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관리 머물던 성읍리 ... 민족상징 지킨 객사(客舍)

  • 등록 2020.09.17 10: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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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의 [제주역사나들이](58) ... 14차 성읍리 탐방코스 (2)

■원님물

 

 

원님물은 남문에 들어서서 10여미터만 가면 길 우측에 있다. 남문통 관청물이라고도 불렀다.

 

'원님물은 식수로 사용하던 물통이다. 생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았으나 천천히 솟았다. 성읍 인근에서는 가장 깨끗한 물이었다. 양이 적었으므로 서민의 사용을 금하고 관아에서만 사용하였으므로 원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가 쏟아지면 흙탕물이 가득찼다가 2~3일 후에 다 빠져나간다. 남문 쪽에 있어서 남문물이라고도 하고, 관갯물(관가물), 원님물통이라고도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상은 초가가 바로 앞에 있다.' 출처-고영철의 역사교실

 

아무런 설명도 표식도 없으니 보는이들은 무심코 지나가기 일쑤이다.  안내표지판 설치가 필요해 보인다.

 

■고상은 가옥

 

 

대장간집으로도 불리던 곳이다. ㄱ자 형태의 가옥구조이며 과거 대장간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크다. 아직도 주민이 거주하며 내부가 현대식으로 개량되었다.

 

■ 고평오 고택

 

 

이문간이 뚜렷하다. 밖거리는 예전에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했다. 325평의 넓은 대지에 안거리, 밖거리, 이문간이 있고 70년도에 모커리를 헐어버렸다고 한다.

 

■노도리 방죽

 

 

 

용천수라기 보다 빗물을 모아 식수 또는 생활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인공 못이다. 방죽(물을 막기위해 쌓은 둑)의 규모가 꽤 큰것으로 보아 성안 사람들이 요긴하게 썼던 저수지 기능을 했으리라 본다. 지금은 연꽃이 만개하려 한다.
왠일인지 원님물과 더불어 노도리 방죽을 설명하는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 단지 금연구역, 출입금지 안내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객주집

 

 

정의 객사 바로 앞에 위치하고 원래 객주집이었다. 넓은 대지에 안거리, 밖거리, 목커리, 창고, 이문간등 다섯채의 건물이 있으며 제주의 전통적인 가옥배치에 객주집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 정의현 객사(客舍)

 

 

객사는 지방 군현(郡縣)에 마련된 국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한 정당(正堂)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숙박하는 건물을 합친 시설을 말한다. 

 

제주대학교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정의현 객사는 16세기 중반부터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서 관아에 관련된 시설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시설에 해당된다. 여기에 모셔놓은 궐패란 한양에 있는 왕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수령이 왕의 지시에 따라 고을을 다스리는 의미에서 비치해 두었으며 수령을 비롯한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대궐을 바라보며 절하는 향망궐배(向望闕拜)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또한 객사는 중앙으로부터 임금의 뜻을 받들고 내려온 사신들을 머물게 하며 접대하던 건물이기도 하였으며, 관찰사가 순시차 들르면 잔치를 벌이거나, 백성들에게 향시를 베풀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객사는 각 지방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지거나 관아와 나란히 지어지곤 하였다. 관사(館舍)·객관(客館)이라고도 하였다.' 출처-나무위키

 

 

탐라순력도의 정의강사나 정의양노에 정의현 객사는 팔작지붕의 단일 건물로 묘사되어 있다. 현재는 맞배지붕인 중앙의 정청(정당)과 좌우의 익헌(익실,익랑)이 합쳐진 육지부의 전통적인 객사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 이 또한 과한 복원의 실예로 보인다.

 

 

1909년에 객사가 공립정의보통학교 교사로 활용되면서 일제는 왕의 전패를 폐기하려고 하였다. 당시 유생들은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전패를 숨기고 일제의 고문에도 끝까지 전패의 위치를 밝히지 않아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이 전패는 광복 후에 정의향교에 모셔졌다.

 

 

■고창환 고택(이영숙 초가)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집은 정의향교와 담을 마주하고 있고, 20세기 초에 여관으로 쓰여져 동네에서 여관집으로도 불리었다. 그래서인지 주택입구에 정낭이 없다. 제주의 일반적인 전통 초가의 형태로서 특이한 점은 없다. 다만 예전 자료에 이영숙 초가로 소개되어 있는 집이 현재는 고창환 고택으로 불리고 있어 그 연유가 궁금하다. 

 

 

원래 이영숙이라는 분이 사시다가 고창환이라는 분께 매매를 해서 이렇게 된건 아닌지 추측만 할 뿐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육군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 주택부문에서 일했다.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공부를 더 한 뒤 에이스케이 건축 대표이사를 거쳐 제주로 귀향, 현재 본향건축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대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시공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향 제주의 벗들과 제주의 역사공부를 곁들여 돌담·밭담·자연의 숨결을 더듬고자 ‘역사나들이’ 기행을 나선다.

 

김승욱 kswinn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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