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이트풀8 속 스미더스 장군(브루스 던 분). 남군 출신인 그가 노구를 이끌고 아무 연고도 없는 황량한 와이오밍주(州)를 헤매다가 눈폭풍을 피해 ‘미니의 잡화점’을 찾아든 이유는 단 한가지밖에 없다. 그의 외아들이 남북전쟁 중에 ‘행불’이 됐는데, 아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와이오밍주라는 풍문 때문이었다.
스미더스 장군은 흑인 몰살로 악명이 높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그토록 애틋하다. 선이나 악은 대개 보편적이지 않고 선택적이다. 나에게 천사 같은 ‘엄마’도 누군가에게는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
이같은 ‘선택적 사랑’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갈등도 느끼지 못하는 스미더스 장군에게 적개심 가득한 북군 출신 흑인 장교 워런 소령(새뮤얼 잭슨 분)이 점잖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스미더스 장군님 아니신가? 실종된 아들을 찾아 여기까지 오신 건가?” 스미더스 장군은 적군인 북군 출신에 흑인인 워런 소령을 투명인간처럼 무시한다.
그런 스미더스 장군에게 워런 소령은 능글능글하게 ‘필살기’를 날린다. “사실… 당신 아들이 죽는 모습을 내가 직접 봤다”고 떡밥을 던진다. 당연히 그제야 스미더스 장군은 염치 불고하고 질문을 쏟아낸다. “정말이냐? 어디서? 어떻게?”
워런 소령이 답한다. “흑인들을 죽이고 다니는 그놈을 내가 이 근방에서 잡아서… 발가벗겨 눈밭을 걷게 했다… 담요 한장만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더라….” 아들의 끔찍한 최후를 전해 듣는 스미더스 장군이 사색이 돼간다.
이미 사색이 된 스미더스 장군에게 워런 소령이 결정타를 날린다. 담요를 주는 조건으로 ‘남색(男色)’ 행위를 요구했더니 아들이 자신에게 남색 행위까지 해줬다, 그럼에도 담요를 주지 않고 쏴 죽여 버렸다고 껄껄대고 웃는다.
마침내 스미더스 장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총을 집어들지만, 장군이라고 총을 잘 쏘는 것은 아니다. 미처 워런 소령을 겨냥하기도 전에 워런 소령의 총에 맞아 절명한다. 그 수모와 고통을 견디느니 차라리 그렇게 죽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워런 소령이 스미더스 장군에게 쏟아낸 말들은 스미더스 장군을 ‘갈구기’ 위해 지어낸 ‘선동용 괴담’에 가깝다. 그러나 그 주변에 모여 그 괴담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반신반의’에 가깝다. 황당무계한 괴담을 접하는 많은 사람의 반응이 대개 그러하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ㆍ1934~1996년)은 우리시대의 ‘괴담 감별사’로 불릴 만한 인물이다. 세이건은 「악령에 사로잡힌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서 점성술, 외계인과 UFO를 둘러싼 음모론, 심령과학, 초능력 등 괴담 수준의 비과학적인 모든 낭설과 그에 솔깃해하는 생각 없는 대중을 비판한다.
세이건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괴담에 솔깃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사물을 회의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는 악랄한 사기꾼과 허풍쟁이, 헛소리꾼들을 근절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요즘은 ‘가짜 뉴스’도 여기에 해당하겠다.
흑인 워런 소령이 스미더스 장군의 아들을 눈밭에서 발가벗겨 남색 행위까지 시키고 죽여 버렸다는 증거는 없다. 워런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워런 소령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으니 딱한 일이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쪽과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충돌할 경우 그 입증 책임은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쪽에 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외계인을 데려와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외계인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무한대의 우주 어디에도 외계인이 없다는 증거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보니 증거 없는 온갖 황당한 헛소리는 쉽게 박멸되지 않는다.
논리학의 대가였던 양대 철학자 버틀랜드 러셀(Bertland Russel)과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부不존재의 증명’ 논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증명’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하루는 제자이기도 한 비트겐슈타인이 느닷없이 케임브리지 대학 러셀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와 “교수님 연구실에 지금 코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보라”고 했다. 러셀은 결국 논리적 증명에 실패해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비트겐슈타인에게 망신당하고 그 괴로운 심정을 연인에게 토로한 편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만큼 부존재의 증명은 어렵다.
칼 세이건과 동시대를 살았던 보스턴 대학의 또 다른 유명한 천문학자 마이클 파파기아니스(Papagiannisㆍ1932~1998년)는 세이건과는 반대로 대표적인 UFO 신봉자였다. UFO 존재의 증거를 제시하라는 UFO 불신자들의 공격에 파파기아니스는 ‘UFO 증거의 부재(absence)가 곧 UFO 부재(absence)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이후 종종 근거 없는 괴담을 옹호하는 방어논리를 ‘파파기아니스의 법칙(Papagiannis’ Law)’이라고 부르게 됐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 ‘5ㆍ18 북한군 개입설’ ‘부정선거 중국 개입설’ ‘대법원장의 이재명 죽이기 음모설’ 등등 우리사회는 칼 세이건의 책 제목처럼 ‘괴담이라는 악령에 사로잡힌 사회’인 듯 온갖 정치무당들이 빚어내는 온갖 괴담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괴담을 앞세운 선전선동의 발신지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또 어느 정치무당은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무려 1조원의 비자금을 숨겨놓고 있으며 혼외자도 있다는 ‘설(說)’을 푼다. 최근의 주가 상승도 중국의 개입이라고 선동한다. 모두 증거는 없지만 파파기아니스의 법칙이 기승을 부린다.
“선동은 단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백 수천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더구나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선전선동을 꼬집은 이 ‘불후의 명언’은 나치 선전선동부 장관을 지냈던 ‘세기의 선전선동가’ 괴벨스(Goebbels)의 어록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은 괴벨스가 영국을 비판하면서 ‘후안무치한 선전선동과 괴담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영국문화 그 자체’라고 치를 떨면서 억울해했던 글이다. 희대의 ‘선동꾼’이 영국의 ‘선동질’에 억울해했다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네 선동꾼들도 상대의 선동질에 서로 삿대질을 해대니 괴벨스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