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어머니의 냄새, 지나온 시간의 향기

  • 등록 2022.05.30 10: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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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다시 어린아이가 되다(3)

백 세 어머니는 한 살 아이와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기저귀를 간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늘상 하는 일임에도 항상 불편하신 거다.

 

‘네가 며느리가 아니고 딸이라서, 나는 참 복이 많다’는 말 속에 그러한 속내가 담겼다. 이어서 옷을 갈아입힌다.

 

그냥 두면 바지도 몇 개씩 껴입고, 양말도 보이는 대로 다 신고 만다. 다섯 켤레를 신고서 하루를 보내신 적도 있다. 윗옷은 아무리 입어도 모자랄 정도로 보이는 족족 걸치신다. 어떻게 그러고도 걸음을 걸을 수 있을까 싶은데..., 추운 것보다는 무거운 게 나으신가 보다.

 

노상 추위를 호소하는 어머니는, 손도 발도 만져보면 생각보다 서늘하다. 오늘 아침에도 식사를 마치고 요양원 봉고차를 기다리는 사이, 어머니의 두 손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이 손으로 밭일, 논일, 바당일에 한라산 고사리까지 꺾으면서 우리 2남7녀 9남매를 키워주셨구나.

 

“어머니, 오늘도 차 조심허곡, 멩심해영 잘 다녀옵서예. 어머니가 오래 오래 살아사, 우리 모두 기십나곡, 손지들도 훌륭헌 사람들이 될 거우다 예!”라고 언제나 같은 소리로 장수의 사명감을 당부하는 나.

 

“아고 니 손은 무사 영 또똣허니게. 고맙다 이! 고맙다.”라며 내 손을 부여잡고 보물인 듯 쓰다듬는 어머니. 그리고 내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이 늙은 어멍을 제게 죽읍서 아니허고, 냄새 나는 내가 무엇이 좋다고, 이거 먹읍서 저거 먹읍서 허멍 오래 살랜 햄신고.’

 

한편, 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 의하면, 치매노인은 시간·장소·상황에 맞는 옷을 선택하기가 어려워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으려 한다. 더러워진 속옷을 갈아입지 않으려고도 한다.

 

노인의 옷 입기를 돕는 기본원칙은 ▲깨끗하고 계절에 맞는 옷을 제공 ▲몸에 꼭 끼지 않고, 빨래하기 쉬운 옷을 입히기 ▲색깔이 요란하지 않고 장식이 없는 옷을 선택 ▲시간이 걸려도 혼자 입도록 격려 ▲안전을 위해 옆에서 지켜보고, 앉아서 입기 등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서 출제된 요양보호사시험 문제다.

 

치매 노인의 옷 입기를 돕는 방법으로 옳은 것은? 1)단추가 많은 옷을 준비한다. 2)앞뒤가 분명히 구분되는 옷을 준비한다. 3)색깔이 화려하고 장신구가 많은 옷을 입도록 한다. 4)방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도록 방 밖에서 기다린다. 5)시간이 걸려도 가능한 한 스스로 입도록 격려한다.

 

답은 5번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주섬주섬 옷 입는 시간을 느긋이 기다리지 못하는 나. 얼른 눈에 띄는 대로 골라서 어머니 표정은 살피지도 않은 채 후다닥 입히고 만다. 아침 시간은 5분이 얼마나 아쉬운가.

 

가끔은 옷을 입혀드리고 출근한 후 저녁에 와보면 다른 옷을 입고 계시기도 한다. 점잖은 갈색이나 고상한 카키색이, 분홍색이나 빨강색으로 바뀌어 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색깔은 분홍이다. 모자에서 양말까지 꽃분홍으로 입혀드리면, 어머니는 그야말로 한 송이 꽃처럼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어머니도 천생 여자신가. 옷이 날개다. 내 눈에도 어린 아이처럼 예쁘고 귀여워도 보인다. 당신 생각에도 옷매무새가 마음에 들면, 일찌감치 대문 앞에 나가서 봉고차를 기다린다.

 

요양원의 주간보호 총각도 이심전심인가, 어머니에게 ‘고우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날은 아침햇살도 어머니 옷에서 부서지고, 길가의 꽃들도 “예뻐요!”하며 온몸으로 박수한다.

 

식사도 이제는 숟가락으로 일일이 떠먹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 있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손으로 집어서 허겁지겁 드신다. 그러다가 사레라도 들리면 정말로 큰일이다.

 

식사 돕기의 기본원칙 중 내가 가장 잘못하는 부분은 ▲소금이나 간장과 같은 양념은 식탁 위에 두지 않기 ▲식사 전에 음식의 온도를 미리 확인 ▲한 가지 음식을 먹고 난 후 다른 음식을 내어 놓기 ▲숟가락으로 떠먹일 때는 한 번에 조금씩 먹이고 음식을 삼킬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기 등이다.

 

식사 전에 간장부터 찾으시는 어머니를 위해 아예 소금까지 식탁에 놓아두는 것의 오류를, 나는 최근에야 요양보호사 교재를 통해 알았다. 노인이 되면 짠맛과 단맛에는 둔해지고, 신맛과 쓴맛은 민감하게 된다는 사실도. 나머지는 모두 아침시간의 분주함에 따른 서두름의 결과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에 대한 내 정성이 부족해서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그렇게 먹지 않겠다고 도리질하는 녀석을 뒤따라 다니며, 얼마나 애가 타게 숟가락을 흔들었던가? 어머니가 내 손에서 식사를 드시는 이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내게 생명을 주시고, 당신의 젖을 물리시고, 스스로 먹기까지 밥을 먹여주신 어머니. 아, 어머니의 체취가 묻어나는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얼마나 몸이 자라고 마음이 커갔던가.

 

이제는 백세가 되어 체온도 떨어지고 체취도 희미해지신 어머니. 지나온 시간의 향기 속에서 어머니를 보듬어 안고, 지금부터는 내가 어머니의 냄새를 돌려드릴 때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밥 냄새, 옷 냄새, 땀 냄새, 보호의 냄새를.

 

지금은 다가올 헤어짐과 그리움의 체취를 한데 모아야 하는 시간. 외롭지 않게 서럽지도 않게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하루를 백년 같이 살아가야 하리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johur19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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