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고향’ 제주에는 하늘에도, 땅에도, 집 안팎에도 신이 있다

  • 등록 2025.05.08 13: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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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신들의 섬에 나타난 ‘비암’ (1)

 

65년 전쯤이다. 결혼하고 처음 시댁에 간 어머니는 마루 위 대들보나 기둥, 처마 밑에 슬며시 나타나는 커다란 뱀을 보고, 너무 놀라 숨이 멎을 뻔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뱀을 쫓아내려 하지 않았다. 뱀을 위협하거나 죽이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경외시하며 집안의 소중한 신으로 모시는 듯했다. 그에 더해 시댁 어른들은 ‘분시’(분위기) 모르는 새댁, 어머니에게 뱀에 관한 금기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하나하나 일러주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시집가서 겪은 맨 처음 문화충격이었다.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만 해도 우리 할머니나 증조할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제주 사람들은 뱀을 ‘칠성신(七星神)’으로 섬겨왔다. 장독대에 짚가리를 두어 ‘터줏가리’라 하여 신앙했다. 현재는 흔적조차 없지만, 65년 전 할머니네 장독대나 증조할머니네 집 뒤꼍 대나무 숲에는 ‘밧칠성’을 상징하는 ‘칠성눌’이 있었다. 곡식을 저장하는 집안 ‘고팡’에는 ‘안칠성’을 모셨다.

 

‘밧칠성’은 ‘뒷할망’, ‘뒷할마님’, ‘뒷칠성’이라고도 한다. 집 뒤에 모셔지는 칠성신들 이름이다. ‘칠성눌’ 또는 ‘주젱이’는 집안의 부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주저리’(일정한 양의 볏짚의 끝을 모아 엮어서 무엇을 씌울 수 있도록 만든 물건)를 말한다. 예전 제주에는 “칠성 눌을 잘 모시면 곡식이 잘 되고, 소나 말이 잘된다”라는 속설이 있다.

 

‘신들의 고향’ 제주도에는 하늘에도, 땅에도, 집 안팎에도 다 신이 있다. 성주·문전신·올레신·조왕·안칠성·밧칠성·마귀신·측신·토지신·조상신·도깨비신·눌굽지신·울담지신·오방토신 등. 저마다 다른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오래도록 제주 사람들을 세심하게 보살펴준다. 이 중 토지신을 제외한 다른 신들은 대부분 무속신앙에서 연원 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굿을 통해 하늘의 신과 땅의 신들을 불러들여, 더불어 춤추고 놀며 풍농을 기원하고 집안의 무사 안녕을 빈다. 예전 제주에는 문신(門神)에게 사업의 번창과 가장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문전제’, 부엌의 신에게 집안 살림을 복되게 잘살게 하고 안주인의 부엌살림을 아무 탈 없이 보살펴 달라고 비는 ‘조왕제’, ‘고팡’의 신이자 재물을 가져다주는 뱀 신 ‘안칠성'과 뒷 뜰(혹은 장독대)에 모시는 곡물을 지켜주는 뱀 신 ‘밧칠성’에게 집안에 부(富)를 일으켜 달라고 비는 ‘칠성제’, 생업수호신을 위한 ‘용왕제', ‘산신제', ‘불미코', ‘칠원성군제' 등 다양한 굿이 행해졌다.

 

제주도 1만8000 신 중 70% 정도가 여신이다. 여신은 뱀신을 인격화한 가신(家神)으로, 제주에서는 ‘할망'으로 인식되며 모셔져 왔다. ‘할망’은 인간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평생을 관장하는 할머니라는 뜻이다. 이 ‘할망'은 관할구역과 재단의 위치에 따라 ‘뒷할망', ‘물할망', ‘칠성할망', ‘안칠성할망', ‘밧칠성할망' 등으로 불리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뱀을 ‘버염’, ‘비염’, ‘베엄’, ‘베염’이라 한다. 다들 제주에서 ‘칠성’으로 모셨던 뱀이 구렁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누룩뱀’이다. 술 담글 때 쓰는 누룩과 색깔이 비슷하다 해서 붙여졌다. ‘산구렁이’, ‘밀뱀’, ‘석화사’ 등으로 불린다.

 

누룩뱀은 나무를 잘 타고 오른다. 전신주에 오르기도 하며 잔가지에 있는 새 둥지에서 알이나 갓 부화한 새들을 꺼내 먹기도 한다. 쥐를 잘 잡아 ‘다이온쥐잡이뱀’으로 불리기도 한다. 구렁이와는 같은 속, 능구렁이와는 같은 과에 속한다. 구렁이와 체형이 유사해서인지, 예전 제주도 민간에 자주 보였던 뱀을 다들 구렁이라고 알고 있다.

 

제주도 누룩뱀 크기는 다른 지역 누룩뱀보다 더 크다. 제주도 누룩뱀은 능구렁이처럼 독이 없다. 성격도 순한 편이다.

 

결혼 전 어머니는 교회를 다녔다. 결혼하면서부터 할머니 뜻에 따라 불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올해 86세인 어머니는 지금도 사월 초파일에는 며느리들과 함께 사찰에 가서 식구들의 무사 안녕을 위해 연등을 밝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사찰에서 성심껏 사십 구제를 올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어머니의 종교활동은 정통 불교라기보단, 무속이나 토속신앙과 혼합된 포괄적 의미의 생활 신앙체계이다. 사찰에 가서 불공드리는 종교 생활만 하는 게 아니라, 형편에 따라 크고 작은 굿을 하고 본향당이나 마을당에도 다니고, 매년 새해 초 점도 치고 가끔 토신제(土神祭)도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칠성’의 존재와 칠성신의 영험을 굳게 믿고 있다.

 

65년이 지난 현재 어머니는 간혹 집 마당에 나타나는 뱀을 보고도 무서워하거나 쫓아내려 하지 않고 뱀이 어디론가 사라지기를 조용히 지켜본다. 우리에게도 절대 뱀을 ‘다울리거나’(급히 쫓아내거나)나 해코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j3698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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