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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고양부 서열화 논쟁 소송, 원고(양씨) 각하
"법률상 이익 없다" ... 역사적 고증과 화해 다시 과제로

 

 

 

 

50여년 이어온 양씨와 고씨 두 종문간의 신경전이 일단 법의 잣대로 마무리됐다. 소송으로 비화된 신경전이 결국 법정의 판결을 얻었지만 갈등의 여지는 잔존했다.

 

 

소송을 제기한 양씨 중앙종친회 측에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각하. 소송을 제기한 양씨종친회가 이사회의 결의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얻을 법률상 이익이 없고 원고측 주장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유석동 부장판사)는 24일 양씨중앙종친회가 제주도와 재단법인 고양부 삼성사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문제의 연원은 옛 기록에 근거한 재단명칭에 있다. ‘고․양․부’의 재단 성씨 순서가 전국 50만명의 양씨 중앙종친회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를 기록한 문헌마다 서로 고,양,부 삼성의 배열을 달리해 이미 문제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삼성사재단의 원래 명칭은 '삼성시조(始祖)제사재단'이었다. 1962년 12월 10일 삼성시조제사재단에서 현재의 '고·양·부 삼성사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삼성사재단은 50년이 지나 지난해 4월 6일 이사회를 열고 변경된 명칭을 추인(과거로 소급해 사실을 인정함)했다.

 

삼성사재단은 지난해 4월 6일 재단명칭을 추인하는 과정에서 3성의 순서(고.양.부)를 입증하기 위해 '영주지'와 '탐라지'를 근거로 제시했다. '탐라지'와 '영주지'에는 ‘고양부'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사재단은 이를 근거로 현재 재단 명칭이 '고.양.부 삼성사재단'으로 등기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증서에 '양고부'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입장이다. "한국기록원의 인증서에 양․고․부 순서로 표기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인증 취소도 결의했다.

 

 

 

 

 

한국기록원의 삼성혈 인증서에는 ‘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의 삼성혈(三姓穴)은 BC2373년에 양·고·부의 삼을나 삼신인(三神人)이 탄생(誕生)한 삼개(三個)의 구멍(穴)’으로 명시돼 있다. 한국기록원이 작성한 인증서의 기초자료인 삼국유사, 동국통감, 고려사, 탐라기년에 따르면 삼성(양.고.부)은 탄생연도와 창성연도가 BC 2373년이라고 명시돼 있다. 탐라 개국 때 양을라, 고을라, 부을라 세 신인이 서로 활을 겨눠 화살이 떨어진 일도, 이도, 삼도 지역을 터전으로 잡았다는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씨 종문이 발끈했다. 양씨 중앙종친회는 삼성사재단이 1962년 12월 재단 명칭을 무단으로 변경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난해 4월 이를 추인한 삼성사재단 이사회 결의를 한 것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양씨 중앙종친회는 "삼성사는 '삼성시조제사재단'이라는 명칭을 44만명의 고씨들 가운데 약 4만여명의 제주 고씨들이 주도해 1962년 12월 10일 '재단법인 고.양.부 삼성사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양씨 종친회의 주장은 이에 따라 현재 '고.양.부 삼성사재단'을 원래 명칭인 '재단법인 삼성시조제사재단'으로 원상복구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양씨 중앙종친회는 지난해 8월 제주도와 재단을 상대로 이사회 결의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취지는 ‘고양부 삼성사재단’의 명칭에서 성씨를 빼고 ‘삼성시조제사재단’으로 원상복구하자는 내용이다.

 

재판과정서 법원은 양측의 합의를 요구했으나 재단은 “이제 와서 역사적 논쟁을 거론하는 것은 잘못이다.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오히려 양씨종친회”라고 맞받았다.

 

재판부는 2차 공판에서도 “굳이 고·양·부 삼성사재단 명칭에서 고·양·부 또는 양·고·부 서열을 표기해야 하냐”며 원고와 피고의 합의를 당부했지만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고창실 삼성사재단 이사장은 “도민 모두 고·양·부 삼성사 재단으로 알고 있다. 50년간 이어진 역사를 바꾸면 혼란을 야기한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갑자기 문제를 제기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고씨 종문과 양씨 종문의 신경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조선조 숙종조인 17세기 시절에 '위패 개환(改換)사건'이란 이름으로 한차례 내전을 치렀다. 삼성사에 모신 제단 위패의 자리 중 고씨의 시조인 고을나의 위패와 양씨의 시조인 양을나의 위패가 서로 맞바뀌는 일이 벌어져 '조정 상소전'으로 비화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시 제주목사가 진땀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현대사회인 5공화국 시절에도 사건은 벌어졌다. 양치종 전 제주도교육감 재임시절이던 1982년 <탐라사료지>를 펴내면서 탐라개국 시기를 묘사하며 '양,고,부 세 신인'이란 표현으로 서술되자 당시 국회부의장이던 고청 의원이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고씨 가문이 발끈, 집단반발하는 사태로 비화돼 책은 전량 회수, 폐기되는 수모를 겪었다.

 

1980년대 말에도 문제가 벌어졌다. 타계한 전직 언론인이자 향토사학자인 홍순만 전 제주문화원장이 제주시의 의뢰를 받아 편찬한 <탐라순력도> 해설서에서도 '양, 고, 부 삼성'의 순으로 서술돼 한동안 논란이 벌어졌고, 홍 원장이 핍박을 받기도 했다.

 

한편 고·양·부 삼성사재단은 제주의 시조신이 땅에서 솟아났다는 신화의 무대인 삼성혈(사적 134호)의 유지·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삼성혈을 관리하고 삼성혈 인근에 삼성회관을 건립, 회의실과 삼성의 도종친회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1981년부터 삼성(고·양·부) 후손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매년 3차에 걸쳐 진행되는 제사로는 4월 10일 춘기대제, 10월 10일 추기대제, 12월 10일 건시대제가 있다.

 

1921년 고·양·부 3성의 대표가 '삼성시조제사재단'이라는 법인체를 만들어, 그해 인가를 받았다. 1927년 특별 연고삼림(산림을 옛날부터 이용한 주민에게 넘겨주기 위해 1926년 제정공포)으로 삼성시조제사재단에서 제주도의 삼성사를 관리하게 됐다.

 

제주도의 인구통계와 성씨별 인구현황에 따르면 고·양·부 삼성은 제주도내에 각각 4만3천명, 3만6천명, 4천명의 종친을 거느리고 있다.

 

판결과 역사적 고증은 다시 별개의 문제로 선이 그어졌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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