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의 방법 ... 원시형 (1)

  • 등록 2025.09.17 15:06:16
크게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62) 옛날과 지금의 구걸 양태 ②

이른바 ‘원시형’은 가장 본능적이며 가장 거지 본분에 맞는, 애걸복걸하는 방식으로 구걸하는 거지를 가리킨다. 이것은 고금을 통틀어 가장 흔히 보이는 거지 구걸의 기본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거지는 예나 지금이나 다 존재하지만, 거지 항방(行幇, 동업조직)인 개방(丐幇)이 타락하고 변질되어 흑사회의 일원이 된 후에는 하위문화 단체 중에서 주류의 지위를 점하지 못했지만 이전에는 거지가 구걸하는 주체였다.

 

이런 부류의 거지는 일시에 곤궁해져서 사회 저층으로 전락한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한번 몰락한 후 다시 일어서지 못하여 입에 풀칠하려고 오랫동안 구걸하며 생계를 도모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거지는 대부분 소박하고 유약하다. 자립능력도 다소 떨어진다. 그 처지가 세상 사람들의 동정을 받아 동냥을 얻는다. 그래서 『관자(管子)·경중을편(輕重乙篇)』에서는 이야기한다.

 

“백성이 태어났으나 부모가 없는 자를 고아라 한다. 처와 자식이 없으면 홀아비라 한다. 남편이 없고 아들이 없으면 과부라 한다. 이 3자는 모두 관에서 먹여 살리니 길에는 구걸하는 자가 없다. 길에 구걸하는 자가 있으면 상의 죄이다.”

 

고아나 노인의 의식주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이 거지가 생겨나게 되는 근원이니 거지가 출현하면 관리의 죄라고 여겼다.

 

이런 거지는 일반적으로 기예를 팔아 생활할 수 없고 노동도 할 수 없었으니, 불량배나 무뢰한이 되지 않는다면 애걸하며 동냥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대 이상은(李商隱)은 『의산잡찬(義山雜纂)·불인문(不忍聞)』 중에 읊었다.

 

“밤은 고요한데 거지 소리가 들린다.”

 

이런 원시형 거지는 후세에 말하는 불량배를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원시형 거지는 처지가 가장 고생스럽고 사회지위도 낮아, 열등의식이 있었다. 송나라 때 왕군옥(王君玉)은 『잡찬속(雜纂續)·부득인련(不得人憐)』에서 말했다.

 

“거지같은 성품은 자제의 재목이 되지 못한다.”

 

타인의 동냥으로 살면서도 노름하고 제멋대로 하면 ‘동정을 얻지 못하여’ 먹을 것이 없어 살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굽실거리고 외부의 압력을 참고 견디어 내면서 굴욕적으로 살아갔다.

 

그렇지 않으면 송나라 때 소식(蘇軾)이 말한 ‘거지가 좋은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뒷생각이 없는’ 것이다. 실로 그렇지 않은가. 처마 밑에 있는 사람이 어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떤 때에는 핍박을 받아 음식에 대한 이상심리가 생겨나기도 한다. 송나라 때 서현(徐鉉)의 『계신록(稽神錄)』에 기록되어 있다 :

 

광릉(廣陵)의 시중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거지가 있었다. 땅에 떨어져 있는 말똥을 보기만 하면 집어먹었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이전에 다른 사람의 말을 대신 길렀는데 한밤중에 일어나서 사료를 주지 못했다. 주인이 밤마다 감독하면서 구유에 꼴이 없으면 질책하였다. 그래서 거지는 말에게 오매(烏梅) 구이를 먹였다. 말은 신맛 때문에 씹지 못하여 먹지 못하다가 굶어 죽었다. 나중에 거지도 병이 들자 말똥만 보면 걸신들린 듯 군침이 돌았다. 먹으면 오매와 같은 맛만 느낄 뿐 더러운 냄새는 맡지 못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거지의 처지를 비추어 볼 수 있다.

 

이런 원시형 거지는 지위가 비천했기에 안전 또한 보장받을 수 없었다. 자신이 먹을 음식을 구걸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먹을 것이 되어 타인에게 먹히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청나라 때 수녕(睢寧) 지방에 장소삼(張小三)이란 양곡 세금징수원이 있었다. 성정이 흉포하고 인륜과 거리가 먼 인물로 사람 고기를 즐겨 먹었다. 야외로 사람을 보내어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가 쪄서는 술을 곁들어 먹었다. 아예 거지를 돈 주고 사서는 먹어치우기도 하였다. 마지막에는 자기 생부까지 먹으려 하였다.

 

그의 부친은 수레를 몰며 살고 있었다. 노예처럼 장소삼에게 시중들었는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하면서 때렸다.

 

어느 날, 장소삼이 자기 부친이 끄는 수레를 타고 향촌으로 세금을 징수하러 나섰다. 돌아오는 도중에 그의 부친이 배가 고파서 수레를 제대로 끌지 못했다. 장소삼은 빨리 끌라며 재촉했는데 대답할 기력도 없이 부친은 길옆에 쓰러졌다.

 

대노한 장소삼이 몽둥이를 들고 앞가슴을 내리치자 그 자리에서 부친이 죽어버렸다. 그러자 자기 부친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거적자리를 덮고서 수레를 끌고 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ac82@naver.com
<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추천 반대
추천
1명
100%
반대
0명
0%

총 1명 참여


66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노형5길 28(엘리시아아파트 상가빌딩 6층) | 전화 : 064)748-3883 | 팩스 : 064)748-3882 사업자등록번호 : 616-81-88659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제주 아-01032 | 등록년월일 : 2011.9.16 | ISSN : 2636-0071 제호 : 제이누리 2011년 11월2일 창간 | 발행/편집인 : 양성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성철 본지는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1 제이앤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nuri@j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