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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아프리카 서신(8) ··· 한국에서 세계, 세계에서 한국은?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라는 분이 독일의 시민사회를 경험하신 내용을 다산포럼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 포스팅하신 글의 일부를 여기 옮깁니다.

 

‘작년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 여러 곳을 방문했고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중 인상 깊었던 일 중의 하나는 퀠른의 ‘아시아재단 (Asienstiftung)’ 연례 발표회에 참석한 일이었다. 학계, 언론계, 사회운동 관계자들이 모여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 관련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방글라데시 분과에서는 봉제공장 노동자들 1000여 명이 건물이 무너져 사망한 사건이 주제였는데, 모 기업이 독일회사였기 때문에 독일 연방정부나 의회에 압력을 넣어 피해자 보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관한 아시아 재단, 그리고 이 재단과 연례 발표회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독일의 코리아협의회 (Korea Verband)가 모두 1970,80년대 독일에서의 한국 민주화 운동을 크게 지원했던 프로이덴 버그(Prof. Dr. Günter Freudenberg) 교수가 전 재산을 기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독일 재벌가 후손이라서 재력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이런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새삼 독일이라는 나라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독일은 국가주의 전통이 매우 강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민간재단, NGO 등의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독일에는 현재 민간 공공 부문을 포함 2000개 이상의 재단이 있고, 정부 개인 기업이 출연한 베를린에만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재단이 독일 문제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및 세계의 공적 현안에 대한 교육 연구 활동을 지원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는 아시아는 한국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묻는다.’

 

그 분의 글을 인용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사실 읽는 분들에게는 한심한 인상을 주게 될 것 같습니다만,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 읽으며 정말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입니다. 한국 시민사회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사재를 다 바쳐가며 평생 노력해 주신 독일의 한 교수와 그리고 이제는 그 분의 뜻을 받들어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의 시민사회를 위해 염려하고 노력하는 독일 시민사람들에게 대해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저에게 소중한 이유는 여태껏 공공재화의 보충생산 배달만을 마치 개발활동의 본질인양 착각하며 살아온 저에게 이 곳 르완다에서 개발일꾼인생 2막 2장에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김동춘 교수가 마지막 던진 질문을 아시아의 범위를 넘어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계는 한국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은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그 질문과 동시에 저 또한 제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르완다는 한국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은 르완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르완다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짧은 기간 안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이겠지만 동시에 그 일이 독재정권 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분명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만큼 주목을 받고 있는 싱가폴도 닮고 싶어하는 나라이거든요. 또한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도의 경제성장만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NICS(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 신흥공업국)와 BRICsS(Brazil, Russia, India, China) 국가들도 언급이 되어야 할 테고요. 박정희 대통령과 리콴유 수상의 이야기는 이 곳에서도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이 르완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는 질문에 우리가 정직하게 대답하고 싶다면 고도의 경제성장 외에도 한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헌법 제 1장 1조를 그냥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피를 흘리며 가까스로 배운 나라이고, 지금도 어려움 속에서 이를 지켜내려는 시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라고 이이야기해야 옳지 않을까요?

 

르완다는 참으로 저에게는 특별한 나라입니다. 1994년 처음 이 땅에 오게 되었고, 여러모로 한국의 입지와 비슷한 여건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내전과 학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리고 정치적 긴장과 불안이 늘 잠재해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에서 겪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렇게 이 곳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지 마치 데자뷰를 보는 듯합니다. 

 

르완다가  ‘수원태세’가 좋은 나라라고들 합니다. 1994년 100만의 인구를 잃은 인종학살 이전의 후투 정권 아래 르완다는 역시 ‘수원태세’가 아주 양호한 나라로 평가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 르완다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감히 한 줄의 글로 설명하기 힘든 그 어마어마한 비극은 지금도 잠재적으로 현재 진행형이고 서비스 전달(service delivery)의 모든 결과물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위협이 늘 상존함을 국민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 정권의 안보에 도움이 되었듯이, 이 곳도 종족 갈등 폭발의 위험이 현 정권의 큰 지지대가 되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 없습니다.

 

르완다는 2017년에 열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개헌논의에 초미의 관심사가 쏠리고 있습니다. 인접 형제 국가라는 부룬디는 바로 지난 달에 이미 헌법을 무시하고 3선에 나서려는 대통령을 놓고 국민들의 항의 데모와 실패한 쿠데테타와 역쿠테타까지 경험하고 있고요.

 

개발은 한 사회의 정치와 무관한 서비스 전달(service delivery) 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개발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포함하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그 일을 함께 하는 데는 국적과 인종과 다른 어떤 인위적 구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발의 주체이자 권리의 주체인 시민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견해가 가슴 속에 자라나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곳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의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3선 출마의 문을 열어놓기 위한 개헌을 옹호하는 글을 읽고, 르완다에게 한국이 유의미한 것이기 위해 짤막한 글을 하나 개인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몇 명이나 읽겠습니까마는 그렇게라도 생각을 정리하고 밝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고 밝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진정한 무중구(외국인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개발의 일꾼으로서 이 그리고 이들과 동일한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기사를 읽다 보면 이 분에게도 나름 나라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있구나 느껴집니다.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주장도 어색하게 사용되었지만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구요… …제 일천한 생각으로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만들어내고자 하는 결과물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더 중요하게 다루고 싶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류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들어왔습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의 작은 과정 하나를 생략해도 된다는, 또는 보다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 지금 여기의 몇몇 소수는 희생되어도 된다는... 그런 류의 거짓말 말입니다. 거짓이라는 말이 거슬리는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굳이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시간이 흐른 후에 그렇게 해서라도 정말 이 땅 위에서 그들이 가져다 주고 싶어하는 세상을 백성들에게 가져다 주지 않았다면 – 아무리 의도가 선했다 하더라도 –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위에 무엇을 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무리 급하고 답답하다고 해도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벽돌을 쌓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내가 만일 르완다 국민이라면 선한 독재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한참 고민을 해 봤습니다. 지금 이 정치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유지되는 정권이 없어져서 만에 하나, 천의 하나 또 다시 100만의 목숨을 앗아가는 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외국사람이라서 한가하게 남의 나라 정치판을 함부로 논하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사람이라면 고도의 경제성장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과정까지 르완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을 수 있습니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것 조차 얼마든지 정치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한국 사람들이 더 잘 알죠. ‘총풍’ 기억나시지 않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의 하나 이 땅에 1994년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적어도 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침묵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섣불리 일천한 경험과 관찰로 르완다의 앞날에 대해 근거 없이 불안해 하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역사 속의 마키아벨리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For the greater good’ 을 위해 생략하고 희생한 그 가치들이 나중에 돌아보시니까 그것들이야말로 ‘the greater good’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던가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갖 수모와 역풍을 맞으면서 못다 이룬 꿈을 아쉬워하며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렇게 물려주고 싶어하던 세상은 바로 생략하고 희생했던 상식들이 통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니었던가 그 말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아 그랬노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인류에게 주어진 역사라는 소중한 거울을 마음을 열고 들여다 볼 생각은 왜 안 해보셨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질문에, 느리지만 충실히 대답하며 살아보고 싶습니다. 르완다 대학생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진정한 시민으로 성장하면 이 나라도 성숙한 시민사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때는 무중구(외국인이라는 뜻의 르완다말)가 던져주는 선문답이 화두가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개발의 화두를 던지며 묻고 대답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상훈은?=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연구위원으로, 우간다·아프가니스탄·르완다에서 국제구호기금 지역(보급)책임자를 맡으며 20년 가까이 생활했다. 현재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아내는 르완다 현지에서 유치원을 개원, 교육계몽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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