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한 자 아부에 당한 자, 두 나라 대통령

  • 등록 2025.11.14 13:45:50
크게보기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헤이트풀8 (9)
트럼프에게 금관 선물한 대통령
아부의 기술 덕에 관세협상 선방
국익 지켜냈다면 할 몫 한 것…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커트 러셀 분)가 1만 달러 현상금이 걸린 데이지를 붙잡아 베테랑 마부가 모는 호화로운 육두마차를 전세 내어 황량한 와이오밍주 벌판에 몰아치는 눈폭풍을 뚫고 달리고 있다. 그 정도면 제아무리 사나운 눈폭풍도 두렵지 않다. 루스는 안락한 마차 좌석에서 느긋하게 설원(雪原)을 감상한다. 그러나 마차는커녕 늙어빠진 말도 없는 ‘뚜벅이’들에게 눈폭풍은 곧 죽음이다.

 

 

루스의 마차 앞에 ‘뚜벅이’ 여행자 워런 소령(새무얼 잭슨 분)이 기차선로에 서서 기차를 막아서듯 루스의 마차를 세우고 동승을 구걸한다. 현상금 사냥꾼 루스가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일 리는 없다. 보통사람일 뿐이다. 본래 모든 경전(經典)들은 보통사람들은 아마도 영원히 지킬 수 없는 덕목들만을 골라서 요구한다. 

그래서 모든 경전들은 수천년이 흘러도 여전히 용도 폐기되지 않는다. 당연히 루스 역시 곤경에 처한 ‘흑인 이웃’을 적극적으로 구해 줄 마음이 있을 리 없다. 루스는 이 의심스러운 ‘설원의 뚜벅이’에게 대포만 한 장총을 겨누고 길을 비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쏘아버릴 기세다.

마차를 얻어 타야만 하는 워런 소령은 ‘아부 모드’로 일관한다. 시종 ‘모나리자의 미소’와도 같은 애매한 미소를 머금고 ‘할말하않’의 자세로 온갖 모욕과 수모를 감내한다. 두손을 머리끝까지 들라면 들고, 총기 압수에도 순순히 응한다. 서부개척시대에 총잡이가 누군가에게 총을 압수당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다는 의미다. 

요즘으로 치면 중학생이 스마트폰을 압수당하는 것만큼이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워런 소령은 그야말로 한신(韓信) 장군의 ‘과하지욕(跨下之辱,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기)’ 같은 수모를 견디면서 끝까지 아부 모드를 유지하고서야 루스의 마차를 얻어 탄다. 그렇게 눈폭풍 속에서 얼어 죽을 위기를 넘긴다. 아부의 성공이다.

나폴레옹은 “아부에 능한 사람은 모략과 비방에도 능한 인간 말종”이라고 아부꾼을 특히 경계하고 모든 참모에게도 자신에게 아부하는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며칠 후 한 참모가 찾아와 ‘각하께 아부하지 말라는 그 말씀이 너무나 멋지고 존경스러웠다’는 ‘목숨 건 아부’를 하자 어쩔 수 없이 기뻐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아부에 넘어가지 않기란 그만큼 힘들다.

‘의심 많은 독재자’ 스탈린도 독재자에게 당연히 따라붙는 아부꾼들을 경계하기 위해 자신을 향한 모든 찬사를 금지하는 서슬 퍼런 명령을 내렸다고 하는데 김일성은 스탈린의 아부 경계령을 무력화할 줄 알았던 탁월한 아부꾼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1950년 7월 스탈린의 도움이 절실했던 시점에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는 “스탈린 동지, 부디 저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금부터 아부를 하겠다고 ‘까놓고’ 아부한다. 대단히 담대한 아부의 ‘스킬’이다. 스탈린 역시 김일성의 아부에 혹해서 탱크 1대라도 더 보내주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역사상 최고의 아부는 ‘역사의 아버지’라는 헤로도토스(HerodotosㆍBC 484~425년)의 그 유명한 역사서 「역사(Historiae)」에 기록돼 있는 크로이소스(Croesus)의 아부일 듯하다. 잔혹한 광기의 ‘개차반’ 왕으로 유명한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Cambyses II)가 신하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아버지인 그 위대한 키루스(Kirus) 대왕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키루스 대왕도 이루지 못했던 이집트 정복까지 이룬 당신이 당연히 더 위대하다”고 아부 릴레이를 펼친다. 이제 크로이소스(Croesus)만 남았다. 크로이소스는 본래 페르시아와 서아시아 패권을 다투던 강성한 리디아(Lydiaㆍ현재 튀르키에)의 왕이었으나, 키루스 대왕이 이끄는 페르시아와의 최후의 결전에서 패해 화형에 처해지기 직전 뛰어난 기지와 현란한 말재주로 살아남아 키루스 대왕의 측근이 된 인물이다. 

그런데 그 크로이소스는 용감하게도 고개를 젓는다. 궁정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는다. 크로이소스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위대한 키루스 대왕의 아들이시여. 저는 폐하가 절대로 키루스 대왕만큼 위대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키루스 대왕이 남기신 것과 같은 위대한 아들을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부도 이쯤 되면 예술의 경지다. 이후 크로이소스가 캄비세스 왕의 총애를 독차지했다고 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 대통령이 ‘야비하게(unmanly)’ 번쩍이는 황금 무궁화대훈장과 신라금관 선물로 트럼프의 혼을 빼놓는 ‘아부의 기술(Art of Flattery)’을 구사해서 관세협상에서 비교적 선방할 수 있었다고 미국 언론들이 못마땅해하는 모양이다. ‘K-팝’을 잇는 ‘K-Flattery(아부)’라는 말을 만들 기세다.

미국 누리꾼의 댓글들을 보니 우리 대통령의 아부를 가리켜 ‘Trump ass-kissing’이라는 표현은 점잖은 축에 속하고, 아예 ‘brown-nosing’이라고까지 조롱한다. 엉덩이에 ‘사생결단하고’ 키스하다보면 왜 코가 갈색이 되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는 저질스러운 표현이다.

그러나 미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들도 아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키신저 전기(Kissinger: A Biographyㆍ1992년)」를 집필한 ‘타임(Time)’지 편집장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외교의 천재라는 키신저가 구사했던 ‘아부의 기술’을 소개한다.
 

 

냉전시기 소련과 중국의 균열을 이용해 미중수교를 이끌어내기 위해 1971년 극비리에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키신저는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를 만나 다음과 같은 어마어마한 아부를 떨었다고 기록한다.

“위대한 중국의 찬란한 역사와 높은 문화에 비교한다면 미국은 신흥 개발도상국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중국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키신저야말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엉덩이를 brown nosing한 인물이다. 외교의 천재는 아부의 천재였다. 키신저의 아부가 제대로 통했는지 그 이듬해 닉슨의 중국 방문과 함께 국교정상화가 이뤄졌다. 

마오쩌둥에게 아부의 기술을 걸어 목적을 달성한 키신저가 ‘외교의 천재’라면, 우리 대통령이 캄비세스 2세와 같은 미치광이 ‘미국 황제’의 비위를 맞춰주고 혹시 국익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냈다면 그 역시 외교에서 할 몫은 했다고 평가해도 무방하겠다. 아부란 그 기술을 사용한 사람을 조롱할 일이 아니라 그 뻔한 기술에 넘어간 사람을 조롱할 일인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노형5길 28(엘리시아아파트 상가빌딩 6층) | 전화 : 064)748-3883 | 팩스 : 064)748-3882 사업자등록번호 : 616-81-88659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제주 아-01032 | 등록년월일 : 2011.9.16 | ISSN : 2636-0071 제호 : 제이누리 2011년 11월2일 창간 | 발행/편집인 : 양성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성철 본지는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1 제이앤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nuri@j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