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방식

  • 등록 2025.10.15 14: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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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62) 옛날과 지금의 구걸 양태 ⑤

남송 때 임안(臨安, 현 항주)의 와사(瓦舍) 구란(句欄) 중의 기악(妓樂)은 노래를 팔며 구걸하는 거지가 전업화된 형태에 속한다. 송나라 때 오자목(吳自牧)의 『몽양록(夢粱錄)』 19권 『와사(瓦舍)』의 기록이다.

 

“와사(瓦舍)라는 것은, 올 때는 깨진 기와를 서로 맞추는 것처럼 몰려오고 떠날 때는 기와 무너지듯 사라진다는 의미다. 쉽게 모이고 쉽게 흩어진다. 언제 시작됐는지는 모른다. 요즈음 경사는 사대부와 서민이 걷잡을 수 없이 방탕하게 노는 곳이 되었고, 자제들이 유락에 빠져 자신을 무너뜨리는 장소가 되었다. 항주와 소흥 사이에 제왕이 나들이 도중에 잠시 머무르는 곳이 있다. 전암양(殿岩楊)과 왕인(王因)의 군사 대부분은 서북사람이다. 성 내외에 왕사를 창립해 기악을 모으고 군졸에게 휴가 때 즐기는 장소로 제공하였다. 이후 명문자제 귀공자들이 그곳에서 방탕하게 놀면서 자신을 파괴하니 변도(汴都)보다도 심하다. 항주의 와사는 성 내외에 17곳에 이른다.”

 

같은 책 20권 『기악(妓樂)』의 기록은 이렇다. 

 

“시가에 음악가 서너너덧 명이 팀을 이루어, 여자아이 한두 명을 들어 올려 춤추고 사(詞)를 노래하면서, 길거리를 따라 재주 부리며 장사한다. 설날에 등불을 밝히고, 봄 석 달 동안은 회관에서 즐기며 구경한다. 호수를 거닐며 조수를 구경할 때 주루나 유흥가, 기녀 집에서 응대하지만 받는 돈은 많지 않다. 이를 황고판(荒鼓板)이라 한다.”

 

모두 노래를 팔며 구걸하는 부류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길거리나 객점에서 노래를 파는 것과 비교하면 내용이나 방식이 복잡하고 복장 등이 화려했다. 여색을 팔기도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노래를 팔며 구걸하다가 부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청나라 말기에 오회(吳會)가 고향인 거지가 있었다. 육칠 세에 부친을 잃고 모친을 따라 바느질하며 살아갔으나,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오래지 않아 거지가 되었다. 사람이 총명하여, 은은하며 구성진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였다.

 

이후 세월이 쌓이니 점차 부유해지기 시작했다. 거상보다도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부친의 유업을 이어받아 신발가게를 차렸다.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노래를 팔면서 구걸하는 거지가 비교적 많았다. 길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노래하면서 구걸하였다. 심지어 저택에 불려가 노래하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은어 중에 몇 가지를 보면 전체 흐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민가를 부르면서 구걸하는 것을 소리(響子)를 부르다 ; 소라를 울림, 징을 소리판 ; 점포를 높은 가게 ; 주인을 점포 두목 ; 구걸하는 것을 기와처마에 가까이 가다 ; 노래 부르는 소곡을 편자(片子) ; 향촌을 개 소굴 ; 주택을 가마 구멍 ; 호화주택을 높은 개 소굴 등등으로 불렀다. 이런 은어 코드로 구성된 언어의 뜻을 보면 노래를 팔며 구걸하는 거지들의 처지와 심리, 감정을 쉬이 감득할 수 있다.

 

옛날 북경 거리에는 남녀 맹인이 맹인용 지팡이를 짚고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면서 구걸하였다. 북을 치며 구걸하는 걸인도 있었다. 모두 노래를 팔며 구걸하는 부류다.

 

어떤 사람들은 피서 하거나 대소사가 생겼을 때 맹인 예인을 불러 공연하였다. 노래 한 단락마다 2,3각, 혹은 몇 시간에 얼마를 주는 포천(包天)으로 계산해 줬다. 노래하는 소곡은 북경의 일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탐청수하(探淸水河)』, 『왕우전(王友全)을 총살하다』 등, 『고금기관』 중 한 단락, 즉 『두십낭(杜十娘)이 격노해 백보상을 물에 가라앉히다』, 『교(喬)태수가 제멋대로 남녀 혼사를 맺어주다』, 『김옥노(金玉奴)가 박정한 남편을 때리다』 등이다.

 

서하대고(西河大鼓, 서하 지역의 곡(曲)으로 큰 북을 치면서 노래하는 민간 예술의 하나), 낙정대고(樂亭大鼓, 북방 지역의 곡(曲)으로 북을 치면서 노래하는 민간 예술의 하나), 매화대고(梅花大鼓)1), 고음연탄(五音聯彈, 4명의 악사들이 나와 서로의 손을 교차해 옆 사람의 악기를 켜면서 5개의 현악기를 연주) 등으로 생동하며 다채롭다. 살 길을 찾아 걸식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노래를 팔면서 구걸할 때에는 때때로 노래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희곡 곡예까지 겸하기도 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매화대고(梅花大鼓), 곡예(曲藝, 중국 설창 문예)의 하나로, 한 사람이 박자판을 치며 노래하고 두세 사람이 반주를 넣는다. 악기에는 ‘삼현(三弦)’, ‘비파(琵琶)’, ‘사호(四胡)’ 등이 있다. 노래 가사는 보통 일곱 자구와 열 자구로 되어 있다. 청(淸)나라 말기에 북경에서 생겨나 화북 일대에서 유행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ac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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