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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희의 수류운재(7) ... 돌부처를 위한 변명

나는 ‘돌부처’입니다. 키는 95.5cm,이름은 ‘무명씨’.

 

거주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선운정사입니다. 선운정사가 어떤 곳이냐고요? 글쎄요. 어떤 사람은 ‘철학관형 개인사찰’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습니다.

 

나이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고 하기도 하고, 고려시대 사람 같기도 하다고 하지만 나도 내 나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고향도 어디인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제주 출신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떠돌이에게 고향이 따로 있겠습니까. 내가 있는 곳이 곧 고향 아니겠습니까?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1980년대에는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에 있는 한 무속인의 집 마당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1988년 계룡대 개발사업으로 토지수용이 이뤄지면서 한때 방치되기도 했었습니다. 그후 어떤 연유에서인지 대구시 소재 골동품상인 동화당-보고당(포항시 소재)-충효사(경북영천) 등을 전전하다 2008년 지금의 선운정사에 정착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 거래가격이 2천만원이었던 적도 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뭐 그것까지 알 필요야 없지 않겠습니까?

 

선운정사에 정착한 이후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주인의 능력에 감복할 뿐입니다. 특별대접을 해 주는 제주특별자치도 관계자들도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2010년 지방선거의 감흥이 채 가시지 않은 7월 어느 날 문화재 전문가 세분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이때 내 주인이 나를 ‘문화재자료’로 지정해달라고 제주도에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인간문화재’급의 영광 아니겠습니까.

 

나를 두고 논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 분은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시대적 특징이 안보이기 때문에 지방문화재 지정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지요.

 

다른 두 분은 공공의견으로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유행한 약사불상의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향후 연구할 자료적 가치가 있으며, 불상이 적은 제주의 현실을 감안할 때 문화재자료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가치는 없으나, 제주에는 별로 나같은 놈이 없어 대접해줘도 좋겠다 이런 내용 아니겠습니까.

 

이를 근거로 제주도는 2010년 9월 문화재자료지정 가치 검토를 위한 제주도문화재심의위원회를 열었습니다.

 

도 관계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현장조사 참가자 3명이 같은 의견을 제시한 것처럼 교묘하게 회의자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첫 회의에서는 일단 지정이 보류되더군요. 나의 출신성분, 그러니까 근거자료가 미흡하다는 것입니다. 아 그때의 실망이라니....

 

한 번의 실패로 도전을 포기할 거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요. 절치부심 끝에 다음해 3월 1일 2차 심의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26일에는 드디어 내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떠돌이인 내가 제주에 와서 이런 대접을 받다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내 삶에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내 주인을 다시 우러러 봤습니다. 일부에서는 큰 권력의 비호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수군대더군요.

 

 

몇몇 사람들은 현직 지사를 비호세력인 것처럼 얘기하기도 합니다. 지사님이 야인이던 시절 저의 집을 방문해 찍은 사진도 그럴 듯 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게 그것만으로 단정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어찌됐든, 나는 그저 행복할 뿐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012년에는 성형수술도 받았습니다. 별로 고칠 곳이 없는데 성형수술이라니….

 

수술을 받았는지 연고를 발랐는지 모르지만 수술비가 1990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뭐 어떻습니까. 수술비는 모두 국민 세금으로 낸다는데 나로서는 나쁠 것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무려 5억 원을 들여 내가 살 집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건축비는 제주도에서 부담한다고 합니다. ‘어기야 두리둥실…’ 절로 어깨춤이 나왔습니다. 그냥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초가삼간이번 족한데 대궐같은 집이라니.

 

그런데 행복도 잠시였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제가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뭇매를 맞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내용은 뭐 그렇습니다.

 

떠돌이에다 가치도 없는 나를 왜 문화재자료 지정했느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회의 자료도 일부 조작됐다. 내 주인이 현직 도지사와 친분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자료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 자금도 회수해야 한다. 감사위원회에서 조사해야 한다. 사법당국에서 수사로 전말을 밝혀야 한다. 내 선배들인 다른 돌부처 문화재자료에 이런 거액을 지원한 사례가 없다.

 

정말 내가 나쁜 놈입니까.

 

나는 정말 억울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올해 있을 지방선거와 관련된 모략이라고 봅니다.

 

문화재인 나를 선거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다니, 정말 제주의 민도가 한심하기만 합니다.

 

내 주인도 많이 아플 것입니다. 그 뒤를 봐주는 분은 더 아플 것입니다. 나는 정말 이분들에게 죄송할 뿐입니다. 나를 문화재자료의 반열에 올려준 제주도 공무원들도 뒤를 봐주는 분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정말 꿈만 같습니다.

 

떠돌이에서 문화재자료까지 갔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내 주인은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행정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환수한다면 난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돼서는 안되겠지요.

 

우리 주인의 뒤를 봐주는 권력자가 바뀌지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 바뀌면 어떻습니까. 뒤를 바주는 권력자의 힘이 약해지면 주인께서 다른 비호자를 찾아 나서겠지요. 우리 주인께서 잘 알아서 하시리라 나는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정말 꿈만 같습니다.

 

우리 주인의 꿈속에서 내가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인지, 도정을 움직이는 권력의 꿈속에서 내가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내 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알 듯 모를 듯합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부처님,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 수류운재=수류심불경(水流心不競) 운재의구지(雲在意俱遲), 흐르는 물은 다투지 않고 구름은 서둘지 않노니. 두보(杜甫)의 시 강정(江亭)에 나오는 시구에서 따온 말이다.<편집자 주>

 

김대희는?

= 취재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언론인이다. 제주신문, 제민일보를 거쳐 서귀포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김태환 지사 시절 공직에 입문해 제주도 공보관과 문예진흥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역 기자 시절에는 항상 소외된 이웃을, 사회의 어두운 곳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해온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한 때 '자청비'라는 막걸리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풀코스를 30회 넘게 완주한 마라토너다. 과유불급이라는 단어를 사랑하는 울트라 마라토너다. 2012년에는 강화도에서 강릉까지 달리는 한반도 횡단마라톤을 62시간에 완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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