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간 세습돼 온 갓 제작기술 ... 판매 절벽에 맥 끊긴다

  • 등록 2025.10.02 1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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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말총서 나온 '제주의 보물' (2) 국가·지자체의 구체·실질적 지원책 필요

 

제주시 삼양동에 사는 망건장 강전향(82) 씨는 지금도 양반다리 하고 앉자 집중하여 망건을 만들고 있다. 2020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물려주신 전통이다. 강전향 보유자 어머니는 고 이수여(李受汝, 1923년생) 망건장 기능보유자다. 故 이수여 명예 보유자는 제주시 삼양동 출생으로 13세 때부터 망건을 만들었다. 망건 ‘일청’(망건을 만드는 공방)을 운영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망건(網巾) 작업을 해온 장인이다.

 

“그 옛날 우리 외할머니가 어디 저 김녕 쪽에서 망건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외삼촌들은 다 공부했는데, 딸인 우리 어머니에게는 ‘여자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라면서 이 일(망건 만드는 일)만 하라고 했다고 하데요. 밭에도 안 데려가고 돼지 사료나 주라고 하니까, 어머닌 그때부터 다른 일은 안 하고 이 일만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라고 강전향 보유자가 말했다.

 

“5일에 한 번, 한 달이면 여섯 번, 오일장이 서는 날마다 그동안 결은(만든) 망건을 내다 팔아 집도 사고 옷도 사고 식량을 샀다.” 구한말 제주 여성들은 망건을 만들어 얻은 소득으로 집이나 옷, 식량, 기타 일상용품 등을 샀다. 단순히 소소한 현금수입에 그치지 않고 집이나 밭 등 집안 재산을 증식시킬 만큼 상당한 소득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 망건장(망건을 만드는 기술이나 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국가무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하였다. 처음 임덕수를 보유자로 인정하여 명맥을 잇게 하였고, 그의 사후인 1987년 제주도 이수여(1923년생)를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그가 연로 하자 2009년에 그의 딸인 강전향(1943년생)을 보유자로 인정하여 지금까지도 그 기술을 전승하고 있다.

 

강전향 보유자의 친정어머니 고 이수여 명예 보유자는 처음엔 망건과 탕건 모두 제작했다. 초대 망건장 고 임덕수 사후에 문화재청에서 망건 보유자를 물색하던 차에 그전까지 망건과 탕건을 다 제작하던 고 이수여 장인이 당시 망건을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인이라 망건 보유자로 정해졌다고 했다.

 

전통 탕건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는 장인을 ‘탕건장(宕巾匠)’이라 한다. 해방 후 제주도를 제외하고 탕건장들이 점차 사라져버렸다. 1980년 11월 제주 여성 김공춘 장인을 중요무형문화재 제67호 탕건장 기능보유자로 인정했다.

 

1919년생인 고 김공춘 명예 보유자는 말총 공예의 본고장인 제주에서 활동한 장인으로 1925년부터 고모 김수윤에게 탕건 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평생을 작업해온 장인이다. 이후 2009년 2월 명예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2020년 10월 3일 국가무형문화재 제67호 ‘탕건장’ 김공춘 명예 보유자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후 1대 탕건장의 딸인 김혜정(1946년생) 장인이 국가무형문화재 제67호 2대 탕건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탕건과 망건을 만드는 작업은 고단한 일이다. 웬만한 참을성과 집중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사람 머리카락보다 조금 굵은 말총을 작은 바늘귀에 꿰고 한 코 두 코 섬세하게 엮어 가며 만든 작품은 장인의 땀방울과 끈기, 손끝 기술의 결정체다.

 

그래서인지 망건장 강전향 보유자는 지금도 망건 만드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망건 만드는 일은 아무나 못해요. 무엇보다 성격이 차분해야 하고, 생각이 많아도 안 됩니다. 내가 망건 만드는 일 해서 그런지 동네 사람들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라고 강전향 장인이 말했다.

 

제주도에서 행해지는 탕건과 망건 작업은 자기 집 방안에 작업하는 제작 도구를 놔두고 밭일이나 바깥일 하다가 여유 있을 때 일했다. 대개 2~3명 혹은 6~7명 동네 큰 아기들이 혼자 사는 동네 여인 집에 모여 초저녁부터 11시경까지 작업하고 새벽에 일어나 집에 가서 밥 먹고 밭일하러 나갔다. 모여서 일하던 곳을 ‘일청’이라 했다. 품목에 따라 ‘탕건청(탕건 일청)’ 혹은 ‘망건청(망건 일청)’ ‘감티청(감태 일청)’이라 불렀다.

 

강전향 보유자(80)에 의하면, 예전에는 동네 처녀 7~8명이 그의 어머니에게 탕건(혹은 망건) 겯기를 배우려, 매일 밤 ‘일청’으로 왔었다고 한다. 밤새 짜고 아침이면 다시 밭으로 일하러 갔다. 지금 그분들이 살아있다면 90에서 92세 정도라고 했다.

 

며칠 걸려 완성한 탕건이나 망건 5~10개가 되면, 제주시 관덕정이나 화북, 삼양, 조천 일대 5일 장이 서는 날 새벽 내다 팔았다. 강전향 보유자는 8살 때부터 바쁜 어머니 대신, 오일장에 가서 망건을 팔고 간 김에 말총을 사 왔다고 했다. 탕건은 광양에 가서 팔았다. 1986년 15일에 한 개를 만드는 ‘홑탕건’과 ‘겹탕건’ 한 개에 6만 원, ‘바둑탕건’은 한 개에 7만 원 정도 받았다. 참고로 1986년 라면 가격은 200원이다.

 

2009년 제주특별자치도는 조선 시대 갓 공예 중심지였던 이미지를 부각해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무형문화재 맥이 끊이지 않도록 보호·전승하기 위해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인근에 갓 전시관을 개관했다. 중요무형문화재 갓일 제4호인 제주의 장순자 장인이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장순자 장인의 어머니 고정생 장인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제1대 양태장’으로 지정을 받았다. 장순자 장인(1940년생)의 외할머니(강군일)는 당시 제주 ‘갓일(양태)’의 손꼽히는 명인이었고 어머니(고정생) 역시 6살 때부터 ‘갓일’을 배웠다. 장순자 장인이 기억하는 어머니 고정생 장인은 남편이 구박할 때에도 ‘양태판이’와 ‘구덕(대바구니)’만 들고 다른 집에 피해 가서 양태를 짤 정도로 평생 양태 짜는 일만 했다.

 

2009년 9월 강순자(1946년생) 장인은 명예보유자 김인의 뒤를 이어 ‘갓일’ 중 총모자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김인 명예 보유자는 강순자 장인의 어머니이다. 강순자 장인은 어렸을 때부터 ‘갓일’을 익혔다. ‘갓일’은 총모자, 양태, 입자로 나뉘는데, 그중 강순자 장인이 인정받은 총모자는 컵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갓대우’ 부분이다.

 

이처럼 제주도에서 양태, 탕건, 망건, 갓모자 등의 제작기술은 주로 모녀간 세습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여자 어린이가 10여 세에 이르면 어머니 무릎 앞에 앉아 탕건 짜는 기술을 보고 익혀, 15세쯤 되면 한 사람 몫을 거뜬히 한다. 제주 4.3 당시 남편을 잃은 이수여 보유자는 외동딸 강전향과 함께 2020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망건을 짜며 살았다. 망건이 ‘평생 친구’라는 강전향 보유자 역시 6살부터 어머니 이수여 장인에게서 기술을 배우고 익혀 이날 이때다. 강전향 보유자의 딸 전영인(56) 관모공예 이수자 역시 어머니의 망건 기술을 잇고 있다. 다만, 이제는 망건 만드는 일만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어 다른 직장을 다녀야만 해서 전승에 집중할 수가 없다.

 

요사이 특수 업종을 제외하고는 갓이나, 탕건, 망건을 쓰는 사람이 없다. 갓 공예의 수요는 그야말로 판매 절벽이라 할 수 있다. 그 얼마 안 되는 수요마저 방충망으로 만든 값싼 저질 제품이 잠식하고 있다. 이러니 장인이 만든 명품은 더욱 설 자리가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전시회를 위한 작품 제작이 고작이다. 가끔 손주들을 위해 탕건 제작기술을 이용한 일종의 퓨전 모자를 만들기도 한다. 손주들의 만족도는 상상 초월이다. 그러나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니 전수자가 없다. 이 엄청난 문화자산의 소멸 앞에서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책이 시급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j3698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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