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맞는 어머니의 100세 생신 ... 장수노인의 비결은 무얼까?(2)

  • 등록 2023.02.20 14: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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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 어머니의 장수비결 10가지

1923년 3월 22일.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의 생일이다. 오는 3월이면 만 나이로 100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유전은,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열거하자면,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마음 둘 곳(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등이다.

 

참고로, 이하의 내용은 제주장수복지연구원과 서귀포시 노인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서귀포시 노인회 산하 노인대학과 대학원에 특강을 다니면서 다루는 주제들이다.

 

1) 일

일은 우리집의 가훈에 다름아닌, 어머니 생애의 핵심 가치다. 어머니의 삶을 이끌어 온, 얼·혼·정신이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삶의 전부다. 100세가 되신 오늘날도, 입에 달고 하시는 말씀이, “노는 것도 혼이 싯주. 아명 솔펴봐도 헐 일이 어서...(노는 것도 한이 있지. 아무리 살펴봐도 할 일이 없어)”라는 아쉬움이자 안타까움이다. 이어지는 한숨이, ‘일을 해사 먹고 살 건디...’라는 염려이자 자성이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일’을 강조하셨다. 하기야, 어디 우리 어머니만 그러셨으랴. 제주도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삶의 모토가 ‘근면·성실’이 아니겠는가?

 

제주어로 시를 쓰신 김종두 선생님의 ‘제주여인 1’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시집 왕 보난 돌렝이 호나, 살아 갈 일 생각호난 귀눈이 왁왁호여도, 우리 할망 살아 온 시상 고슴에 새기명 살았수게. 조냥호여사 밥 먹은다, 호다 멩심호영, 이실 때 애끼곡 젭저 놨당, 어신 듯 존디멍 살라. 올레 밖꼬지, 좇아 오멍 고라주던, 우리 어멍의 혼 시상. 아명호믄 못사느냐, 조름 붙이지 마랑, 탕근도 졸곡 물질도 호멍, 시집 어른 뜻받앙, 살암시믄 살아진다. 아, 탐라 할망들의 삶이여, 제주 여인의 삶이여.’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일이란 끊임 없는 움직임이다. ‘혼 시도 손을 놀리지 안 해영 살았저’라는 어머니는,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나를 채근하신다. “어디 일 헐 거 어시냐? 고만이 앉앙 이시민 누게가 먹을 거, 입을 거 갖당 니 앞에 놔 주느니....?”라고. 지당하신 말씀이다.

 

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큰 오라방 슬하에 얹혀서 살았던 어린 시절. 그리고 17세에 한 동네의 이웃 청년에게 시집을 가서는, 물질을 하면서 열 명을 낳아 2남 7녀를 키워낸 억척. 남들이 차마 못하는 밤바르(겨울 밤에 썰물이 진 바다로 나가서 해삼, 문어, 소라 등을 채취하는 일)를 도맡아 하면서 겨울에도 소득을 창출하시던 부지런.

 

‘대포바당 구젱기와 한라산 고사리를 놔두고서, 어떻게 제주도를 떠나 살 수 있겠냐?’는 조카를 끌어안고, 예순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어머니의 모성. ‘아기를 돌봐주시면 열심히 공부해서 인생의 계단을 조금만 더 올라서 보겠다’는 아들의 요청을 마다할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만은....

 

그래, 그 어머니의 그 딸처럼, 어서 할 일을 찾아 집을 떠나야 할텐데.... 백세 어머니를 놔두고서, 차마 서울로 떠나지 못하는 이 마음을 어찌 아시랴. 어머니는 나에게 한 살 아기에 다름아닌 것을....

 

이제 곧 봄이다. 햇볕이 따뜻해지면 마당으로 나가서 잔디를 뽑으실텐데... 어머니에게 잔디는 잡초에 불과하다. 전에 살던 주인이 곱게 가꾸어 놓은 잔디를 캐어 버리고, 그 자리에 텃밭을 만들어 놓으신 어머니. 어쩌면 겨울에도 배추가 자라는 보목마을에서는, 어머니의 손이 마이더스의 원천이 아닐까....

 

어머니, 부디 올해도 마당의 잔디를 더 뽑아내시고, 텃밭의 면적을 넓히는 개척정신, 그 불멸의 기운을 가열차게 이어 가소서.

 

 

2) 식사

백세 어머니를 위한 고민 중 첫 번째가 식사 문제다. 입맛이 없거나 기운이 없으실 때, 어떻게든 무엇이나 드시도록 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하루만 제대로 못 드셔도 기운을 잃고 자리에 몸져 누우실텐데, 병원으로 모시고 가면 그야말로 일이 커진다. 일상이 깨지는 것은 물론, 아프신 노인들로만 구성된 병실은 어머니를 더욱 무겁게 가라앉힌다. 우선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고, ‘이제는 다 살았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든다.

 

사실, 백세 노인을 하루라도 더 지탱시키는 것은 ‘살아야지’ 하는 의욕이 절반이다. 이따금, 정옥아, 이제 이 어멍은 다 살아진 거 닮다”라고 하실 때,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기운이 하나도 없으시다. 슬픈 듯한 얼굴은 이미 삶을 내려놓은 듯, 눈동자의 생기가 흐미하고, 손을 잡아보면 힘이 하나 없으신, 그야말로 산 송장과 같다(이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표현임).

 

축 늘어진 손을 꼬옥 잡고서, “어머니, 정신 차립서 예. 아직은 천국 가실 때가 아니우다게! 어머니 어시민, 나가 울멍불멍 헐 거 아시멍, 이추룩 기운 어신 소리 허민 됩니까? 제게 일어납서! 어머니 좋아허는 게장에, 밥 홑썰만 먹어보게마씸. 어머니 생각해연 큰 언니가 또 게장 만들언 보내수게. 샛언니도 한림서 옥돔이여 갈치영 하영 보내시난, 그거는 다 먹엉, 가도 사 똘들이 섭섭허지 안 헐 꺼 아니우꽈?”

 

세상에! 게장 소리에 손에 다시 힘을 주시는 어머니..... 그 두 손을 맞잡아서 일으키고, 한 발짝 두 발짝 식탁으로 옮겨 앉으면, 오늘도 하루의 삶이 다시 이어진다. 누가 게장을 밥도둑이라 하였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벌리고서 적극적으로 밥을 받아 드시는 어머니. 백 세 어머니는 한 살 아기와 같다. 먹을 수만 있다면, 음식이 들어가기만 하면..., 일단 안심이다. 입맛이 없어지고, 기운이 떨어지는 어머니에게, ‘게장’이라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나는 여간하면 게장을 먹지 않는다. 왠지 그게 게장에 대한 예의이자, 어머니를 위한 나의 기도 같아서....

 

 

3) 병원

어떻게 하면, 백 세를 살 수 있을까? 백 년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는 몇 번이나 죽음의 고개를 넘나들게 될까? 단적으로 말해서, 그 고비,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만 한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92세에 독감을 앓으셨다. 사나흘을 병원에 머무는 동안, 그만 폐렴으로 돌았다. ‘노인들의 목숨을 잡아채는 제 1의 원흉’이라는 악명답게, 그 놈은 지독했다. 사나흘을 사투했으나, 결국 서귀포의료원의 담당의사는 임종을 선고했다. 목사님을 모시고, 눈물의 임종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예배가 끝났는데도, 어머니는 눈을 감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제발 살려달라’는 간절한 눈길로. 옆에 있는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제 곧 돌아가신다 해서 이렇게 천국으로 가시라는 예배까지 드렸는데..., 우리 어머니 저렇게 눈을 감지 않으시니... 아무래도 이 상황은 이상하지 않은가요? 병원에서 그저 손을 놓고 죽기를 기다리는 게.... 혹, 선생님 어머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어요?”

 

“1%의 확률을 가지고 호흡기 내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옯겨 보겠습니다.” “아, 그럼, 저희 어머니도 지금 당장, 그렇게 좀 해주세요!!!”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앰블런스를 타고 제주시로 향했다. “눈을 감으면 안되니까,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잠들지 않도록 계속 깨우며 가라”는 간병인들의 코치에 따라, 언니와 나는 계속 소리질렀다. “어머니, 눈 뜹서 양. 눈 감으민 절대 안됩니다 예! 우리 지금 제주시 큰 병원으로 감수다. 저 한라산만 넘으민 곧 좋은 병원이우다. 거기 가민, 어머니가 살아진댄 마씸. 경 허난 제발 눈 뜹서 예! 정신 차립서, 어머니!!!” 그렇게 한라병원 응급실로 들어간 어머니는 중환자실을 거쳐서 사나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요즘 들어 돌아가시는 친구 어머니들을 보면, 대개가 92〜93세시다. 90세 이상 살아계실 확률이 5% 정도이고 보면, 사실은 장수하신 셈이다. 하기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노인들의 평균 수명이 76〜78세가 아니신가. 남녀의 수명차이가 6〜7세이고 보면, 제주도 어머니들은 참으로 장수하시는 셈이다. 어머니가 92세에 죽음의 계속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되짚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길 일이 생겼다. 요양원 주간보호에 가시려고 대문 앞에서 봉고차를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그만 서둘러서 차를 타려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래도 인솔하는 교사의 부축을 받아서 요양원으로 가신 어머니가, 계속 통증을 호소하였다.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연락에 서귀포의료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대퇴부 골절’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런데, 서귀포에서는 해당 수술을 할 수가 없단다. 세상에..., 대퇴부 골절도 수술할 수 없는 서귀포의 열악한 의료환경이라니...

 

그렇게 해서 다시 제주시 병원의 응급실로 들어가신 어머니. 담당 레지던트가 ‘골절 부분에 받침목을 대고 시멘트로 고정하는 시술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혹여 시술과정이나 시술 후 의료사고 등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대비한 ‘수술동의서’를 받아들었을 때는, 이상스레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왠일진지 수술이 진행되지 않고, 입원실로 옯겨지게 되었다. 어머니가 워낙 연로해서 담당 의사가 신중하게 결정한 조치라 하였다. 그렇게 입원실로 들어가신 어머니는, 도무지 시술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열과 염증수치가 계속 올라서 시술할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나? 매일 아침, 애타는 심정으로 담당의사를 찾아가서 항의 겸 호소를 하였다. 우리 어머니 살려 달라고. ‘내게는 이 세상에 한 분 뿐인 어머니’라고. 그렇게 며칠을 씨름하는 사이,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당의사가 ‘인공관절 수술로 매우 유명한 분’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분은 어머니가 시멘트 시술을 받더라도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재수술을 하는 등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였던 게 아닐까 싶었다. 담당 의사는 아침뿐만 아니라, 낮에도 간호사를 통해 어머니의 컨디션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체열 및 염증수치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5일만에 인공관절 수술이 이루어졌다. 수술 후 이틀째부터 다리를 조심스레 끌고서 화장실 출입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기적같은 수술기법이었다.

 

그렇게 대퇴부 골절의 사선을 넘으신 어머니는, 코로나도 극복하시는 기염을 토하시면서, 만으로 백 세가 되는 상수(上壽)의 고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계신다. 아, 삼월이 오면, 어머니의 백 세 생신, 백년 만의 생일상을 어떻게 차려드릴까?

 

문득, 올레길을 걷다가 어느 집 처마 밑에 매달린 글귀를 사진으로 찍었다. ‘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주셨으니, 우리는 부모님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는.

 

 

그래,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돌보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가꾸어 드리자. 빗자루로 대문을 쓰시는 어머니의 저 손길이 올해도 계속 이어지시도록!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hhospi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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