며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그만 함흥차사가 되고 말았다. 아니, 오사카차사라 하는 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70년대 들어서 성공한 재일교포들의 고향 방문이 물결치면서, 파도에 등떠밀리듯 제주도에 들어왔다. 그리고 고향마을까지 이르렀는데... 세상에! 아내가 사는 집이 아니라 친척집으로 가서 머물렀다. 일본에 처자식이 있다는 소리를, 할머니는 이웃을 통해 들었다.

 

그동안 강할머니는 혼자서 지금 사는 집을 지었다. 재목은 한라산에 올라가 나무를 손수 베어서 등짐으로 날랐다. 땅을 파고, 돌을 쌓고, 흙을 바르고, 서까래를 하면서, 문득문득 일본 간 남편을 떠올렸으리라. 돌아오시는 날 이 집에 들어서면, ‘내가 손수 지었다’고 자랑하리라 생각하고, 상상하고, 다짐하면서....

 

시부모가 돌아가시자 산터를 정하고,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고, 벌초도 하였다. 남자가 해야 할 일체의 일을 여자 혼자서 묵묵히 해냈다. 동네에서는 여장부로 불렸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의 손은 마치 거름을 낼 때 쓰는 쇠스랑처럼 크고, 검고, 거칠어졌다.

 

타고 나기를 키가 크고 체격이 큰 편이지만, 아... 그건 겉으로 보이는 허우대뿐이었다. 다리통이 얼마나 가는지, 만져보면 마치 ‘새의 다리’처럼 부서질 듯 연약하였다. 살점이라곤 눈콥만큼도 만져지지 않는 뼈와 가죽 뿐의 합성체라니... 어깨는 얼마나 좁은지, 걸쳐진 스웨터가 미끄러질 정도로 작고 쳐져서 만지기가 조심스러웠다. 아, 비맞은 새처럼 연하고 약하고 작아진 제주 여인이여...

 

다행히 할머니는 여간 해서는 아프지 않으셨다. 젊었을 적의 해녀 노동과 밭일이 체력의 기초를 받쳐주었을까.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눈에 티끌이 보이거나 하면 가만히 계시지를 못하셨다. 바로 걸레를 들고 훔치고 닦고 쓸고.... 그런 부지런이 운동이 되었을까. 요컨대 할머니는 건강하게 99세까지 당신의 집에서 꿋꿋하게 사셨다. 어쩌면 그 집이 남편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어머니도 해녀를 40년 넘게 하셨다. 여름이면 아침 저녁으로 밭일을 하시고, 한 낮에는 두 세 차례씩 물에 들어서 소라를 잡으셨다. 여름이 지나면 어머니는 마치 거미처럼 새까맣게 말라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그 물질로 우리가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60〜70년대 농촌에서 해녀의 물질은 ‘금전’을 뜻하였으니까.

 

2남7녀를 모두 학교 마당에 올려 보낸 어머니는, 오라방들 몰래 야학에 가서 한글을 깨친 것을 당신의 행운이라 여기셨다. 스스로 성경책도 보시고 찬송가도 부르신다. 조카 옥화는 부자집에 시집 가서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아도 한글을 모르는 까막눈이니....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하겠느냐 하면서 오히려 안쓰러워하셨다.

 

어쩌면 그러한 배움의 경험 때문에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시려고 그토록 손 발이 다 닳게 일만 일만 하셨으리라. ‘어떤 사람은 아파서 눕기도 하는가..’ 하시면서 아플 새 없이 사시사철 밤 낮으로 일만 해 오신 50년 세월.

 

7살부터 밭고랑에 앉아서 검질을 매고, 12살에 애기좀수가 되어 17살에는 육지로 원정물질을 다니고, 63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시기 전까지 한라산 고사리, 대포바당 물질로 끊임없이 당신을 일 구덩이에서 담금질 하듯 살아낸 세월.

 

이제는 백세가 되어, 당신 몸을 스스로 지탱하기도 버거워지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팡이를 두 개 짚고서 끊임없이 움직이시는 의지라니... 지팡이로 삐뚤어진 의자도 바로잡으시고, 마당에 나가시면 흩어진 소라껍질도 제자리에 정돈하신다. 그야말로 김종두 시인의 ‘사는 게 뭣 산디’를 있는 그대로 살아가시는 삶이다.

 

‘사름 사는 일은 험한 산을 오르는 거여. 이녁만씩 인생의 탑을 쌓아 가는 거여. 으납(안개) 속을 걷는 나그네처럼 서두르지 말라. 허천도 보지 말곡 쉬이 낙담도 허지 말앙 꼬닥꼬닥 걸으라. 가시덤불 속도 헤매 보곡, 내창질(하천길) 푸더지멍 댕기당 물도 기리곡 배도 고파 봐사 시상 물정을 아느네. 발바닥 붕물게(물집 생기게) 나상 댕겨보곡, 손바닥 굉이지게 살아 봐사 어려움도 알곡 고마운 줄도 아느네. 산을 오르면 이내 해는 져불곡, 탑을 쌓고 나면 우리의 육신은 깃털이 되고 말주만, 버친 삶 짊어졍 살아 온 똠과 눈물. 이게 우리가 살아 온 보람이여. 이게 사름 사는 거여’

 

그처럼 담대하고 그야말로 무정하게 튼튼하시던 우리 어머니가, ‘버친 삶 살당 보난 야게기만 고느라졌져(힘겨운 삶 살다 보니 모가지만 가느라졌지)’라고 하소연하신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니랑 아프지 말라 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하신다. 아, 당신의 몸이 아프신 게다. 이제는 손을 잡아 드려야 일어날 수 있고, 밥을 떠먹야 드려야 하고, 맨 밥을 삼키기도 힘들어서 물의 힘으로 넘기시는 형편이다.

 

얼마나 하루하루를 살아내시는 게 버거우시면, 하루 종일 끄덕끄덕 졸음을 조실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면, 우리 딸도 이렇게 어려운 삶의 끝자락을 견뎌내야 할까 싶어서 ‘너는 아프지 말았으면...’하는 생각을 다 하실까. 아, 우리 어머니... 너무 많이 아프지는 말아야 할텐데... 오죽하면 요양원 할머니들도 ‘자는 잠에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소원처럼 되뇌이실까.

 

어떻게 사람이 아프지 않고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을까. 때가 되면, 마치 이제는 세상 소풍 끝내고 ‘어서 돌아오너라’하는 음성에, 나비처럼 나풀나풀 하늘로 날아갈 수는 없을까. 그것은 오직 하늘의 주권이거늘... 그러니 사는 날까지, 살아계신 동안에 많이 안아드려야지. 어머니의 삶을 부둥켜안고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지나고저!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부디 아프지 마세요!!!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hhospi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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