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 기질 닮은 제주마 ... 덩치 큰 말도 이기는 서열 '짱'

  • 등록 2025.11.07 10: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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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말이 나거든 상산으로 보내라 (2) 용도따라 달라지는 순치 기간과 방법

 

제주마는 성격이 온순하고 체질이 건강하여 병에 대한 저항력과 생존력이 강하다. 제주 사람 기질을 닮았다. 일반적으로 말은 외로움을 싫어하는 군거성(群居性) 초식 동물이다. 서열과 책임성이 강한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다. 말들을 한 구역에 몰아 방목하기도 하는데, 그 경우 서열을 정하기 위해 싸움한다.

 

‘더러브렛(thoroughbred)’같은 서양말과 제주 조랑말이 서열 싸움을 하면 누가 이길까? 십중팔구 제주마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큰 서양말의 승리를 점친다. 아니다! 제주마가 100%, ‘짱’ 먹는다. 전략은 단순하다. 키 작은 제주말이 서양말 다리 사이로 들어가 서양말 허벅지를 사정없이 물어뜯는다. 그러면 서양말은 비명조차 못 지르고 눈물 뚝뚝 흘리며 항복할 수밖에 없다.

 

제주마는 기억력이 좋다. 제주마는 방목장의 지형 즉, 어떤 장소나 방향 등을 잘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오랜 세월 야생에서 얻어진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방목장으로 가는 ‘ᄆᆞᆯ 길(말 길)’을 망아지 때부터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해력이나 사고력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경수 옹(95)의 어릴 적 기억에 의하면, 말들이 주인보다 앞서가다가 세 갈래 길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뒤에 오는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다. 주인이 와서 어느 쪽 길로 갈까를 알려주면 그때야 가라는 방향으로 걷는다고 했다.

 

제주마는 밭을 갈거나 조 밭을 밟고, 농작물을 실어 나르는 등 제주의 농경 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역마(役馬)였다.

 

이뿐 아니라 1950~1960년대만 해도 제주마는 마차에 짐을 실어 먼 거리 이동 시 또는 결혼식 때 신랑과 ‘우시’ 2인(집안에 따라 3~4인)들을 태우는 의전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이들은 예장(禮裝)이 접수되고 신붓집의 ‘문전고사’가 끝나야 말에서 내릴 수 있었다.

 

농한기가 끝나고 결혼 성수기가 돌아오는 10월이면 고경수 옹의 집에서는 선흘뿐 아니라 인근 김녕까지 착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잘생긴 말 5마리 정도를 목장에서 집으로 데려다 놓고 갈기를 단장하고 빛깔을 윤기 있게 하여 무상으로 결혼식 의전용으로 빌려주곤 했다. 예약은 항상 밀려있었고 고맙다는 주변 칭송이 자자했다.

 

모든 말이 처음부터 ‘착한 말’이 되지는 않는다. 길들이기, 즉 순치(馴致) 과정이 필요했다. 말은 소보다 성질이 민감하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길들이기나 순치 기간이 다소 오래 걸리며 방법이 다르다.

 

역용(役用) 말은 처음부터 밭갈이용으로 길들이기 하지 않고 마차나 달구지를 끌 수 있도록 순치시키고, 마차나 달구지를 끌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밭갈이용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순치가 되면 마구를 장착하여 마차나 달구지를 직접 끌게 했다.

 

처음 한쪽 또는 양쪽 바퀴를 고정하여 구르지 못하게 하였다. 날뛰거나 제어하기 힘든 말을 금방 지치게 하여 순응시키기 위함이다. 이때 사람이 굴레 또는 재갈에 연결된 ‘돌’을 이용하여 말을 직접 끌고 다녔다. 몇 번 하다 보면 말은 이내 순응하고 주인에게 복종했다.

 

 

제주 바다에 해녀가 있다면 한라산과 오름에는 ‘테우리’가 있다. ‘테우리’는 목축에 종사하는 목자(牧者)를 의미하는 제주어다. 이들은 전문 목축기술을 가지고 광활한 목장 초지대를 누비며 우마를 방목하며 제주도 전통 목축 목화를 만들어낸 주체들이다. 이들 ‘테우리’들은 관리하는 가축 종류에 따라 ‘소 테우리’ 혹은 ‘말 테우리’라 부른다.

 

‘테우리’들은 마소를 관리하는 일 이외 밭을 밟아주는 일과 ‘바령 팟’을 ‘ᄇᆞᆯ리는’ 일을 하였다. 화산회토 지대에서 바람이 불면 흙과 함께 파종한 씨앗이 날려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사람보다는 힘이 좋은 우마를 투입해 파종한 밭을 밟아주었다. 이를 진압농법(鎭壓農法)이라 했다.

 

밭에서 거름을 얻기도 했다. 이런 밭을 ‘바령 밭’이라고 했다. 마소들을 놀리고 있는(휴한기) 밭으로 몰아넣은 다음, 이들의 배설물을 받아 쌓아놓은 뒤 적당한 때에 이를 농사용 거름으로 이용했다. 이때 말 떼를 잘 부리는 노련한 ‘테우리’ 일수록 좁은 밭 안에서 질서 정연하게 밟도록 말 떼를 몰 수 있다.

 

‘테우리’들은 자신의 마소를 직접 키우거나, 일정한 보수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마소들을 대신 키워 주거나, 마을 공동목장에 목감(牧監)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공동목장 내에 지어진 ‘테우리 막’에 살면서 마소를 관리하기도 했다.

 

이들은 방목지에 있는 오름과 하천, 동산의 이름 그리고 마소의 이동로와 관련된 주요 지명을 손끔 보듯 알고 있었다.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오름의 위치, 물을 먹일 수 있는 물통이나 하천 위치 그리고 풀이 자라고 있는 위치를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방목 중인 마소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경수 옹의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가랑ᄆᆞᆯ(가장 좋은 말)’을 타고 ‘테우리’ 서너 명과 함께 키우던 말 15마리를 몰고 선흘이나 동복 심지어 김녕 마을까지 가서 무상으로(점심 식사만 제공) 밭들을 말로 밟아주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 밭 주인들은 나중에 고경수 옹의 아버지네 목장 일을 도와주거나 겨울철 말에게 먹일 ‘ᄎᆞᆯ(꼴)’을 베어 오는 일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바로 ‘수눌음’이라는 제주풍습이다.

 

승용마 길들이기는 더 어렵다. 말타기 능숙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역용마(役用馬) 길들이기와 마찬가지로 말에 올라타기 전 사람과 친숙해지는 순치 과정이 필요했다. 먼저 굴레 씌우고 끌기를 하면서 말이 달아나려는 습성(fly animal)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제압하고 순치시켰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말과 가까이하게 되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어느 정도 순치가 되면 재갈 굴레를 씌우고 등 위에 살짝살짝 올라타면서 체중 적응 순치를 시켰다. 그다음 안장 채우고 한 사람이 말을 끌고 또 한 사람은 말 등에 조심스레 올라타 승용(乘用) 목적으로 길들이기 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j3698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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