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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아프리카 서신(7) ··· 시민조직과 서비스 전달

저는 현재 르완다의에서 PIASS 라는 대학에서 르완다, 부룬디, 콩고, 일본 학생들과 함께 개발학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배우는 것이 더 많죠.

 

 

저를 이 곳에 불러주신 분은 Dr. Kazuyuki Sasaki 라고 하는 일본사람입니다. 오랫동안 같은 NGO에서 일했고, 원래는 농업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에이티디오피아에서 8년간 일하다가 평화학(Peace study)을를 전공하고 다시 아프리카에 르완다에 돌아와서 봉사하시는 온 분입니다. 르완다에서 다시 만나 교제하는 중 개발에 대해 비슷한 생각들을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도 또래여서 가족이 모두 가까이 지냅니다.

무엇보다 그는 양심적인 일본인입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과 제암리교회 유적지를 방문하여 일본의 잔인했던 식민통치를 철저하게 가르쳤을 뿐 아니라 르완다 한인교회에 와서 가족 모두가 한국 사람들 앞에 서서 일본이 과거 한국인들에게 가한 고통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또한, 일본 국내에서도 재일 교포들에게 차별적으로 대하고 있는 일본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분명 그는 제가 알고 있는 몰역사적인 편협한 일본인의 범주를 뛰어넘는 분입니다. 일본인이지만 오랜 동료이고, 개발에 대한 같은 고민과 열정을 가진 실천적인 지식인으로 함께 일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그 분의 수업을 저도 학생들 틈에서 같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수업은 ‘Community Organizing’ 이라고 한국말로 번역한다면 ‘주민조직론’ 뭐 그 쯤 될 겁니다. 수업시간에 저는 아래와 같은 한 장의 슬라이드를 봤습니다.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발’이라는 개념은 안에는 위의 표에서 보듯이 슬라이드 안의 표 안의 4가지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은 주로 ‘개발’ 이라는 이름 아래 마지막 부분 ‘서비스 전달(service delivery)’ 에 거의 대부분의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 왔습니다. ‘개발’이 무엇인가를 좀 더 면밀하게 논의한다면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여기에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요지는 것은 제 생각의 편향성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내가 뭔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 뭔가를 깨우치지 못한 것이 있다’ 고민하던 하는 중에 이 슬라이드를 통해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주민조직(community organizing) 의 설명 속에서 나온 ‘citizen’ 즉 ‘시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조그만 실험을 하나 해 볼까요? 다음 사진을 보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무엇인가요?저는 카메라를 들고 필드에 나가는 것을 개인적으로 상당히 꺼립니다. 그래도 여러 가지이유로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게 되는데요. 찍어온 사진들 중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사진들은 ‘사람’을 찍은 사진입니다. 사람의 표정, 몸짓, 분위기 등이 사진에 묻어 나오면 마치 그 사람이 저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듯 생생해집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이런 건 모금에 별로 쓸모가 없겠다’ 는 생각이 먼저 들면 이 업계에 너무 오래 몸 담으신 분입니다. ‘그냥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시네.’ 그런 생각이 든다면 딱 아직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신 분이거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신 분이실 겁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입니다. (山是山 水是水)

 

위의 사진은 북부 우간다 Angagura 라는 마을 도로가에서 비스킷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할아버지이신데 늘 유쾌하게 웃으며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전쟁통에 모든 것을 잃고 난민처럼 살아가던 뒤죽박죽의 세상에서도 그 분의 모습은 그 길을 자주 지나다니던 저에는 참 인상이 깊었습니다.

 

무슨 무지개를 쫓아다니는 것도 아닐진대 이 업계의 일은 하면 하면 할수록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줄고 의심과 잔재주 등 관리기술만 늘어납니다. 개인적으로 더 힘든 것은 현재 소속된 대학에서 그 관리의 노하우를 전하라고 하시네요. 관리의 요체는 ‘Ccheck and Vverify’, 즉 ‘검토와 입증’ 입니다. 상호 인간성에 대한 신뢰보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는 거죠. '사실이 이러하다면'을 기초로 하는 거죠. 그게 맞는다면 소위 개발을 논하고 개발사업을 수행하려는 사람들은 다른 공부보다 엉뚱한 공부하지 말고 경영 관리 등 MBA 출신들을 모셔오는 것이 나을 겁니다. (결코 경영을 공부하신시는 분들을 폄하하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본의 아니게 불쾌함을 드렸다면 용서하십시오.)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이 업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요? 또한,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을 화두로 삼고 논의할 때마다 주민들의 주인의식(ownership)을 강조하는 이유도 사람이 없이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지 주민들의 지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역량이 모든 면에서 역량이 성숙해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개발사업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닐진대, 현장에서 하는 일은 마치 어린이들을 촉성재배해서 잘 발육 을 잘 시켜서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몸집만 어른이 되는 그 자체가 삶의 목표인 사람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키가 크고 몸무게가 불어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겠지요. 그런 육체적 성장에 발맞추어 타인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자기 가정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줄 알고, 소속된 사회의 일의 옳고 그름을 나름의 가치기준을 가지고 논할 수 있고, 삶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지혜롭게 조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전자를 ‘성장’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후자는 ‘성숙’ 이라고 제가 일단 불러봅니다.

 

제가 서비스 전달(service delivery) 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지난 세월 동안 대부분 제가 관여했던 개발활동은 ‘성장’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겁니다. 필요한 일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한편 그것은 정부가 수행해야 하는 일을 보조하거나 대리 수행하는 것입니다. 르완다에서 가만 보니 NGO들이 하는 일들도 이 지역 공무원들의 업무 성과로 상부에 보고하더군요. 아무튼 그런 종류의 일감은 남들 눈에도 잘 뜨이고, 사진 찍어 잘 보이고, 보고하기도 좋고, 주민 만족도도 대정부 효과도 즉각적입니다.

 

반면, 주민조직(community organizing), 지역개발(/ community development)은 ‘성숙’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더욱 중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필요성이 쉽게 인지되지 않고 무엇보다 안팎으로 저항이 생기기 쉽습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화한다는 것은 그 과정 자체에서 시민의식이 자라게 되는 것이고, 이는 저개발국가에서 또는 억압적인 정치문화를 가진 나라일수록 성장통을 겪게 되는 어려운 일입니다. 시민사회는 주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태생부터가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를 자각하는, 예는 예라고 아니오는 아니오라고 하는 개개인의 의지가 있어야만 형성 가능한 것이니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가 이제서야 저한테 크게 다가온 이유는, 그 강의를 듣기 바로 직전에 제가 우연찮게 읽은 글의 내용이 이것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 한국을 위해 다른 나라사람들이 어떤 희생과 봉사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개발과 시민사회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상훈은?=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연구위원으로, 우간다·아프가니스탄·르완다에서 국제구호기금 지역(보급)책임자를 맡으며 20년 가까이 생활했다. 현재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아내는 르완다 현지에서 유치원을 개원, 교육계몽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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