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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지진 현장에서] 열린의사회 고병수 원장의 현지통신 ... 네팔의 슬픔(2)

4월 26일 네팔 대지진이 발생했다. '열린의사회'에서 구성한 신속 긴급구호의료지원단 3명이 선발대로 지진 발생 8일째 네팔로 파견됐다. 스리랑카 내전지역을 수 차례 방문한 것을 비롯 필리핀 태풍 등 재난 지역 긴급의료지원 및 해외 의료지원 10여 차례 참여한 고병수(가정의학과 의사 )원장과 이이티 지진 및 동티모르 내전지역 등 해외 의료지원 수 차례 다녀온 최정철(이비인후과 의사 )원장, 두 의사와 스텝 한 명을 포함 3명이 네팔로 달려갔다.

탑동365의원 고병수 원장이 현지 소식을 보냈다. 그들은 현지 정보를 통해 산악지대에 다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 짚차를 구했고, 1500~2000m 사이의 히말라야 끝자락 산간지대를 오르내리며 이동진료를 하기로 했다. 멀쩡하게 남은 건물들이 거의 없어서 풀밭에 침낭을 깔고 노숙하며 이동중이다. 고병수 원장의 네팔 현지의 이야기다./ 편집자 주

 

네팔은 인도 북동부에 자리하면서 동서로 길게 850Km, 폭은 200Km이며, 히말라야 산맥 중 동쪽으로 에베레스트, 서쪽으로 안나푸르나를 비롯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좌 중 8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카트만두, 포카라를 비롯해서 도시들은 분지(valley) 형태로 존재하고, 국토의 77%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90% 이상의 국민들은 높은 산악지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사진에서 흔히 보듯이 산의 경사에 따라 계단식으로 땅을 일구어 생활하고 있다.

 

2015년 4월 25일 오전 11시 50분경 처음 발생한 네팔 대지진은 전체 75개 군(district) 중 21개 군 이상의 지역, 즉 카투만두 북서쪽 람중(Lamjung)에서 첫 발생 후 다음날 북동쪽 신두팔촉(Sindhupalchok) 부근까지 100여Km 이상에 심한 피해를 줬고, 더 멀리는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지역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복구와 안정을 찾으려면 수 년이 걸릴 것 같지만 돌아본 바로는 도심지역은 복구가 가능하나 우리가 다니고 있는 산 속 마을들은 아예 복구가 불가능해 보였다. 복구 장비가 그 곳까지 들어오기도 만무하고, 주민들은 나뭇가지와 손으로 돌과 진흙을 들어내고 있었다. 집을 다시 짓는 건 둘째 치고 치우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산과 함께 살면서, 주변에 있는 흙과 돌을 쌓으면서 자연을 닮은 산악마을의 돌집들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또 하나의 걱정이다.

 

 

최대 지진 피해지역 ‘신두팔촉’을 가다

 

지진 발생 14일째, 네팔 도착 6일째인 오늘도 여러 지역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신두팔촉군(郡) 지역으로 들어갔다. 엊그제 왔던 곳인데 못 갔던 마을들을 찾아 나서는 중이다. 카트만두 북동쪽 60Km 정도에 위치하며 2차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신두팔촉군은 인구가 30만 명이 좀 안 되는데 3000명 가까이 사망했고, 산악지대 마을들은 거의 파괴되었다. 산세가 험해 지원이 용이하지 않은 곳이 많아서 문제였다. 이곳 역시 카트만두 시내에서 3~4시간 걸려서 올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려고 짚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우리가 다니는 높은 산중 마을에도 각국 의료진들이 다녀간 흔적들이 보인다. 어떤 의료팀들은 적당한 곳에 캠프를 차리고 상주하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외국 의료팀들은 산 아래 평지에 캠프를 차리고 주민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들이었다. 이미 안전 지역이나 길이 잘 되어있는 지역들은 구호품이나 의료의 손길이 웬만큼 지원됐는데, 이런 곳에 캠프를 차려도 감기 환자 이상을 못보고 그나마 환자들도 없을 텐데 말이다.

 

엊그제 물건을 사러 잠시 카트만두 시내에 내려갔을 때 들은 소식으로는 네팔 정부가 더 이상 외국 의료진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산악지대를 둘러본 바로는 구호품이나 의료지원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다른 건 몰라도 네팔 정부나 각국 의료지원팀들이 컨트롤 타워를 갖추고 통일적으로 피해지역에 분산해서 배치했다면 아주 효율적으로 주민들을 치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처럼 산악지대로 이동하면서 진료한 팀은 거의 없었다. 우리가 주로 다녔던 신두팔촉군 중에서 피해지역 산악지대에 10여개 의료팀이 배치되어 4~5일만 다니게 했더라도 필요한 의료지원을 거의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해본다.

 

 

 

침낭으로 비박을 하며 이동

 

지진 15일째를 너머서면서 다니다보니 웬만한 환자들은 멀리 군이나 면단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 같은데, 감기나 폐렴 환자들이 많음을 느끼게 된다. 집이 거의 무너졌기 때문에 산주민들이 밖에서 비닐장막 정도 겨우 지붕처럼 얹고 생활하다보니 추위에 노출된 때문인 것 같다.

 

오늘도 해발고도 2000m를 훌쩍 넘는 산 속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진료를 하고는 잠자리를 구하다가 부서진 집 옆 빈 터에 자리를 잡았다. 100여 채가 넘는 꽤 큰 마을인데 당연히 성한 집이 단 한 곳 빼고는 다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성한 한 집도 커다란 금이 가서 불안불안하다.

보통 때 같았으면 마을 사람들 진료를 하고 빈 집에 들어가서 하루 신세를 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남아있는 집이 없으니 밖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간단히 밥을 해먹고 어둑어둑해지자 금새 잠자리를 만들고 침낭 속에 들어간다. 어제까지는 별이 반짝였는데 오늘 저녁은 잔뜩 구름이 껴서 밤하늘이 안 보인다. 게다가 저 멀리서 번개가 여러 번 치는 걸 보니 비가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장비가 너무 많아서 줄이느라고 텐트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바닥에 비닐 장막만 깔고 침낭만으로 비박(노천에서 잠)을 하고 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에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깼다. 우리를 안내하는 문광진 선교사님이 사람들에게 뭔가 지시를 하더니 깔고 있던 비닐 깔개를 하나 빼서 몸 위에 덮으라고 한다. 난 잠이 덜 깨서 영문을 모른 채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6명은 커다란 하나의 비닐 장막을 이불처럼 해서 비막이로 머리끝까지 덮고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는 또 잠이 들었다. 덮은 장막 위로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다 못쓴 뒷 이야기)
우리가 다녔던 1500~2000m 산 이름을 마을 주민들에게 물으면 그곳 사람들은 모른다고 했다. 그 이유는 6, 7000m짜리 산들도 수백 개인데, 고작 2, 3000m 산들은 이름조차 붙이지 않고 그냥 앞산, 뒷산처럼 여긴다고 하면서 이름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한라산, 백두산 높인데 말이다.

 

지진 발생 보름이 지나면서는 산악지대에도 조금씩 의료진들의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니면서 느끼기에도 중한 환자들은 확실히 줄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슬슬 철수할 때가 됐다고 여기고 카트만두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던 중 한국산악회 사람들을 만났다. 자기네들은 오래 준비한 끝에 등반하려고 4월 중순에 네팔 도착해서 베이스 캠프에 있었는데 4월 25일, 26일 지진 때문에 눈사태를 맞고 철수하는 중이란다. 뉴스에 나온 눈사태로는 등반객 2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자기네 쪽 베이스 캠프에는 다행히 약한 눈사태라서 피해가 적었다고 했다. 산에도 못 올랐지만 카트만두로 돌아오면서 텐트며 식량들을 마을에 들러서 나눠주면서 내려왔다고 한다. <끝>

 

** 고병수 원장은 10여일 간의 현장 진료지원을 마치고 12일 무사히 귀국했습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란 책을 펴내는 등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다룬 다수의 논문을 낸 보건정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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