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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26) ··· 옹기에 얽힌 한국 천주교 스토리

충남도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을 방문하면 기념품으로 ‘철화분청사기 어문병’을 선물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교황의 검소한 이미지에 들어 맞고 충남을 홍보할 수 있는 대표적 기념품”이고 “물고기 문양은 풍요를 상징하며, 종교적으로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병이어는 예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 기적적 사건을 뜻한다.

그렇지만 교황 선물에 종교적 의미를 붙인다면 분청사기보다 옹기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더 소박·검소한 그릇인데다 특히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 역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주로 생업으로 삼았던 것이 옹기(질그릇) 굽는 일이었다. 교우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며 생계와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택한 것이 서민들 그릇인 옹기 제작과 판매였다.

신자들은 파난처로 낯선 이가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관군 습격이 있을 때 도주가 쉬운 곳을 골랐다. 여러 갈래로 도주 통로를 확보할 수 있는 행정구역이 중복되는 경계지역도 제격이었다.

옹기 제작이 서툰 사람은 판매부터 시작했다. 이후 흙을 구해오고, 흙을 고르고, 옹기를 성형하고, 불을 때는 일을 하게 된다. 역할을 나눠 일했지만 경제적 효과는 공유하는 ‘옹기교우촌’을 이뤘다. 이렇듯 옹기는 천주교 박해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는 산 증거다.

교황의 충남 방문지는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당진 솔뫼성지와 순교지인 서산 해미읍성이다. 이곳과 멀지 않은 홍성군 갈산면과 아산시 도고면에 옹기교우촌 전통을 이어받은 옹기장들이 있다. 충남무형문화재인 갈산 방춘웅씨(73)와 도고 이지수씨(74)다.

방씨 집안 옹기 역사는 줄잡아 15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방씨 고조부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갈산에 정착해 옹기를 만들었고, 이젠 후손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씨 집안이 자리잡은 도고 금산리도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옹기를 만들던 곳이다.

계룡산 일대에서 나오던 분청사기가 충남도 대표 문화유산일 순 있어도 교황에게 가장 값진 선물일 순 없다. 일본에 도자 기술을 전한 유명한 이삼평은 분청사기 전통을 이은 충남인이다. 하지만 이름은 모르지만 숨어서 옹기를 굽던 천주교도 옹기장들도 충청도 사람이다.

옹기와 천주교는 밀접했다. 진천 배티성지, 제천 배론성지도 모두 옹기로 생업을 이어갔다. 고 김수환 추기경 아버지는 경북 군위 등에서 옹기를 구워 생계를 꾸렸다. 김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옹기는 특별하다. 오래된 옹기 뚜껑에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게 있다.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신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지켰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아호도 ‘옹기’였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다. 마침 여왕의 생일을 맞아 조선 왕실 생일상을 차려 드렸다. 진수성찬 48가지 음식이 차려졌다. 그런데 여왕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날 한 할머니가 내논 안동 건진국수의 소박한 상차림에 관심을 가졌다. 이 때문인지 안동은 관광 홍보 호기를 맞았으나 “엘리자베스는 있지만 안동은 없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교황 방문은 충남에 큰 기회다. 세계에 전할 강렬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분청사기론 부족하다. 뭉클한 스토리가 없다. “교황은 왔지만 충남은 없었다”는 말이 나올까 걱정이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스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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