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잔치, 100세 노인이 더위를 잊게 만들다

  • 등록 2023.08.14 14: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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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게웃젓과 그 시절의 추억 ... 고향방문 효과

 

올 여름은 특별하게 무덥다. 100세 노인에게는 가혹할 정도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오늘 오후 1시 30분 현재, 온도계는 섭씨 32도 너머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에 의하면 햇볕에 의해 기온이 오르고 습도도 높아 체감온도는 35도가 넘는다. 그러면 그렇지! 오, 참을 수 없는 한낮의 무더위여! 전반적으로 올해 8월의 체감온도는 예년의 8월 평균기온보다 다소 높을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 통계를 들여다보면, 지난 7월 10일 오후 1시 21분 제주(북부)의 일 최고기온은 37.3도를 기록하였다. 이는 제주기상청이 기상관측을 시작한 1923년 이후 7월 기록으로는 역대 2위, 전체 기록으로는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참고로, 제주지방기상청의 전체 일 최고기온 최고치 역대 순위 1위는 2022년 8월 10일 37.5도, 2위 1942년 7월 25일 37.5도, 3위 1998년 8월 15일 37.4도, 4위 2023년 7월 10일 37.3도 등이다. 7월과 8월이 키재기를 하듯이 낮 최고기온의 신기록 기록을 주고받는 형국이다.

 

심리적으로는 7월보다 8월이 더 무덥고, 오늘보다 내일이 한층 무더울 것으로 보인다. 아, 이 끔찍한 무더위가 내일도 이어진다면, 어떻게 올 여름을 제 정신으로 버텨낸단 말인가. 기온이 올라가면 호흡하기 힘들어지는 노인들에게, 이 여름은 이제부터 얼마나 더 가혹하게 이어질 것인가? 열대야는 또 어떡하라고? ‘오후 6시 1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게 ‘열대야’라니, 하늘의 별이라도 헤아릴 수 없이 은하수로 펼쳐진다면, ‘별 하나 나 하나’를 헤아리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 수도 있으련만은....

 

다행히 어머니는 지금, 8월 13일 오후 2시 30분 현재,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에어컨과 함께 틀어드린 선풍기 바람이 불편하신지, ‘차라리 방에 들어가 자는 것’으로 더위와 타협을 보신 모양이다. “니도 나 옆이 왕 자불라”고 하시는 걸 보면, 결연한 전투의지를 내려놓고, ‘차라리 잠들기’로 당분간 휴전을 하시려나 보다.

 

오늘도 기상청은 낮 최고기온이 31도, 일 최고 체감온도는 33도 내외로, 다음주에도 30도를 넘는 찜통더위가 계속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선풍기는 우리들의 안방으로 들어온 지 수십년이 지났건만,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바람 같지 않은 바람이다.

 

참고로, 최초의 선풍기는 1600년대에 서양에서 고안 발명되었으며, 추를 이용한 커다란 부채를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였다. 1900년대에 전기를 이용한 선풍기가 개발되었고, 모터의 개발과 재질의 발명으로 현재 사용 중인 저소음형 프라스틱 선풍기가 생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외국제품을 모방하여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국산화에 성공하여 순수 국산부품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그 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대중화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수출이 시작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난 주 8일이 절기상 입추임에도 날씨는 가을과 ‘먼 그대’가 되어, 계속 거리를 두고서 열을 올릴 모양이다. 지속되는 고온다습한 날씨에 노심초사인 기상청은, ‘무더위로 인해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으니 수분과 염분을 섭취하고 야외활동은 가급적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한다.

 

특히 농업·건설 등 야외에서 햇볕에 노출되어 일을 하는 직업군은 폭염영향 수준이 최고 등급인 '위험' 상태임을 인지하고, ‘물을 충분히 마시고, 오후 2~5시 사이에는 작업을 피하도록’ 간곡히 요청하는 중이다. 특히 올여름은 평년보다 덥고, 비가 많이 올 수 있단다. 여기에서 평년이란 ‘지난 30년간 기후의 평균적 상태를 이르는 말’로, 여름철인 6월부터 8월까지는 ‘21.1도에서 25.6도’가 평년 기온 값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사이, 어머니는 낮잠을 끝내시고, 다시 거실로 나오셨다. 오늘따라 자꾸 이말 저말을 거시면서, 금시초문의 옛날 이야기도 많이 하신다. 어머니가 웬 일로 조금도 기운이 꺾이지 않으시고, 불한당 같은 무더위 앞에 저렇게 당당하실 수 있으신가? 무더위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 노인, 유아·소아란 사실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 아닌가. 오죽하면 폭염 피해를 예방·대비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무더위 쉼터, 폭염도우미 등 대비책과 함께 캠프를 통한 교육 등을 강화하고 있을까.

 

노인들에게만 유독 햇볕이 더 강해질 리 없건만, 농사일을 하는 노인들이 쓰러지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노인들은 자신의 신체가 약해졌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노인이 되면 체내의 전체 수분량이 줄어듦에 따라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어, 신체가 더위에 한층 취약해지므로 고온·고열로 인한 증상들도 더 빠르고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노인환자들이 일사병, 열사병 같은 열중증 이전에 수분부족과 염분부족으로 인한 탈수, 열실신, 피로, 현기증 등을 먼저 느끼고 쉽게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Medical observer, 2023.8.140).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저리도 더위와 맞서서 담대하신 이유는, 아무래도 고향방문의 효과가 아닌가 싶다. 지난 토요일, 대포 마을에 잔치가 있어서 어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를 떠났다. 더위에 지쳐서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으시니, 혹시나 아는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전환되실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잔치가 열리는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신랑의 어머니 되는 혼주가 우리집의 달맞이 꽃처럼 반갑게도 맞이한다.

 

“아고, 이게 미신 일이우꽈? 백 세 어머니가 이 무더위에...., 이추룩 먼 디까지 오십디강? 삼춘, 고맙수다 예! 이디레 펜안히 앉앙, 맛 존 거 하영 하영 드십서 예! 촐린 건 배랑 엇주만은, 입에 마진 이 개웃젓이영 솔라니영 돼지고기영.... 얼마던지 더 이시난..... 더 도랜 허시곡 예! 오래 오래 앉앙, 먹어가멍, 쉬어가멍, 놀아가멍, 또 드십서 예!(아유,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에 편안히 앉아서 맛 좋은 것 많이 많이 드세요. 차린 것은 별로 없지만은, 입에 맞는 이 전복젓갈이랑 옥돔이랑, 돼지고기랑... 얼마든지 더 있으니... 더 달라 하시고! 오래 오래 앉아서, 먹으면서, 쉬면서, 놀면서, 또 드세요!)

 

“게무로사, 이 백 설 난 늙은이를, 제게 죽어불랜 안 해영, 이추룩 웃져줨시냐? 잘도 고맙고 착허다, 이! 경헌 디, 닌 누게고? 누게네 집 똘산디, 잘도 곱닥허다! 옷도 우 아래 문짝 새 걸로 만들언 입어신게 이! 촘말로 잘 했져! 이디선 니가 젤로 새각시추룩 고와! 신부 어멍이난 경 해사주게!(글쎄, 이 백 살 난 노인을, 어서 죽어버려라 안 하고, 이렇게 공경해주느냐? 정말 고맙고 착하구나. 그런데, 너는 누구니? 누구네 집 딸인지, 참으로 곱구나! 옷도 위 아래 모두 새것으로 만들어서 입었네! 참으로 잘 했다. 여기에선 네가 제일 신부처럼 곱구나. 신부 어머니니까 그렇게 해야지!)

 

뜻밖에 입을 여신 어머니의 얼굴이, 마치 아침햇살에 눈을 뜬 나팔꽃처럼 화안하게 피어났다. 가까운 친척 조카를 대하듯 편안한 모습이, ‘모시고 오기를 참 잘했다’ 싶게 안심이 되었다. 사실, 복잡한 잔치자리에 백세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일은, 한편으론 주저되고, 다른 한편은 걱정스런 일이다. 혹여 분위기를 무겁게 하지는 않을까, 이모저모 폐를 끼치게 되면 어떻하나 싶은 거다. 그런데 마치 일가의 어르신처럼 분위기에 맞는 무게감을 보여주시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신랑 어머니의 표정으로 보아, 오기를 참 잘했다 싶다.

 

 

요즘들어 입맛이 뚝 떨어진 어머니가, 쌀밥에 개웃젓을 얹어 드리자 얼른 입을 벌려 반갑게 받으신다. 역시 입맛이 없을 때는 짭짤한 젓갈이 최고 반찬이다. 더욱이 개웃젓은 해녀 출신인 어머니에게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는 반찬인가?

 

해녀들이 바다에서 수확하는 물건 중에서 가장 귀한 게 전복이다. 그 몸통은 소금에 절인 후 깨끗이 씻어서 말린 후 일본으로 수출하고, 내장은 소라와 함께 젓갈을 담가서 시장에 내다 팔곤 하였다. 아버지가 대포마을 어촌계장 시절에 벌인 소득증대사업 중 하나였다. 그 개웃젓의 은근스레 돌코롬하고 짭쪼롬한(달콤하고, 짭짤한) 맛은, 알 수 없는 밥도둑이 되어서, 육지사람들도 좋아하는 고급젓갈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니, 원산지인 대포마을 해녀들의 부엌에서는 명절이나 제사와 같은 큰일에나 귀한 반찬으로 맛볼 수 있는 것이었다. 요즘은 전복도 양식사업으로 대량생산이 되니, 잔치집에서도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 있을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신랑의 어머니가 개웃젓이 듬뿍 들어 있는 접시를 가져다가 어머니 앞에 놓는다. “삼춘, 이건 우리 시어머니가 특별히 드리는 거난, 하영 드시곡, 오래오래 사십서 예!”라는 덕담과 함께.

 

그 말이 보약이 되었을까. 어머니는 게웃젓을 얹어서 밥 한 사발을 거의 다 드셨다. 그 사이에 동네 분들이 오셔서 “삼춘, 나 알이지쿠과?”라면서 반갑게 인사들을 하였다. 특히 우리집과 이웃하여 살았던 내화 언니는, 어머니가 식사하는 내내 옆에 앉아서 ‘그 시절의 추억’을 꺼내 들었다.

 

“삼춘이 이제는 대포에서 젤로 큰 어른이우다, 예! 그 때는 삼춘이 하도 일만 일만 하영 허난, 이추룩 오래 살카부댄 생각을 못해수게. 동새벽이 일어낭 밥허당 보민, 삼춘네는 어느새 밥을 다 먹엉 밭으레 가는 거라 마씸. 경 허민, 우리 어멍은, 아고, 저 정열이 어멍은 육십만 되민, 앉앙 일어사지도 못할 꺼여 허멍 소뭇 저들아수게(사뭇 걱정을 하셨어요). 삼춘, 이 여름도 더위 멩심해영 잘 보내시곡, 더 건강허게 오래오래 사십서 예! 우리 아들 잔치헐 때도 꼭 오시곡 마씸! 고슬 틀민 잔치 해짐직 허우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혼주의 어머니 애기를 하셨다. 성은 당신과 같은 김가인데, 이름은 옥련이라고.... 얼굴도 곱고 물질도 상군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잔치집 혼주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먼 친척뻘이다. 물질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시던 분으로 기억된다. 동네에서 걸궁을 하거나 잔치가 벌어지면, 구성지게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참으로 유쾌하고 활달하셨는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옥련이 물질 하나로 온 식구가 먹고 살았단다.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

 

그래서 노래에다 시름을 싣고 물질하며 걱정을 차버렸을까? 그래도 술만 좋아하는 남편을 잘 봉양한 덕분에, 딸들도 물질하면서 이웃에 살았으니..., 노년에 외롭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래, 한 세상 사는 거,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게 아닌가. 김종두 시인의 ‘사는 게 뭣 산디’를 펼치면, 제주도 어머니들의 삶이 마치 파도치는 제주바다처럼 거칠었던 게 보인다.

 

‘분시 모른 씨아방 모셩 살멍, 집안 거념호당 보난, 고슴만 보타불곡, 패라운 서방 비위 맞추멍 조식 거념호당 보난 망태 할망 되어 부렀수게(세상물정 모른 시아버지 모시고 살면서, 집안을 도맡아 추스르다보니까, 가슴만 다 애타게 붙어버리고, 까다로운 남편 기분 맞추면서 자식 기르다 보니, 보기 싫게 늙어버린 할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보랜 날 호루믄 거친 날은 혼 열흘, 제주 바당 절지치듯 조들멍 살아 온 이내 신세. 할로산이나 알아주카 맏심.(잔잔한 날이 하루라면 거친 날은 약 열흘, 제주 바다 파도치듯 걱정하면서 살아 온 내 신세, 한라산이나 알아줄까요)’

 

어머니가 이 불볕 더위를 견디실 만큼 심신이 좋아지신 건, 어쩌면 그 옛날의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서, 지금은 ‘이만 하면 되었다’ 싶으신 걸까. 아니, 모두들 어머니를 어른으로 대접해 드리고, 오래 사신 것을 축복해드리니, ‘참 좋은 세상, 더 잘 살아야지!’ 싶으신 게다. 부디 이 여름을 잘 보내시고, 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날, 이 생에서 그토록 힘이 되었던 감귤들이 귤림추색으로 익어갈 때, ‘이만 하면 잘 살았다’ 기도하시고, 행복하게 하늘나라 시민으로 다시 사시기를 기원해 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hhospi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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