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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3)] 손이 놀면 입이 논다는 생각에 ...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원정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오라버니는 ‘육지 물질은 위험하다’며 더 이상 객지로 못 나가게 하였다. 나 또한 육지 사람들이 ‘밥통을 주웠다’며 며느리로 들이려던 게 께름칙하고 걱정도 되었다. 말도 안 통하고 풍습도 색다른 곳에서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당시 육지에서는 ‘제주도 여자가 며느리로 들어오면 온 집안을 먹여 살린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해녀들의 물질이 억척스럽고 돈이 되었다. 실제로 그 바람에 시집을 가서 현지 해녀가 된 제주도 여자들이 해안지역 곳곳마다 터를 잡고 있었다. 부산 영도 같은 곳에서는 마치 제주도 여느 동네처럼 제주도 사투리가 흔하게 들렸다.

 

오라버니의 강권으로 그 해 겨울, 한 동네 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신랑은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열여덟이었다. 잘 생기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지만 종손이라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도맡아야 했다. 바야흐로 김종두 시인의 ‘제주여인 1’을 방불케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제주여인 1

 

“시집 왕 보난 돌랭이 호나(시집 와서 보니 작은밭 하나),
살아갈 일 생각호난 귀눈이 왁왁호여도(살아갈 일 생각하니까 귀눈이 캄캄하여도),
우리 할망 살아온 시상 고슴에 새기멍 살아수게(우리 할머니 살아온 세상, 가슴에 새기면 서 살았습니다).
조녕호여사 밥 먹은다. 호다 멩심호영(절약해야 밥 먹는다. 부디 명심해서),
이실 때 애끼곡 젭져 놨당(있을 때 아끼고 끼워두었다가)
어신 듯 존디멍 살라 이!(없는 듯 견디면서 살아라).
올레 밖꼬지 좇아오멍 고라주던 우리 어멍의 혼 시상(골목 밖까지 따라오면서 말해주던 우리 어머니의 한 세상).

 

아명호믄 못사느냐, 조롬 붙이지 마랑(아무려면 못살겠느냐, 엉덩이 붙이지 말고
탕근도 졸곡 물질도 호멍(탕근도 잦고 물질도 하면서)
시집 어른 뜻받앙 살암시믄 살아진다(시집어른 뜻 받아서 살다보면 살아진다)

 

아∼, 탐라할망들의 삶이여,
제주여인의 삶이여.”

 

실제로 돌랭이 조차 없던 나에게, 바다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공짜밭이었다. 나는 한 번 눈으로 본 것은 결코 남에게 주지 않았다. 바다에만 들어가면 어디선지 모르게 힘이 솟고 용기가 났다. 육지물질을 갔다 오면 저절로 상군 소리를 듣는다. 소라든, 전복이든, 미역이나 톳이든 간에 1등은 못해도 2등은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물꾸럭(문어) 만큼은 늘 최고의 머정(운)이 따랐다. 마치 녀석들이 나를 따라다니는 듯하였다. 해녀들은 ‘누가 도와주는 것 같다’면서, 나를 ‘물꾸렁 어멍’이라 불렀다.

 

사실 물건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 상군이 되지 않는다. 잠수하는 바다가 다르고, 숨비는 깊이가 틀리다. 상군은 열두 발 길이, 전봇대 높이만큼 잠수해 들어간다. 하군이 노는 바다에선 숨비질을 않는다. 상군이 잡은 소라는 크기도 굵고 색깔도 벌겋다. 몇 년씩 깊은 바다에서 버텨온 문둥구제기들이다. 여름철에는 물에 들 때마다 망시리 가득 소라를 잡았다.

 

한 번 숨빌 때마다 양 손이 가득할 정도로 물건이 많았다. 서너 차례 물에 들고 나면 하루에 서 너 망실이가 족히 되었다. 그런 날은 남편이 구루마를 끌고 와서 실어가곤 하였다. 물건은 조합에서 단체로 수매해서 일본으로 수출을 하였다. 더러는 단추공장으로 들어간다고도 하였다. 전복은 알맹이만 따로 떼어서 삶은 후 가공공장으로 보냈지만 그다지 돈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전복이 흔하게 잡히던 시절이었다.

 

나는 2남 7녀를 낳았다. 시할망이 같이 살았으므로 12명이 대가족을 이루었다. 노상 먹는 것이 부족했다. 항상 동 트기 전에 일어나서 커다란 말치솥에 보리쌀을 삶아놓고, 여분으로 감저(고구마)나 지슬(감자)을 쪄놓고서 어둠을 밟으며 밭으로 나갔다. 남의 밭까지 병작을 했으므로 밤낮으로 일을 해야 하였다.

 

달 밝은 밤에도 보리타작을 하거나, 볏짚을 묶거나, 말린 고구마를 줍는 일들은 가능했다. 겨울이 다가오면 소가 먹을 촐(꼴)을 배기 위해 한라산에 있는 마을목장으로 올라갔다. 오가는 시간을 아끼려고 아예 2∼3일씩 야영하면서, 낮에는 쇠꼴을 베고 밤에는 그걸 묶었다. ‘돌 가남 벨 가남(달 가늠 별 가늠)’으로 달을 보며 시간을 가늠하고, 별을 보며 날씨를 가늠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퍼뜩 깨이면 일을 하곤 했다. 하긴 바당물이 싸고 드는 것도 달과 별로 가늠하면서 살았다.

 

한라산 중턱이 내 집 마당처럼 친숙했다. ‘쇠로도 못 나난 제주예조로 나신예(소로도 못 나서 제주여자로 났단다)’ 하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누가 우리를 보고서 ‘쇠처럼 일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형편이었다. 실제로 어머니는 항상 ‘손이 놀민 입이 논다’면서, 그냥 앉아 노는 법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부지런한 덕택에 무서운 보릿고개에도 배고파서 울어본 적은 없는 듯하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했던가? 나도 ‘이거 하고 나면 저거 해야지, 저걸 하고 나면 그걸 해야지’ 하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물때가 아닌 봄날에는 한라산 자락, 거린사슴에 올라가서 고사리를 채취했다. 어두컴컴할 때 집을 나서면 어슴푸레한 신새벽쯤 마을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익숙한 곳이므로 눈대중으로도 얼마든지 고사리를 훑을 수 있었다.

 

한 번 고개를 숙이면 등허리에 찬 잘리(작은 포대)가 가득 찰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고 사람들이 두 셋씩 짝지어서 올라올 쯤엔 내창(냇가)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덤불이 우거진 곳에는 남의 손을 타지 않은 고사리들이 어랑어랑하게(크고 싱싱한 모양) 많았다.

 

남들은 조래기(작은 바구니)를 허리에 차고서 마치 봄 소풍에 꽃 본 듯이 고사리를 하나씩 꺾었다. 그 사이에 나는 양 손으로 서 너 개씩 한꺼번에 무질렀다. 산에서 고사리를 캐는 거나 바다에서 미역을 조무는 거나 기술은 비슷하였다. 물건에 집중하고 양손이 빨라야 한다. 해가 떨어지고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남편이 경운기를 끌고 와서 고사리 포대를 실었다. 그렇게 고사리철이 지나고 나면 물때에 맞춰서 다시 바다로 내달렸다.

 

 

해가 긴 여름철이 가장 고단한 계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밭으로 나가 검질(김)을 매다가 햇볕이 뜨거워질 때쯤 되면 태왁을 지고서 바다로 달려갔다. 서 너 번 물에 들고 나서 오후 대 여섯 시가 되면 다시 밭으로 돌아와서 나둥그러진 골갱이(호미)를 다시 거머쥐고서 검질을 마저 매었다.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두 세 시간을 대깍(꽉 차게) 채운 후에 집으로 향했다. 아침밥과 저녁밥은 딸들이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지었다. 나는 언제 밥을 먹었는지, 제대로 먹기나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김종두 시인의 ‘제주여인 6’에 나오는 아지망(아주머니) 같은 삶이었다. ‘어두룩헐 때 일어낭 물항 고득 물질어 나뒁(어스름할 때 일어나서,물 항아리 가득 물 길어 놓고서), 솖아낸 보리밥 혼 직 뜨는둥 마는둥(삶아 놓은 보리밥 한 숟갈 뜨는 척 마는 척), 갈중이 걸치멍 빌레왓으로 내돌아십주(갈옷을 걸치면서 자갈밭으로 내달렸답니다).’

 

가을에는 한라산 중턱에 올라가서 동백열매를 땄다. 동백나무들은 주로 내창이나 오름에 집단으로 자생했다. 동백기름은 머릿결도 좋게 하지만 피부병에도 잘 들어서 비싸게 팔렸다. 고사리처럼 다른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몰려오진 않았지만, 새벽에 올라가서 저녁에 내려왔다. 한 포대를 짊어지고 오면 소라 한 망실이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겨울에는 온 동네가 고요히 잠든 새벽 두 세 시에 일어나 횃불을 들고 밤바르를 나갔다. ‘밤바르’란 썰물이 잘 나가는 겨울밤에 바다에 나가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이다. 낮에는 물이 깊어서 잠수를 해야 하는 곳이 밤이 되면 자갈밭처럼 마르게 된다. 그 위로 소라, 해삼들이 기어 나와 고구마처럼 뒹굴기도 한다. 그저 비료포대에 주워 담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눈이 허옇게 쌓인 밤바다에 매서운 하늬바람을 맞으며 나가기란 여간 끔찍한 노역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바다가 좋았다. 밭일이나 들일보다 물질을 좋아했다. 한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거나 물질을 못하면 몸살이 나거나 용심이 날 정도였다. 물질 가기 전에는 힘이 없다가도 바다에만 가면 기운이 솟았다. 온 동네 소문도 듣고, 웃음밸탁(다같이 웃어 제치기)도 하고, 속상한 얘기도 털어놓으며,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해녀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료이고 한집안 식구이다.

 

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고마운 거다. 사실, 배롱배롱(초롱초롱)한 아이들 눈을 보면서, ‘죽는 것만큼 노력하면 살 수 있겠다’ 싶은 희망을 준 것도 바다였다. 결국 그 바당이 아이들을 키워주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시작한 물질인데, 그 물질로 집도 사고 밭도 살 수 있었다. 돌랭이도 없는 이들에겐 물질이 천직이요 은혜인 셈이다. 사실은 친정보다 나은 게 물질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좋을 수지 싶다. 아무리 해변마을이지만 동네 여청(여자)들이 다 물질하는 것은 아니다. 해녀들이 많은 것 같아도 열 명 중 한 사람 꼴밖에 되지 않는다. 물질은 타고나야 하는 법이다.

 

옆집 사는 옥수 어멍은 바당에만 다녀오면 꿈자리가 사나워서 잠을 자지 못했다. 순자어멍은 시퍼런 바당물이 무서워서 아예 숨비지를 못한다. 두 다리를 번쩍 하늘로 치켜 올리면서 머리를 바닷속으로 쳐박고, 두 팔을 벌려서 쑤욱 쑤우욱 바다밑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게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물론 ‘물질도 사람이 하는 거냐’며 내무려서(천시해서) 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천하에 고아인 나는, 아마도 물질을 안했으면 동녕바치(거지)가 되었을 거다. 저 너른 바당밭이 공짜로 펼쳐져 있으니, 다 내 것인 양 휘어잡고서 큰소리치며 살아왔다. 가끔은 풀이 죽어 있는 내게 바다가 다정하게 속삭이는 거였다.

 

‘친정이 없어도 이녁만씩 다 턱이 있다(저마다 몫이 있다)’고. ‘제주 여자로 났으면 한 식솔은 너끈히 책임져야지’라고. 파도가 살랑살랑 두드려 주는 어깨를 활짝 펴고서 다시 힘차게 발차기를 하며 살림을 늘렸다. 바당은 부지런만 하면 거저 주는 것, 살암시믄 다 살아지게 하는 고마운 거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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