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이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을 기도 ... “날 살려줍서”

  • 등록 2024.10.28 15: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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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99세 보다 더 좋아진 102세 시절 평가, 달라진 요양등급 아이러니

요즘 들어 어머니가 입에 달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날 살려줍서!”라는 주문 같은 기도다. 이따금 울먹거리면서 “어머니, 어머니, 날 살려줍서...”라고 할 때는 애간장이 다 녹는다. 밤 중에 홀연히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을 때는 마음이 시려서 눈물이 솟구친다.

 

이러한 상황을 요양보호사 교재는 치매 환자의 ‘배회’ 현상으로 묘사한다. 동시에 ‘102세가 되도록 살아계신 어머니가 저리도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신 것일까?’ 싶은 속상함도 생겨난다. ‘비교적 잘 살았다’며 ‘호상’으로 지칭되는 장례식의 경우에도 할머니들은 통상 92세, 할아버지들은 86세가 아니신가. 간혹 “아버지, 날 살려줍서!”라고 할 때도 있는데, 숨이 차고 다급해서 하나님을 찾는 부르짖음이다.

 

“어머니, 걱정허지 말앙 이 밥을 드십서!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댄 허주만은, 생각해 보십서. 어머니! 밥을 잘 먹는디 오꼬시 죽는 사름 봅디강? 먹으민 죽지 안 허난, 아무 걱정 허지 말곡, 그자 입을 벌립서!”.

 

이렇게 아침마다 식탁에서 어머니와 다투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이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은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듯이, 내가 왜 이렇게 어머니를 박대할까? 어머니는 언제까지 살면 잘 살았다는 만족감이 드실까’하는 용심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요즘의 내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지난주에는 어머니가 주로 약을 타는 병원에 가서 의사소견서를 받아 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 절차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의사는 어머니의 치매 증상에 대해 ‘배회’라는 항목만 자필로 기록했다.

 

아침마다 기저귀를 갈고, 온몸을 닦고,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떠먹이는 일상과 무시로 아무 데나 침을 뱉고, 휴지를 감아서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담아놓거나 방구석마다 쑤셔놓고, 오줌 기저귀를 숨겨놓고, 옷을 무한정 껴입고, 양말을 있는 대로 다 신고, 지팡이로 물건들을 정리한다며 흩어 놓고, 맨발로 마당을 배회하다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등의 특이 행동은 그저 일상의 허드렛일로 간주한 셈이다.

 

장기요양 인정절차에 따라 우리집을 방문한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이 점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참고로 65세 이상 치매노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관하는 장기요양 인정을 받으려면 다음과 같이 장기요양 인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정을 받는 데 있어서 관건은, 첫번째 단계인 방문조사에서 대상자인 어머니의 상태가 얼마나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평가되는가이다.

 

어머니는 지난 3년 동안 딸이 집에서 하루 90분씩 1년 365일의 요양보호를 수행하는 재가복지혜택에서 이달부터 하루 60분씩 월 20일로 퇴행하는 바람에 재심사를 요청한 경우다. 우리집을 방문한 두 사람의 심사 요원은 역할을 나눠서, 한 사람은 요양보호사인 나를, 다른 한 사람은 어머니를 상대로 질문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나를 심사하는 요원은 ‘99세에 치매 3등급을 받은 노인이, 어째서 102세가 되어서는 하루 60분씩 한 달 20일로 축소될 수 있는지’를 쟁점으로 의사소견서를 주시해서 살펴보았다. 특히 의사가 어머니의 여러 가지 치매 증상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오직 배회에 대해서만 체크 표시한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나 또한 그 점에 대해 같은 생각이며, 소견서를 내주면서 의사가 하는 말이, ‘이만하면 아주 잘 평가해 준 것’이라 한 점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였다.

 

사실 의사소견서는 강제나 필수 사항이 아니라 어머니의 경우 특이하게 평가된 점이 있어서 혹여 참고자료로 도움이 될까 하여 제출한 것이다. 또 다른 심사자는 치매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관련 질문을 던지는데, 어머니가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조는 바람에,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졸리시나요?”만을 반복하다가 포기하는 눈치였다.

 

결론적으로 ‘99세에 평가된 어머니의 상태보다 102세에 평가된 내용이 더 좋아져서, 요양보호 시간과 일수가 축소되었다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라는 나의 문제 제기가 지난번처럼 반복되었다. 이 점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듯 냉정하지 않은 표정을 남기며 돌아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 어느 정도 기대와 희망이 느껴졌다.

 

등급판정 결과가 통보되고, 거기에 기초해서 장기요양급여 이용이 개시되기까지는 약 6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점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소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각오하는 자신에게 새삼 놀라움이 솟구쳤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문제와 적당히 타협하고 절충하거나 꼬리를 내리고 체념하고 순응하는 형태의 삶을 살아온 편이다. 평소의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남과 다투느니 내가 손해보고 마는 게 오히려 편안하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면 전에 없는 성격이 튀어나오거나 괜히 전과 달리 행동하는 경향이 생긴다더니, 내가 지금 그러한 형국이다. 어쩌면 어머니가 계셔서 좌충우돌도 주저하지 않고, 어머니 때문에 돌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건가 싶다. 가끔은 나도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아, 102세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내 삶의 종착역은 어디쯤 어떤 모양으로 대기하고 있을까. 시월의 마지막 가을이 깊어 가는 이 시간에 어머니의 얼굴은 낙엽처럼 주름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노을에 물들어 더 붉어진 단풍마냥 곱기도 하다.

 

가만히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해 보면, 어느날 클방(방앗간)에서 벼를 도정해서 쌀을 한 구덕 지고 오신 어머니의 상기된 얼굴이 떠오른다. 머리수건을 풀어서 먼지를 털어내는 어머니의 몸에서 쌀 냄새처럼 구수한 땀 내음이 은근슬쩍 풍겨 나왔다. 여인의 향기라고 할까? 참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어머니는 그때 40대 후반이었고, 나는 12살짜리 초등생이었다. 어머니가 내려놓은 구덕에서 쌀을 한 웅큼 집어 들고 얼른 도망치려는 내게, 어머니는 얼른 한 줌을 넉넉히 쥐어서 내 우와개(웃옷) 주머니에 슬쩍 넣어주셨다. 그때는 쌀이 얼마나 귀하던지, 명절이나 제사가 있어야만 겨우 곤밥(쌀밥)을 얻어 먹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와 나만의 비밀스런 거래가, 어쩌면 오늘의 동숙으로 이어지는 끈이 되었을까.

 

2남 7녀 중에서 유독 나와 함께 22년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이, 문득 노사연이 노래한 만남의 가사 속에 녹아져 있는 듯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그렇게 오늘 하루도 어머니와의 삶이 무사하기를, 아침부터 인내하기를, 저녁에는 감사하기를 두 손 모아 빌어 본다. 아, 시월의 마지막이 저만치에서 우리를 지켜본다. 오, 주님!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오늘 하루도 어머니를 사랑해내고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허정옥 논설위원 jhhospit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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