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것도 혼이 싯주(노는 것도 한계가 있다)"

  • 등록 2023.01.30 11: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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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부지런함이 장수비결? ... 생존확률 1%도 안 되는 기적

구정 연휴 3일째다. 올해들어 101세가 되신 어머니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신다. 눈송이들이 마당 가득 휘날린다. 보목동 강아지는 눈이 내리면 짖는다더니, 우리집 맥스가 컹컹 짖어댄다. 한 겨울에도 눈을 보기가 어려운 대신, 섶섬 앞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눈 덮인 풍경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보목동은 한라산이 팔을 벌리면 품 속 가장 따뜻한 곳에 안기는 위치다.

 

그래서일까? 눈을 보기도 힘들지만, 설사 눈이 내렸다 해도 포근하기는 마차가지다. 오랜만에 내리는 눈을 방 안에서 바라보니,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평화로움이 마당에 가득하다. 누군가 먼 데서 찾아올 것만 같다. 나풀거리며 춤을 추듯 내려오던 눈송이들이 동백꽃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맥스가 눈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래, 우리 눈 구경이나 가보자.

 

맥스와 함께 대문을 나와 구두미포구로 간다. 구두미는 거북의 머리와 꼬리를 닮았다는데, 사실 보목마을 사람들에겐 구두미 앞에 있는 섶섬이 더 친숙하다. 섶섬은 나무가 울창해서 숲섬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섶섬에 있는 문필봉이다. 마치 붓을 닮은 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길쭉한 바위 끝이, 신기하게도 뾰죽한 펜 끝을 닮았다.

 

벼락인지 태풍인지에 바위끝이 부서져서 붓끝이 무디어졌다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선생님을 많이 배출한다. 마을 학생들이 문필봉의 정기를 받아서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란다. 동의한다. 마을회관 앞에 있는 게시판을 보면 누구집 아들 딸이 고시에 합격했다, 서울의 유명한 대학에 합격했다, 고위 공무원이 되었다는 등의 플랭카드가 심심찮게 걸린다. 부모의 이름이 함께 걸려 있는 걸 보면 자못 엄숙해지기조차 한다. 마을의 전통이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사실 보목마을은 서귀포시에서도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다. 강정, 법환, 서호 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면적도 작고 인구도 적다. 400여 가구, 2,000명 내외가 살고 있다. 처음 이 마을에 이사왔을 때 느낌은 원초적 아늑함이다.

 

서귀포 칼호텔 입구의 돌담에 그려져 있는 보목마을 화살표를 따라 3분쯤 달리면 제주대학교연수원 표지가 오른쪽을 가리킨다. 그 도로를 따라서 다시 3분쯤 달리면 섶섬이 나타난다.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100대 아름다운 어촌마을 중 하나’라는데, 그야말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소설같은 느낌이다.

 

황순원의 소설 ‘비바리’는 섶섬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로, 영화가 두 편이나 제작되었단다. 하지만 그 덕분에 보목마을이 유명해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20년 전 이곳으로 이사올 때만 해도 집앞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다는 얘기다.

 

구두미포구를 지나고, 제주대학교연수원을 지나서, 동부종합하수처리장에 이르면 우리 맥스가 신바람나게 꼬리를 흔든다. 산책 나온 개들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움을 표시한다. 새로운 얼굴이면 으르렁대면서 자기가 주인임을 과시한다. 어느새 나도 맥스의 편이 되어서 목 끈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맥스가 도도하게 다가서면 낯설은 녀석이 꼬리를 내린다.

 

그렇게 장난을 치면서 하수처리장의 잔디밭에서 한참을 보내면, 어느새 머리가 단순해진다. 어느새 나도 개가 된 느낌이 들만큼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향하면, 더 할 나위 없이 잘 놀았다는 듯 만족한 맥스가 격하게 꼬리를 흔든다. 마치 나를 자기와 같은 종족으로 여기는 듯 하지만, 진심어린 즐거움과 고마움의 표시 같아서 가슴이 따뜻해진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두 배나 빠르다. 맥스가 앞장서서 집을 향해 뛴다.

 

대문앞에 이르면 대체로 어머니가 조을고 계신다. 김광협 시인의 유자꽃 피는 마을에서 ‘유자꽃 꽃잎인 듯 백발을 인 조모님이 조을 듯, 어머니는 항용 졸고 계신다. 그런데 오늘은 왠 일인가? 어머니가 마당에서 배추를 캐고 있다. 세상에! 예기치 않았던 일이다. “어머니, 그 배추는 더 묶어 뒀다가 속이 차면 김치를 담글 건데....”라고 말하는 순간, 배추는 허연 속을 들어내며 나뒹굴고 만다. 자빠진 배추가 안타까워서 뭐라고 하려는데,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여신다.

 

“노는 것도 혼이 싯주, 맨날 놀고 먹으난 미안해연 안되키여...”

 

세상에! 새해들어 101살이 되신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다. 명절 연휴 동안 제주섬을 뒤덮은 눈이, 이 보목마을에도 예외 없이 내렸다. 지붕에, 돌담에, 마당에 내려앉은 눈이 허옇게 웃는다. 눈만 없었다면 몇 번이라도 마당으로 나가서 풀을 뜯으셨을 터다.

 

이따금은 바닷가로 나가서 해풍을 머금은 들국화나 수선화를 꺾어다가 마루에 꽃아놓기도 하신다. 어머니는 참으로 꽃을 좋아하신다. 그래서일까. 흐뭇하게 꽃을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얼굴도 꽃처럼 화안하다. 백 세 나이가 무색하도록 미소가 고우시다. 부디 올해도 당신의 기도처럼 건강 또 건강하시기를...

 

어머니의 장수비결은 부지런함에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시니, 어느 틈에 죽음이 터를 잡을 수 있겠나. 제주말로 ‘오몽’이 백세에 이르는 길이 되었다. 자주 인용하는 글이지만, 김종두 시인의 ‘제주여인 6’은 그야말로 어머니의 삶을 대변하는 일기다. 어디 우리 어머니 뿐이랴.

 

‘어두룩헐 때 일어낭, 물항 ᄀᆞ득 물질어 나뒁, 솖아 낸 보리밥 혼 직 뜨는둥 마는둥 갈중이 걸치멍 빌레왓으로 내돌아십주’라는 회고가 어머니만의 삶이었을까. 그 시절 제주도 어머니들은 너 나 없이 돌, 바람과 더불어 삼다(三多)가 되어 제주도를 지켜오지 않았는가.

 

요사이, 어머니를 아는 지인들이 동시에 보내 온 글이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어쩌면 나만 모르고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근래 ‘100세 시대’라고 하니, ‘100살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래 자료를 보면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요, 축복인 것 같습니다.

 

(1)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2년 1월말 기준 대한민국 총인구는 5180만1449명입니다. 남자 2586만1116명, 여자 2594만333명으로 여자가 7만9217명 많습니다. 세대수는 2182만5601세대다.

 

(2) 시와 도의 인구

서울 981만4049명, 부산 345만5611명, 인천 295만3883명, 대구 246만9617명, 대전 149만4878명, 광주 146만745명, 울산 115만9594명, 세종 33만332명, 경기 1297만5176명, 경남 337만7483명, 경북 268만1090명, 충남 212만2220명, 전남 188만7991명, 전북 184만4639명, 충북 159만5772명, 강원 154만4843명, 제주 66만3526명

 

(3)연령별 인구  

71세 27만7387명, 72세: 24만644명, 73세 23만9246명, 74세 20만2376명, 75세 18만2172명, 76세 17만1489명, 77세 15만3481명, 78세 13만3408명, 79세 12만6300명, 80세 10만2370명, 81세 9만7963명, 82세 9만1308명, 83세 7만5676명, 84세 6만5002명, 85세 5만2099명, 86세 3만6728명, 87세 3먼1684명, 88세 2만6992명, 89세 2만4019명, 90세 1만6019명, 91세 1만2396명, 92세 9969명, 93세 7273명, 94세: 5117명, 95세: 3975명, 96세 2602명, 97세 1773명, 98세 1071명, 99세 648명

 

(4) 연령별 생존확률

70세 생존확률 86%, 75세 생존확률 54%, 80세 생존확률 30%, 85세 생존확률 15%, 90세 생존확률 5%

 

즉,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은 저 세상으로 가시고, 5명만 생존 한다는 통계다. 통계적으로, 80세가 되면 100명 중 70명은 저세상으로 가시고, 30명만 생존한다는 결론입니다. 확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있는 평균 나이는 76세~78세입니다. (통계청.국민연금공단. 건강보험공단 공동 조사)

** 늘 건강하게 즐겁고 행복한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러고 보니, 새해들어 101세(만 나이로 100세)가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생존확률 1%도 안 되는 기적, 꿈같은 축복을 받아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의 100세 생신-3월 22일까지, 하루하루가 기적이요 축복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하고 또 기도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hhospi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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