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헤이트풀8’이란 제목답게 영화 속에 혐오와 증오에 사로잡힌 다양한 ‘빌런’의 끔찍한 작태들을 특유의 과도한 폭력성으로 포장해 솜씨 있게 버무려낸다. 남북전쟁(1861~1865년)이 끝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첨예한 남북의 상호혐오를 스마이더 장군의 회색 군복과 워런 소령의 청색 군복으로 시각화해 그려낸다.
미국 남북전쟁의 별칭은 ‘Blue and Gray War’이기도 했다. 서로의 눈에 청색이나 회색의 ‘시각 신호’가 잡히는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적개심이 불타오르고 박멸 의지가 충만해진다.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빨간 넥타이와 파란 넥타이의 시각 신호쯤 되겠다.
영화 속에서 회색은 청색만 보면 발작하고 청색은 회색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 ‘헤이트풀(끔찍)’하다. 남과 북의 정치적 증오 위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스캔들’이라고 할 수 있는 흑과 백의 인종적 혐오까지 덧씌워져 ‘미니의 잡화점’에서는 온갖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남군의 백인 스마이더 장군은 흑인 워런 소령에게 “네가 흑인이라는 것만 알았으면 더 이상 너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없다”고 자못 진지하게 말한다. 대개의 혐오와 증오는 그처럼 단순하고 무지성적이다. 우리도 누군가가 우파든 좌파든 확인되면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은 없어지고, 무조건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쓰레기’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영화에서 다루는 이념ㆍ정치적 증오나 인종ㆍ민족적 혐오와 증오라는 주제는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하다. 타란티노 감독은 ‘증오와 혐오’에 사로잡힌 전통적이고 진부한 ‘빌런’들 외에 조금은 새로운 빌런을 숨은그림찾기처럼 숨겨놓는다. 어쩌면 가장 저질스러운 빌런일지도 모르겠다.
허허벌판을 오가는 온갖 거친 사내들을 접객하는 미니의 잡화점 주인은 미니(Minie)라는 튼실한 흑인여자다. 남편 ‘데이브’는 사람 좋아 보이는 백인이다. 데이브는 사지육신 멀쩡하지만 하는 일이라곤 손님들과 체스 두면서 잡담하는 것밖에 없다. 미니는 모든 손님을 친구처럼 따뜻하게 대한다.
자신에게 빌붙어 무위도식하는 남편 데이브에게까지 상냥하다. 얼핏 온 세상 ‘어둠의 자식’들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영화 속에서 유일한 ‘빛의 자식’처럼 보인다. 미니는 흑인이면서 백인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흑백을 가리지 않고 친절하다. 그러나 미니가 인종차별을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면 오해다. 미니야말로 어쩌면 가장 저질스러운 인종주의자임이 밝혀진다.
미니가 잡화점 문 앞에 내건 경고문은 ‘개와 멕시칸은 출입금지’다. “개와 ○○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은 인종차별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문구다. 이 야만적인 문구는 인도를 점령하고 식당에 “개와 인도인은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고 중국 조차지租借地에서는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고 써 붙였던 ‘영국 신사’들의 발명품이다.
백인에게 지겹도록 수모를 당했을 흑인여성 미니가 자신이 잡화점 주인이 돼 ‘개와 백인은 출입금지’ 팻말을 내걸었다면 이해하겠는데, 엉뚱하게도 ‘개와 멕시칸 출입금지’ 팻말을 내건다. 1872년 서부개척시대 와이오밍주에서 멕시칸은 찾아보기 힘든 소수인종이었다.
미니는 백인들에게 당한 수모의 분노를 엉뚱하게 ‘힘없는’ 멕시칸을 향해 쏟아낸다. 1992년 LA 흑인폭동 당시 백인들을 공격했어야 할 흑인들이 엉뚱하게도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인 만만한 ‘한인타운’에 몰려가 불 지르고 약탈하고 난동을 부린 것만큼이나 황당한 팻말이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ㆍ1914~1996년)라는 일본 정치학자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소위 일본의 ‘개념 정치학자’다. 일본의 극우와 군국주의를 통렬히 비판한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라는 논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 그리고 가혹한 식민통치를 ‘서구에게 당한 수모를 이웃의 약자들에게 퍼부어버리는 억압(抑壓)의 이양(移讓)을 통해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였다고 분석한다. 쉽게 말하면 ‘내리갈굼’쯤 되겠다.
내리갈굼 현상을 분석한 것은 마루야마가 최초는 아니다. 이미 19세기에 엥겔스(Engels)는 ‘노동자들이 고용주에 저항하는 것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끼리 투쟁하는 게 고용주에게는 훨씬 바람직하고, 노동자들도 고용주을 공격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약한 쪽을 공격해서 살아남는’ 슬픈 현실을 「영국 노동계급의 현실」에서 밝힌다.
국적은 프랑스이지만 알제리 출신의 흑인이면서 ‘이방인’이었던 현대식민주의 비판철학의 대부였던 프란츠 파농(Franz Fanonㆍ1925~1961년)은 이 현상을 ‘수평 폭력(Horizontal Violence)’이라는 이론으로 정립했다.「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같이 부끄러워한다.
“인간에게는 강자로부터 수직폭력을 당할수록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려는 수평폭력 심리가 있다.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에게 억압을 당하면서 쌓인 분노와 증오를 가해자인 상위계층을 공격함을 통해 풀려고 하지 못하고, 자신과 같은 하위계층이나 더 취약한 계층을 공격해 풀려고 한다.”
아마 그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가 되기도 하고 ‘갑甲과의 전쟁’을 해야 할 상황에서 ‘을(乙)들끼리의 전쟁’이 벌어지고 하는 모양이다. 주인에게 억울하게 갈굼질당한 종놈이 애먼 동네 강아지 옆구리를 걷어차고, 중대장이 소대장을 불러 재떨이 집어던지면서 소리 지르면 소대장은 느닷없이 ‘빠따 들고’ 내무반에 들이닥친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공장 지어 주러 간 우리 기술자 300여명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흉악범처럼 손에 수갑 채우고 발에 족쇄까지 채워서 끌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정부는 미국에 변변한 항의조차 못하고, 그 많은 시민단체도 그 흔한 광화문 시위조차 없다. 대신 명동에서 애먼 중국 관광객들에게 “짱깨 꺼져라”는 반중(反中) 혐오시위만 요란하다.
미니가 내건 ‘개와 멕시칸 출입금지’ 팻말처럼 그 맥락이 난해하다. LA 폭동 때 흑인들이 백인들의 부촌 베벌리힐스는 감히 쳐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애먼 ‘한인타운’에 몰려가 난동을 피우던 흑인들이나 뺨은 미국에게 호되게 맞고 명동에 몰려가 난데없이 “짱개 꺼져라”를 외쳐대는 사람들이나 흔히 하는 말로 ‘되게 없어 보인다.’ 영화 속 미니(Minie)와 같은 가장 비루한 ‘빌런’들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