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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세상풍경(7) ...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의 절망과 희망 이야기

하늘에서나 바다에서나 혹은 땅에서나, 중문관광단지를 바라보면 가장 시선을 끄는 건물이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다. 그래서 사람들은 ICC JEJU를 일컬어 중문관광단지의 랜드마크라 부른다.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처럼 말이다.

 

ICC JEJU에 아침 해가 떠오르면 건물은 온통 은빛으로 눈부시고, 저녁 빛이 스며들면 금빛으로 찬란해진다. 특히 이곳은 제주에서도 석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화가들의 스케치 장소다. 저녁 해가 송악산으로 기울면서 황혼이 오션뷰(드라마 '올인'의 이병헌 사무실로 유명해 결혼식장으로도 사랑받는 명소)에 스며들면 이곳의 모든 것들은 한꺼번에 황홀해진다. 마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광경처럼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이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 ICC JEJU의 빛을 등지고 있는 주상절리 주차장에 가보면 하루 장사를 마친 사람들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있다. 팔다 남은 물건들 위로 스산함이 얼룩지고 구부러진 등 위에 삶의 무게가 고단하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싶은 생각에 울컥한 슬픔이 솟구친다. 우리 동네, 대포동 사람들이다.

 

중문관광단지가 개발되기 전 이곳에는 대포동 경작지의 절반 가량이 펼쳐져 있었다. 그 이름 '너배기'(넓은 들판이란 뜻이리라)처럼 밭과 논이 비교적 평평해서 ‘문전옥답’이라 불러도 손색 없는 땅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약천사 주변의 '성귓네'를 따라서 붙어 있는 돌랭이(작은밭)들이다. 그러니, 대포동 사람들에게 너배기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일터요,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중문관광단지의 2단계 개발지역으로 확정되면서 모든 농토가 수용되고 말았다. 숙박과 위락 중심으로 조성된 1단계 지역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국제회의장, 향토시장, 쇼핑시설 등을 마련하려는 조치였다.

 

내 후배 선이네 밭은 '잉건이기정'(대포사람들이 주상절리를 부르는 명칭) 앞에 있었다. 5000평 전 재산에 관광단지 수용령이 떨어졌다. 한 순간에 세상살이가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1987년 6월 마을 주민들은 ‘서귀포시 대포동 내땅 지키기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8월의 작렬하는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포동 마을에서 한국관광공사(KTO) 제주지사까지 행진하며 ‘삶의 애끓는 사정’을 호소했다. 그러나 국제관광단지를 통한 지역개발과 국가발전의 명분 앞에서 개인들의 염려와 미래는 대단한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대포동의 너배기 위에 ICC JEJU가 우뚝 서게 되었다. 대신에 농토를 잃어버린 선이 어머니는 관광지가 돼버린 주상절리 그 땅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밀감을 팔았다. 낯 익은 동네 사람들과 우리 삼촌, 이모, 조카들도 그곳에서 난전을 벌인다. 허가받지 못한 장사이므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눈비를 피할 천막이라도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주차장 부지를 소유한 한국관광공사(KTO)는 주상절리 입장객에게도 주차료를 받는다.

 

그래도 ICC JEJU의 청사진이 펼쳐질 때는 보람이 있었다. 1996년 8월 1일 100만 제주인 여러분에게 "앞으로 제주를 국제회의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제회의시설, 즉 컨벤션시설을 우리 제주도민들의 손으로 건립해 냄으로써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담) 유치 노력 때 보여주셨던 도민통합의 정신을 완성시켜 주실 것을 제안한다"는 신구범 지사의 연설은, 마치 1987년 8월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열화와도 같았다. 제주도민들이 너도나도 적금을 들어서 도민주주로 참여하고, 육지와 일본에 나가 있는 재외도민들까지도 십시일반 힘을 보태어 주주가 되었다.

 

마침내 (주)제주컨벤션센터가 설립되어 범도민적으로 기공식을 할 때는 너배기 일대에 가슴 벅찬 감격과 기대가 물결쳤다. 대포 사람들은 제주관광이 나아갈 새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사실 ICC JEJU가 출범할 당시의 밑그림은 지금의 강원랜드를 능가할 만큼 원대하고 광범위했다. 컨벤션산업 그 자체가 관광의 종합 상황판이듯 아시아 최대의 국제회의 시설과 함께 컨벤션호텔, 대규모 쇼핑센터‧면세점‧카지노‧케이블카‧아울렛‧영상관 등 다양한 수익사업이 계획되었다. 더하여 노천 카페, 상설 문화공간 등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야외무대로 활용하고 밤에는 컨벤션센터의 벽을 이용한 레이저 쇼와 주상절리의 조명장치 등을 합작한 야간관광 명소가 구상되었다. 동시에 지역주민과 함께 상생해 나가기 위한 야시장도 추가됐다. 요컨대 오늘날 마카오의 베네시안 리조트나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같은 복합리조트(IR) 개념을 제주도는 이미 20년 전에 디자인했던 셈이다. 어쩌면 이 웅장한 청사진이 가져올 희망수익에 대한 기대감이 도민들의 투자열기를 후끈하게 더 달구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에 따른 구제금융(IMF) 여파로 도민 주주들에게 약속한 대부분의 수익사업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우근민 도정에 이르러선 공사도중 컨벤션시설 조차도 축소돼 아시아 최고를 겨냥한 5000석 규모의 탐라홀이 3500석으로 축소됐다. 그 바람에 지금은 부산 벡스코(BEXCO)에도 못 미치는 경쟁 열위가 되고 말았다. 결국 계속되는 적자는 자본을 잠식해 도민 주주들의 주가를 떨어뜨렸고, 제주관광의 희망으로 시작된 ICC JEJU는 제주도정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로 올해 2014년 8월 1일 창립 17주년을 맞이한 ICC JEJU의 기념식사를 보면 타지역 컨벤션센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행사가 소개되고 있다. ‘2013년부터 제주도내 70세 이상 주주들을 개별 방문한데 이어 2014년에는 도외지역 60세 이상 주주 대상 설명회를 개최했으며, 앞으로 제주도내 60세 이상 주주들을 개별 방문하는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컨벤션센터 본연의 업무인 국제행사 유치에만 발품을 팔아도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울 텐데 이 무슨 뚱딴지같은 행보란 말인가?

 

일반적인 기업경영에서는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우선이지만 ICC JEJU의 경영에서는 ‘주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눈물을 닦아드릴 방도가 없으니 그 소리라도 경청하는 게 급선무다.

 

 

2006년 5월 필자가 ICC JEJU의 사장이 되고나서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가정 형편이 너무나 어려우니 자기 소유 주식을 매입해 달라는 탄원이자 하소연이었다;

 

"허 사장님, 저는 1997년에 컨벤션 주식 300만원을 매입한 사람입니다. 1997년 퇴직 후 10년 가까이 무직으로 지내다 보니 가정형편이 말이 아닙니다. 그동안 고3인 딸이 24m 높이 건물에서 추락, 한라의료원에서 1년 이상 자비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지체장애가 되어 빚만 더욱 늘어가니, 부득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당시 주식 매입 시에는 컨벤션 주식을 사도록 대대적인 광고를 하였고, 저도 은행 직원의 권고로 매입을 하였습니다. 매입시 분위기는 매년마다 배당금은 물론 상장도 되어 호가로 매매가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근 10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네요. 사장님, 저는 3남매를 둔 가장으로서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으니 법정이자라도 쳐서 환매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장님, 꼭 회답주시고요. 2006년 5월 5일’

 

하지만 나는 이 주주의 눈물 어린 편지에 해결은 커녕 답신도 드리지 못하고 말았다. 주주담당 직원에게 "내가 이 주식을 대신 구입할 수 있도록 검토해 달라"고 의뢰하였으나 답변이 ‘절대 불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날아드는 주주 편지가 한 두 건도 아니고, 사장이 개인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준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환매청구가 쇄도해 들어올 터인데, 그것을 어찌 다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식환매를 요청하는 하소연과 항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들었다. 우선 개인주주들의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반대자인 법인주주, 대우조선해양을 찾아가 탄원하던 일이 아직도 가슴을 치는 회한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눈물 나게 가슴 아픈 것은 "1000만원을 출자했는데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아 1년 밖에 더 살 수가 없다"는 소식을 안고 찾아온 어느 주주의 눈물 겨운 사연이다. 시한부 생명이라 소유재산을 정리해야 하는데 컨벤션주식이 문제가 된다는 거였다. 그 딱한 사정 앞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는 CEO의 입장은 속수무책의 죄인에 불과했다. 고개를 조아리며 송구함을 표시하는 내게, 그분은 허허로운 웃음을 보이시며 우셨다. "먼 곳에서 오셨는데, 내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둘러도 보시고 가장 전망 좋은 자리에서 따뜻하게 밥 한 그릇 하시자"며 눈물을 외면했다.

 

다행히 컨벤션 3층의 델리지아는 제주음식을 소문나게 잘 하는 레스토랑이다. 식사를 마치고 시설을 둘러본 후, 그분은 ‘이 정도 시설이면 아-태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의를 이곳에서 하는 게 국가적으로도 훨씬 더 유익했을 것’이라며 "국제회의만큼은 반드시 아시아 최고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셨다.

 

그의 등 뒤에서 ICC JEJU는 은빛을 반사하며 하늘을 향해 맹세했다. 주주님의 유언을 반드시 지켜 내리라고!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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