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 구걸하는 방식의 거지

  • 등록 2026.02.25 16: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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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74) 옛날과 지금의 구걸 양태 (23)

이제, 학문으로 구걸하는 방식의 거지를 살펴보자.

 

기록에 따르면 청대에 항주(杭州) 전당문(錢塘門) 밖 소경사(昭慶寺)는 향불이 끊이지 않았다. 유람객이나 참배객이 많을 때마다 거지들이 들끓었다.

 

하루는 소흥(紹興)에서 온 거지가 나타났다. 여위어 파리한 얼굴에 해학이 있고 전고를 알았으며 소학에도 능통하였다. 그는 다른 거지들하고는 달랐다. 다른 거지들처럼 시장에서 소리 지르지도 않았고 길거리에서 구걸하지도 않았다. 매일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담소를 즐기며 타인의 갈등도 중재하였다. 글자의 음과 글자의 뜻을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게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꺼이 보시하였다. 10문을 주는 사람도 있었고 20문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돈을 얻으면 밥을 실컷 먹는 것 이외에 남은 돈으로 술을 사서 통쾌하게 마신 후 술에 취하면 곤한 잠을 잤다. 그렇게 반년을 생활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는 나타나지도 않았고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청나라 말기에 상해에 팔고문(八股文)을 읊으며 구걸하는 30여 세 난 거지가 있었다. 뛰어난 팔고문을 1문과 바꾸는 것을 본 서생이 가련하기도 하고 한스럽기도 하여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자 거지가 대답하였다.

 

“나는 중년에 곤궁해졌소. 주머니에 한 푼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실로 수치스러우니 다시는 묻지 마시오. 당신이 내게 낡은 신발이라도 한 켤레 주신다면 고맙기 그지없겠소.”

 

낡은 신발이 없던 서생은 절구 두 수를 짓고 읊으면서 수십 청부(靑蚨, 돈의 별칭)1)을 건넸다. 그가 읊은 시는 이렇다.

 

“초췌한 청삼에 눈물이 계속 흐르나니, 문인이 곤궁하게 되니 가장 애처롭구나. 퉁소를 부는 재주 배우지 못해 명가의 팔고문을 낭송하는구나. 어휴, 나 역시 가난한 서생이라 당신께 청부를 주노니 적다고 책망하지 마소. 같은 문인으로 의론하고 싶으니 오늘부터랑 절대 가난한 집에 가지마소.”

 

거지는 시를 받아들고는 즉흥시를 읊었다.

 

“더덕더덕 기운 옷 백번 기워 세상에 나섰으니 곤궁에 빠진 이 몸 누가 연민을 느낄까. 세상사 험난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오늘 당신을 만나니 가난한 사람 구제해주시는 구려.”

 

곧바로 자리를 뜨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궁상스런 가난한 서생의 처지가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옛날 서생은 시문과 같은 학문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생계 수단이 없어 거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배운 학문이 구걸하는 밑천이 되었을 뿐이다.

 

위 둘을 비교하면 소흥 출신의 젊은 거지보다 중년 거지가 처세관을 보면 트여있기는 하지만 그저 몰락한 서생일 뿐이다.

 

이쯤 되면 노신의 단편소설 『공을기(孔乙己)』가 떠오를 것이다. 공을기가 전형적인 거지로 전락한 서생이 아니던가! 공을기는 결국 부상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공을기가 사회 변화를 읽지 못한 비참한 독서인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거지의 구걸 방식을 종합해보면 사람이 일단 곤궁해져 몰락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여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아가게 되면 염치를 헤아리지 못하고 온갖 추태를 부리게 되고 타락해 죄악을 저지르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해지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되면, 거짓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인간세상의 여러 세태가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한, 먹기 위한, 욕망을 위한 본능이 낱낱이 드러나고 세상의 추태와 비극이 만들어진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역시 거지 현상을 없애야 한다. 단체적인 병환은 언젠가는 치료해야만 한다. 인류가 살아가는 무대에서 거지가 차지했던 자리는 영원히 역사의 유산으로만 남길 수 있도록 하여야한다.

 

고금에서 거지가 구걸하는 그림, 거지도(圖)는 인간 사회 생활사의 변태적 투영이며 하층사회의 생활사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청부(青蚨)는 전설 중의 곤충 이름이다. 별칭은 ‘부선(蚨蟬)’, ‘모와(蟱蜗)’, ‘포맹(蒲虻)’, ‘어부(魚父)’, ‘어백(魚伯)’ 등이 있다. 원형은 ‘물장군’일 가능성이 크다. 청부가 아들을 낳았는데 모친과 아들이 헤어지면 반드시 만난다고 전한다. 청부 모자의 피를 돈 위에 뿌려 놓으면 모친의 피를 묻힌 돈이나 아들의 피를 묻힌 돈은 사용하고 난 후에도 반드시 돌아온다고 전한다. ‘청부환전(青蚨還錢)’이란 전설이다. ‘청부(青蚨)’는 돈의 별칭이 되었다. 우리 말 뜻은 ‘파랑강충이’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ac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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