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노릇하고 약을 팔면서 구걸하는 거지 (2)

  • 등록 2025.12.04 11:25:56
크게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66) 옛날과 지금의 구걸 양태 ⑫

청대 광서 연간에 소주(蘇州) 도화선관(桃花仙館)에서 석판 인쇄한 당재풍(唐再豊)이 편찬한 『아환회편(鵝幻匯編)』 권12 『강호통용절구적요(江湖通用切口摘要)』의 기록을 보자.

 

“강호 여러 기술은 모두 네 가지로 나눈다. 포(布), 피(皮), 이(李), 과(瓜)인데 이를 행하는 자를 상부(相夫)라 부른다. 상부를 하는 자는 하다라 하지 않고 맡다 라고 하여 스스로를 당상(當相) 사람이라 부른다. 점, 관상, 문자점 등을 통틀어 포항(布行)이라 부르고 병을 치료하는 약을 파는 것, 고약을 만들어 파는 것 등을 통틀어 피항(皮行)이라 하며 요술(마술) 4가지1)를 통틀어 이자(李子)라고 부르고 권법, 곡마(曲馬) 등을 통틀어 과자(瓜子)라 부른다.”

 

이 네 가지 부류에 속한 거지는 실제로 기예를 부리며 구걸하는 매예형(賣藝型) 거지다.

 

 

일찍이 명·청시기에 강호에서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팔면서 구걸하던 거지 사이에 많은 ‘당상(當相)’의 직업은어가 유행하였다. 예를 들어 『신각강호절요(新刻江湖切要)』에 기록이 있다 :

 

의사를 제붕공(濟崩公), 원기를 북돋우는 것을 고권인(苦勸人), 명의를 한화통(熯火通), 부유한 의사를 한화(汗火), 한때 인기 있는 의사를 단청(丹靑), 죽채(竹彩) ;

 

안과를 피간(皮懇), 침과 뜸을 차연만(釵烟彎), 진맥을 탄현자(彈弦子), 탕약(湯藥)을 사다(손으로 약재를 집어서 달아 첩(貼)으로 짓는다는 뜻)를 배한(配熯), 약을 바르는 것을 암로(暗老), 암한(暗熯), 고약을 원지(圓紙), 도원(塗圓) ;

 

약을 달이는 것을 전한(煎熯), 소량의 약 가루를 고약의 가운데에 놓고 상처에 바른 것을 비설(飛屑), 방추형 약을 한화(熯火), 한금(熯琴), 오고 가고 하면서 약을 파는 것을 도피(跳皮), 행한(行熯) ;

 

약을 소매하는 것을 주소포(丢小包), 춘약을 파는 것을 파한(派熯), 취폐(取鄨), 괘랑(掛狼), 기생충병을 치료하는 것을 칠절통(七節通), 칠절조(七節吊), 침을 놓는 것을 차매(叉賣), 차당(叉黨), 환약을 환한(丸熯), 립립(粒粒) ; 우황을 폭공(爆工), 약용 진주 분말을 교환하는 것을 고부공(鼓釜工), 연충 토하기를 발묘수(潑卯水) ;

 

짐을 짊어지고 약을 파는 것을 천평당(天平黨), 환약을 파는 것을 도립립(跳粒粒), 호탱(虎撑)2)을 촌령(寸鈴), 금창약을 파는 것을 도십자한(跳十字熯), 향을 피우고 산 위의 사묘에 참배하며 약을 파는 것을 공당(拱黨), 관음당(觀音黨), 추환(捶丸)3)하며 약을 파는 것을 만자(彎子), 처방전을 파는 것을 제공(提空) ;

 

고약을 제조하는 것을 취도아(炊塗兒), 북경사람이 약을 파는 것을 염칠피통(念七皮通), 승려가 약을 파는 것을 삼피도(三皮跳), 도사가 약을 파는 것을 화두생(火頭生), 전진당(全眞黨), 충치를 치료하는 것을 시수(柴受) ;

 

부녀자가 약을 파는 것을 타청(拖靑), 반시(扳柴), 공중에서 약을 취하는 것을 채립(采粒), 나귀 타고 약을 파는 것을 타귀(拖鬼), 우산을 들고 약을 파는 것을 창피(昌皮), 마술하면서 약을 파는 것을 정차당(丁叉黨), 가판대를 늘어놓고 약을 파는 것을 흘탑당(趷 黨), 좌선해 약을 파는 것을 주돈자(丢墩子), 게시해 약을 파는 것을 설벽(設僻), 가짜 약을 파는 것을 도장한(跳將熯), 의술을 배우는 것을 쇄피(鎖皮) 등등이라 불렀다.

 

관상을 보는 ‘당상(當相)’을 행할 때에는 각각 12간지 동물을 표시하는 띠로 은어를 만들었다.

 

『강호통용절구적요(江湖通用切口摘要)』는 더욱 구체적이고 생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대 위에 약병을 설치해 병을 치료하는 자를 사평(四平), 대 위에 약병을 설치하고 약을 파는 자를 념자(捻子), 땅 위에 많지 않은 약병을 설치한 자를 점곡(占谷), 손에 호청을 들고 흔들면서 거지를 지나면서 긴 천을 이용해 간판으로 삼아 손님을 맞이하는 자를 추포(推包), 호청을 추자(推子) 등으로 불렀다.

 

고약을 팔면서 철추로 자기 몸을 때리는 자를 변한(邊漢), 고약을 팔면서 칼로 팔 등에 자해하는 자를 청자도(靑子圖), 고무 협지고(夾紙膏)를 파는 자를 용궁도(龍宮圖), 고약을 팔면서 돈을 요구하지 않고 향만을 요구하는 자를 향공(香工), 시골만 돌아다니면서 광대라 자칭하며 병을 치료하는 자를 수포(收包), 가판대를 깔아놓고 초약을 파는 사람을 초한(草漢), 대나무 막대기에 많은 기생충을 달고서 기생충환(吊蟲丸)을 팔며 다니는 자를 낭포(狼包), 기생충을 달고 다니지 않고 기생충환을 팔며 다니다 찾는 사람이 없으면 먼저 쌀벌레나 돈을 땅에 던져 병자를 토하게 만드는 자를 도모수(倒毛水), 삼삼칠(參三七)을 팔고 다니는 자를 근근자(根根子), 가루약을 물에 넣어 환을 만드는 것을 탕리자(湯李子), 황색 돌기를 술에 섞어 허리와 다리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팔고 다니는 자를 추리자(推李子), 안약을 파는 자를 태한(抬漢), 가짜 용골(龍骨)을 팔고 다니는 자를 처량자(凄涼子), 구슬 놀이를 하면서 고약을 팔고 다니는 자를 탄궁도(彈弓圖), 독창을 치료할 수 있다며 춘약을 팔고 다니는 자를 연장(軟賬), 당의정을 팔고 다니는 자를 통틀어 첨두(甛頭), 징을 치며 당의정을 파는 자를 초포(超包), 약을 잘게 잘라 사탕에 넣기 전에 바싹 졸이는 것을 좌목첨두(剉木甛頭), 사탕을 길게 만들기에 앞서 톱양을 본뜨는 것을 소포첨두(小包甛頭), 속이 비고 부드러운 당의정을 포화념지(鋪貨捻地), 마술을 선보이고 나중에 약을 파는 것을 취마(聚麻) 등등으로 부른다. 약을 파는 모든 것을 통틀어 피항소포(皮行小包)라 부른다.”

 

 

이러한 여러 가지는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파는 자들의 본업의 내막을 잘 보여준다. 두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 약간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보충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유행의 차이에서 오는 상이점이라 하겠다.

 

청대 『북경민간생활채도』 제96 「찬령매약도(串鈴賣藥圖)」의 제사는 이렇다.

 

“이것은 중국에서 방울을 흔들며 약을 파는 그림이다. 이 사람은 강호 떠돌이 의사다. 의술에 의약에 어느 정도 정통하며 말재간이 좋아 여러 성을 돌아다니며 기예를 판다. 한 손에 방울을 들고 흔들며 다른 한 손에는 서로 다른 약 이름을 쓴 광고를 들고 있다.

 

병을 치료할 때에는 눈으로 병색을 보고 병세에 따라 말을 옮기며 약을 판다. 단지 의식을 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의 형상은 제사에 못지않다. 몇 마디 말로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팔면서 구걸하는 방식의 거지의 행위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단지 의식을 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 마디로 거지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마술(戱法儿)’의 기본 수채활(手彩活, 즉 손재주)에는 4가지가 있다. ‘단(丹), 검(劍), 두(豆), 환(環)’이다. 단(丹)은 쇠구슬을 삼키는 것 ; 검(劍)은 보검을 삼키는 것 ; 두(豆)는 선인적두(仙人摘豆, 사발 2개에 콩이나 콩 크기의 진흙알 7개를 엎어놓고 옮길 때마다 변환하고 나중에는 온데간데없는 눈속임 마술) ; 환(環)은 구련환(九連環, 지혜의 고리)을 가리킨다.

2) 호탱(虎撑)은 낭중행의(郎中行醫)의 표시(標示)다. 구리나 쇠로 만든 금속권(圈)이며 가운데는 비어있고 안에 작은 쇠구슬을 집어넣었다. 호탱을 흔들면 소리가 난다. 명청(明清)시대 안휘성(安徽省) 안경(安慶)에서 유의(游醫) 낭중(郎中)들은 등에는 약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호탱을 쥐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돌아다니며 의술을 행하며 한약도 팔았다. 이것이 ‘호탱(虎撑)’의 내력(来历)이다. 안경 일대에 유전되어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신기한 전설이 있다. “당(唐)나라 때 명의 손사막(孫思邈)이 어느 날 심심산곡으로 약을 캐러 들어갔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여러 빛깔이 섞여 알록달록한,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입속에 피를 머금고 있다가 손사막을 향하여 고통스럽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손사막은 호랑이가 불쌍하여 호랑이의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늙은 호랑이의 목구멍 속에 기다란 뼈가 걸려 있었다. 손사막은 호랑이가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목구멍에 걸려있는 기다란 뼈를 꺼내기는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입을 다물면 손이 끊어질 것을 염려하여 손사막은 급히 마을로 내려가 철장에게 철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손사막은 철환을 호랑이의 입안에 버티어 놓고 철환의 구멍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호랑이의 목에 걸린 뼈를 호랑이의 입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호랑이는 감격하여 손사막에게 머리를 조아리고는 멀리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와 같은 소문이 퍼진 후 유의낭중들은 자기들도 손사막처럼 고명한 의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한 손에 철환을 들고 다니며 행의를 표시하기 시작했는데 이와 같은 철환을 호탱(虎撑)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유의낭중(游医郎中)들에게 호탱(虎撑)을 흔드는데 있어서 일정한 규칙이 있다. 예를 들면 호탱을 자기 가슴 앞에서 흔드는 유의낭중은 일반 낭중(郎中)이고 호탱을 자기 어깨 높이에서 흔드는 낭중은 의술이 비교적 뛰어난 낭중이며 호탱을 자기 머리 위로 높이 올려서 흔드는 낭중은 의술이 매우 고명한 낭중이라는 상징이다. 호탱의 위치와 상관없이 약방의 문 앞을 지나 갈 때는 호탱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약방 안에 손사막의 위패(位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낭중이 약방 앞을 지나가며 호탱을 흔들 경우엔 스승을 모독했다는 혐의를 받고 약방 주인은 즉시 유의(游醫)의 호탱(虎撑)은 물론 약 바구니까지 몰수하고 동시에 손사막의 위패 앞에 분향하며 사죄하라고 명했다. 사료(史料)에 의하면 송(宋)나라 때 명의 이차구(李次口)가 호탱을 손에 쥐고 행의하기 시작했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차구는 의술이 고명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민간 의사들이 호탱(虎撑)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행의하는 습속은 청(清)나라 말과 민국(民国) 초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신중국 성립 후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민간 의사의 행의를 표시하던 ‘호탱’은 한의 역사 문물이 되고 말았다. 현대의 민간 의사들과 민영 병원에서는 고객을 끌어 들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빨강 색깔의 비단 위에 “묘수회춘(妙手回春)”, “신의성수(神醫聖手)”, “도초편작(道超扁鵲),기압화타(技壓華佗)” 등 글씨를 써서 문 앞에 높이 매달아 놓는다.

3) 옛날 놀이의 하나다. 마당에 한 자 가량의 너비로 네모나게 금을 긋고 가운데 공 따위를 놓은 다음 다른 곳에 구멍을 파서는, 몽둥이로 공을 쳐서 그 구멍 안에 넣는 사람이 이긴다. 타탄(打彈)이라고도 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ac82@naver.com
<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76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노형5길 28(엘리시아아파트 상가빌딩 6층) | 전화 : 064)748-3883 | 팩스 : 064)748-3882 사업자등록번호 : 616-81-88659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제주 아-01032 | 등록년월일 : 2011.9.16 | ISSN : 2636-0071 제호 : 제이누리 2011년 11월2일 창간 | 발행/편집인 : 양성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성철 본지는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1 제이앤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nuri@j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