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외사촌 여동생 나이가 50대 초반이니 아마 1970년대 초쯤인듯 싶다. 어머니 바로 밑 동생인 작은이모 혼례 준비 때다. 그때만 해도 외가에 상수도 시설이 없었던 터라, 막내 외삼촌, 외사촌 형들과 함께 손수레에 막걸리 통 12개를 싣고 천제연 1단 폭포로 가야만 했다. 작은이모 잔치 때 쓸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당시 외가는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열녀문 동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왕복 3km 내외였지만, 손수레를 끄는 막내 외삼촌이 중학생이었고, 뒤에서 미는 외사촌 형들이 다 초등학생이니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외갓집 마당을 나오자마자 ‘열녀문 동산’을 500m 낑낑 오른 다음 오르막길을 다시 500m정도 더 가면, 원 동산이라는 가파른 동산이 나타난다. 그 원 동산을 500m 정도 내려가면, 아주 예전에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천제연이 나타났다.
천제연 입구에 손수레를 세운 다음, 한 말들이 막걸리 통을 들고 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1단 폭포 옆에 물이 콸콸 쏟아지는 동굴이 있었다. 지금은 출입금지 지역이다. 거기서 물을 담아 다시 미끌미끌한 급경사 계단을 힘겹게 올라와, 물통을 손수레에 싣고 가파른 원 동산을 올라와야 하는 엄청난 작업이다. 그걸 그날 서너 번 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도 잔치는 기본이 3일이다. 준비까지 합치면 일주일이다. 그래서 ‘일뤠 잔치’ 혹은 ‘이레 잔치’라고 했다. 첫째 날은 ‘물 받는 날’이다. 잔치에 쓰이는 물을 동네 사람들이 혼주네 집 물 항아리에 채워줬다. ‘물 부조’인 셈이다. 둘째 날이 ‘ᄃᆞᆺ(혹은 도세기) 잡는 날’이다. 혼례를 위해 집에서 키운 ‘자릿 도세기’를 잡았다(=도축했다).
셋째 날이 ‘가문(家門)잔치’ 날이다. 혼례식 전날, 친인척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가문잔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예전에는 혼례식은 안 가더라도 가문잔치 날에는 반드시 ‘잔치 먹으러’ 갔다. 넷째 날이 ‘혼례식’ 당일이다. 신랑이 신붓집 가서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온다.
다섯째 날은 ‘사돈(査頓)잔치’다. 혼례식 다음 날 신랑 신부가 신붓집에 가서 신부 일가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고 인사드린다. 여섯째 날은 신랑 집 가는 날, 마지막 날은 잔치 마무리하는 날이다. 이중 핵심인 ‘가문잔치’, ‘혼례식 날’, ‘사돈잔치’를 일러 ‘3일 잔치’라 했다.
제주도 혼례 풍속은 친인척과 마을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였다. 내혼(內婚)으로 형성된 마을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동네잔치이기도 했다. 제주도는 마을 내혼이 많았기 때문에 친가와 외가가 한마을에 살거나 인근 마을에서 거주해 집안 대소사에 함께 했다. 우리 어릴 적만 해도 동네 친척네가 일이 나면 일주일간 집에서 밥 안 했다. 그 집 가서 일 도와주며 삼시 세끼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힘들게 길어오는 물은 ‘ᄃᆞᆺ(도세기) 잡는 날’에 특히 많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잔치를 대비해 ‘ᄃᆞᆺ통시’에서 기르던 ‘자릿 도세기’를 잡았다. ‘자릿 도세기'란 제주도 토종 흑돼지로 돗통시에 넣고 기르는 두 마리의 돼지 중 어미젖을 뗀 새끼 돼지를 말한다. 돼지를 잡아 고기는 혼례식 날에 쓰고 내장이나 기타 부산물은 순대를 담아 ‘가문잔치’날 나눠 먹었다.

가문잔치 날 ‘궨당’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다음날 혼사에 대해 의논하고 준비한다. 친척들은 둘러앉아 사돈집에 참석할 ‘우시’(상객), ‘대반’, ‘중방’ 등을 정한다. 신랑 집에서는 가문잔치 때 예장(禮狀)을 쓰고 ‘홍세함(혼서함)’을 준비했다. 혼인할 때에 신랑집에서 예단과 함께 신붓집에 보내는 편지인 혼서(婚書)를 담는 상자이다.
“이 당, 저 당해도 궨당이 최고!”라는 ‘궨당’이란 권당(眷党)의 제주어이다. 제주도에서는 부계 친척의 친당(성펜궨당)에 더하여 모계 친척의 척당(외펜궨당)도 포함한다. 친가 8촌에 더하여 고종 4촌·이종 4촌·외종 4촌 이내를 포함한다. 이들을 다 합치면 60호 정도다.
제주대학교 김혜숙 명예교수는 “제주도에서 친척을 뜻하는 용어로 궨당·일가·방상 등이 있으며 제주도에서는 일가보다는 ‘서로 돌아본다’라는 뜻의 ‘방상(訪相)’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라고 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