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범진의 '여명'(2017년) 청정한 자연환경과 빼어난 풍광으로 유명한 추자도가 예술섬으로 다시 태어난다. 제주도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아름다운 맵과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19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사)문화조형연구소와 함께 준비한 '추자섬 예술기지 프로젝트'가 선정됐다고 24일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추자섬 예술기지 프로젝트'사업은 2년 연속 지원되는 사업으로 올해 사업비 2억6000만원이 투입된다. '잠시 멈추자, 춤을 추자'가 슬로건인 '추자섬 예술기지 프로젝트'사업은 추자면 영흥리 전 해군기지 건물을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고 신양리 수협창고를 활용한 후풍갤러리에는 주민공유 공간 ‘예술기지’로 만들어 상.하 추자도 곳곳에 예술적인 조형작품들이 설치된다. 제주도는 대서리 등대산 공원, 신양리 후풍갤러리 앞, 신양향 일원, 묵리 마을에 설치될 조형 작품들도 기반조사를 통해 제작을 위한 실행계획에 돌입한다. ▲ 김삼
▲ 이순신의 신상필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순신은 상을 줄 때도 원칙과 믿음을 지켰지만, 벌을 줄 때도 추상같이 엄격했습니다. 마치 신상필벌의 표본 같습니다. 그의 군령은 서릿발 같았고, 훈련은 실전 같았습니다. 그는 부하의 체력과 사기를 고려해 체계적으로 수군을 운용했습니다. 이순신의 신상필벌은 항상 공평무사했습니다. 지위나 인맥이 끼어 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사상자와 부상자에겐 충분한 예우를 다했습니다. 이순신이 죄를 지은 부하를 처벌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냉정했습니다. 그는 백성(民)과 군(軍)을 엄격하게 구분했습니다. 군 혹은 관이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그가 가장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두가지는 군기에 관한 것과 백성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도망병에게 엄격했습니다. 6일 정축 맑음. … 방답의 병선 군관과 색리가 병선을 수리하지 않아 곤장을 쳤다. 우후와 가수도 역시 단속하지 않아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니 해괴하기 짝이 없다. 자기 한 몸 살찌울 일만 하고 이와 같이 돌보지 않으니, 앞일도 짐작할 만하다. 토병 박몽세는 석수랍시고 선생원에서 쇠사슬 박
▲ 이순신은 열심히 싸운 부하의 전공을 꼼꼼히 챙겼다. [사진=연합뉴스] 이번엔 주제를 돌려 신상필벌의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공신을 정할 때, 조선 조정은 크게 선무공신(宣武功臣)과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나눠 포상했습니다. 호성공신은 선조의 피난길을 따라 다니며 고생한 측근입니다. 그에 비해 선무공신은 야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입니다. 선무공신 18명의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1등 공신 : 이순신, 권율, 원균 2등 공신 : 김시민, 신점, 군응수, 이정복, 이억기 3등 공신 : 정기원, 권협, 유산원, 고언백, 이광악, 조경, 권준, 이순신, 기효근, 이운룡 이중에서 이순신과 관련된 공신은 18명 중에 7명이나 됩니다. 3분의 1이 넘는 셈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이순신이 옥포해전 후에 임금에게 올린 장계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좌부장인 낙안 군수 신호는 왜적의 큰 배 1척을 쳐부수고 머리 하나를 벴는데 배 안에 있던 칼, 갑옷, 의관 등은 모두 왜장의 물건인 듯 했습니다. 우부장인 보성 군수 김득광은 왜적의 큰 배 1척을 쳐부수고…(중략) - 옥포파왜병장 이
▲ 왜군은 임진왜란 당시 군수 물자를 제대로 조달받지 못했다. 사진은 울산 서생포왜성. [사진=뉴시스] 조선 원정을 시작하기 전, 일본 수뇌부는 조선 육군과 명나라 육군과의 전투에만 신경 썼습니다. 일본 수군의 주임무는 전투보다는 군수 물자의 수송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바다를 통한 물자 수송이 불가능해지면 어떻게 할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 수뇌부는 바다에서 이렇게 고전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7년 내내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할 거라고, 누가 감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일본은 겨우 마련된 대마도~부산 항로를 통해 군수 물자를 수송해야 했습니다. 물자와 자원이 부족한 조선 수군이 그 항로까지 막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부산까지라도 수송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충청도로, 경기도로, 강원도까지 운반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먼저 육로로 수송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비용과 물적 투자가 너무 컸습니다. 거기에 조선 의병의 지속적인 게릴라 공격에 방해를 받았
▲ 이순신은 느린 평저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했다. [사진=뉴시스] 이순신 장군은 배의 속도가 느려지자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보완했습니다. 첫째, 정보의 질과 양을 늘렸습니다. 적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면 적이 접근하기 전에 전투를 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탐망선과 척후선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둘째, 노 한개에 붙는 격군의 수를 늘렸습니다. 노의 동력을 증가시켜 배의 속도를 올린 것입니다. 하나의 노에 네명이 붙는 것과 다섯명이 붙는 것은 분명 다를 테니까요. 셋째, 평저선인 판옥선과 거북선의 회전력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전술이 바로 학익진입니다. 학익진은 바다에서 포위섬멸전을 하기 위한 최선의 진형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순신은 속도가 느리지만 회전력이 좋은 평저선의 특징을 살렸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것입니다. 판옥선은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었습니다. 평저선은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이지만, 회전반경이 0에 가깝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방향 전환을 하기 쉽습니다. 반면 첨저선은 제자리 회전이 불가능했습니다. 학익진의 포위 전
▲ 판옥선과 거북선은 등선육박 전술을 막기 위해 거조됐다. [사진=연합뉴스] 임진왜란 해전에서 왜군은 주로 등선육박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등선육박이란 적의 배로 건너가서 백병전을 하는 전술입니다. 100여년 지속된 내전으로 단련된 왜군들은 백병전에서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조총이라는 무기도 있었죠. 사실 등선육박이 왜군의 전유물이었던 건 아닙니다. 서구에서도 당시엔 등선육박이 기존 전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니뎁 주연의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에 나오는 해상전투 장면을 떠올려 볼까요? 이 영화에서도 선박 간 함포전이 등장하지만, 결국 등선육박 전술로 마무리됩니다. 흥미롭게도 이순신의 해전은 이런 등선육박 전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보조전략’에 불과했던 함포전을 중심으로 끌어올렸죠. 이순신은 근대적 함대전에 쓰이는 주요 전략을 수백년이나 먼저 사용했습니다. 이순신의 해전은 일시집중타법이 동원된 근대적인 함포전이었습니다. 이순신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
▲ 전남 여수시 오동도 잔디광장에 전시된 거북선. 전라좌수영 거북선 모형으로 국내산 삼나무로 제작한 것이다. [사진=여수시청] 이순신은 임진왜란 후반부로 갈수록 숫자에 더 집착했습니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져 물자 부족이 첨예한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속도의 극복 : 원거리 함포전과 거북선 어쨌거나 이순신은 일본 전함보다 느린 조선 전함의 속도를 극복하고, 일본 수군의 등선육박(登船肉薄) 전술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크고 단단한’ 조선 전함의 강점은 속도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조선 전함이 일본 전함보다 뛰어났다고만 알고 있는 이들에겐 이런 말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 실제 전투모습은 어땠을까요? 흥미롭게도 이순신이 남긴 기록으론 당시 해전의 양상을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해전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해전이라 할 만한 옥포해전을 살펴보겠습니다. … 그리하여 양쪽으로 에워싸고 대들면서 대포를 쏘고 화살을 쏘아대기를 마치 바람처럼 천둥처럼 하자, 적들도 조총과 화살을 쏘아대다가 기운이 다 떨어지자 배에 싣고 있던 물건
▲ 2018 제주 레저스포츠대회 철인3종 경기 모습. [제주시 제공] 제주시는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 제주해변공연장 등 도내 일원에서 제주시 주최, 제주시관광축제추진협의회 및 7개 종목별 단체 주관으로 '2019 제주레저스포츠 대축제'를 연다고 6일 밝혔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레저스포츠대축제는 레저스포츠를 즐기며 경기도 관람할 수 있는 축제다. ‘레저스포츠의 메카, 제주에서 느끼는 스릴과 감동’이 주제다. 이번 대축제는 기존 6개 종목에 드론을 신규종목으로 추가해 총 7개 종목으로 확대 운영된다. 각 종목별 국내.외 레저스포츠 동호인들이 참여해 다양한 기술을 보여준다. 또 참가 가족 및 관광객을 위한 참여.체험부스 운영, 플리마켓, 지역특산품 코너 등 주민소득 연계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오는 23일 오후 7시 제주해변공연장 특설무대에서 레저스포츠대축제 개막행사와 제8회 전국생활댄스경연대회를 시작으로 오는 23, 24일 이호테우해수욕장과 주변 해안도로에서 제20회 제주시장배 철인3종 경기가 있다.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에는 제주종합경기장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제7회 전국인라인
제주올레가 세계 트레일을 도보 여행자들과 함께 걸어보는 '제주올레 우정의 길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5일 밝혔다.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동화 속 풍경을 걷는 스위스올레 여행 프로그램을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진행한다. 제주올레는 2010년부터 세계 곳곳의 도보 여행길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홍보 마케팅을 진행하며 길을 통해 우정을 나누고 있다. 제주올레는 스위스를 비롯해 영국, 캐나다, 터키, 대만 등 세계 9개국 10개 트레일과 우정의 길을 맺었다. 우정의 길이 있는 대만, 터키, 그리스, 서호주, 영국, 캐나다 여행 프로그램 시리즈도 준비 중에 있다. 이번 스위스올레 여행 프로그램에는 올레길에서 자연이 주는 선물을 경험한 배우 류승룡과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함께 걷는다. 제주올레 10코스와 우정의 길을 맺은 스위스의 라보 와인루트는 걷기 여행 마니아 사이에서도 명품 하이킹 루트로 손꼽힌다. 생사포랭에서 뤼트리까지 포도밭이 테라스처럼 펼쳐진 11㎞의 코스로 포도농장 곳곳의 아기자기한 마을과 도시, 오르막 길과 내리막 길이 연이어 펼쳐져 있다. 제주올레 6코스와 우정의 길을 맺은
▲ 이순신은 병사들이 최대한 굶지 않도록 군대를 운용했다. [사진=연합뉴스] 농군을 동원할 길이 없으니 백성들에게 나누어 병작하게 하고 관에서는 그 반만 거두어들여도 군량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돌산도에 있는 국가 소유의 둔전은 묵은 지 벌써 오래된 곳인데, 그곳을 경작해 군량에 보태야겠다는 뜻으로 장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20섬의 종자를 뿌릴 만한 면적의 본영 소유 둔전에 늙은 군사들을 뽑아 경작시켜서 토질을 시험해 봤더니, 수확한 것이 정조(正租)로 5백 섬이나 됐습니다. 앞으로 종자로 쓰려고 본영 성내 순천 창고에 들여놨습니다. -[청설둔전장 1593. 윤 11.17] 앞의 글은 둔전 설치를 청하는 장계(狀啓)입니다. 장계는 조선시대에 지방에 파견된 벼슬아치가 조정과 왕에 바치는 보고서입니다. 이순신이 열악함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것들도 이순신의 지휘 하에서는 모두 활용 가능한 자원이 됐습니다.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 것입니다. 임진왜란 시기, 많은 백성이 극심한 기아에 시달렸습니다. 부모가 굶어 죽은 자식을 잡아먹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 이순신은 병참의 중요성을 알기에 군수물자를 확보하고자 애썼다. [사진=연합뉴스] 이순신은 물길과 뱃길에 밝은 어영담을 중용했습니다. 정박할 필요가 있지만 지리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주변에 탐망선을 깔아놓고 배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순신이 그만큼 지형 정보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겁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보고하기를’ ‘…들으니’ ‘…고 했습니다’ ‘…를 상세히 물으니’ 등입니다. 이순신은 정보에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순신은 병참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군은 병참으로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순신 역시 병참을 중시했습니다.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조정의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연해안 고을의 군사·군량·병기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해주시기를 청하는 장계청연해군병량기물령체이장(請緣海軍兵糧機勿令替移狀), 군량을 조처해 주시기를 청하는 장계청조획군량장(請措獲軍糧狀) 등을 비롯한 장계들은
▲ 이순신은 정보를 중시한 덕분에 연전연승을 거뒀다. [사진=연합뉴스] 이순신이 적을 붙잡아 효수(梟首)한 일이 많았던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하들에게 전투 시에 적의 머리를 베는 것보다 적선을 깨뜨리는 데 집중하라고 당부했던 지휘관이었습니다. 당시 적의 수급(首級), 이를테면 머리는 전공을 평가하는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의 머리를 베는 데만 골몰하는 원균을 비웃기도 하고, 자신이 확보한 수급을 중국 장수들에게 양보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밝힌 대로 이순신은 침략전이 아니라 방어전의 영웅이었습니다. 백성과 인명을 중시했으며,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거나 부상당한 사람을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예우했습니다. 이런 이순신이 성웅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성웅이 될 수 있을까요?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조정에 올리는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이순신의 장계를 살펴봅시다. 탐색을 보냈던 전선들이 곧 바다 어귀에서 배를 돌려 나오면서 신기전을 쏘아 왜적이 있으니 속히 오라는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당포파왜병장] 9일에는 가덕에서 안골포로 향해 가는데, “안골포에 왜선 40여척이 정박해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