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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의 '제주에 커피를 심다'(5) ··· 문익점이 갖고 올 커피?

600여년 전의 조선에서는 옷감이 귀했다. 양반들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었지만 백성들은 삼베가 전부였다. 삼베는 통풍이 잘 되어 여름에는 좋지만 겨울에는 추위를 막을 길이 없다. 삼베옷을 입고 추운 겨울에 흙집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기도 했다.

 

1363년에 문익점은 원나라에 갔다. 원나라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목화솜이었다.
“조선에도 목화가 있으면 백성들이 얼어 죽는 일은 없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든 목화씨를 가지고 가고 싶었다. 원나라 국경에서 검사를 피하기 위해 붓대공에 목화씨 몇 알을 넣어 가지고 온다. 문익점은 소중한 목화씨를 심어서 키울 자신이 없어서 가지고 온 씨의 반은 따뜻한 경상도 산천에서 농사를 짓는 장인 정찬익에게 씨를 나눈다.

 

문익점이 한양에서 심은 목화는 모두 죽고 정찬익이 심은 목화도 대부분이 죽고 한그루만 살아 남는다. 이 한 그루에서 씨를 받아서 삼년의 노력끝에 목화씨를 전파한다. 문익점의 손자 “래”는 실을 만드는 법을 발명했으며 손자 “명”은 면포를 찌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지고 올 때에 조선 땅에서 꼭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것이니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서 살려 보려고 했을 것이다.

 

문익점이 목화를 가지고 오고 그의 자손들이 목화솜과 목화옷을 만들어 냄으로써 백성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겨울에도 동사하는 사람이 적어지면서 겨울에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고 국경지방의 군사들에게도 목화로 만든 옷이 보급되면서 국방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가 만약 지금의 한국에 살았다면 무슨 씨를 가지고 왔을까? 나는 커피나무를 가지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커피를 좋아한다. 그러나 커피 생두는 100% 수입하고 있다. 커피가 열대식물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커피벨트(Coffee belt)라는 것이 있어서 북위 25도 이상의 나라에서는 커피나무가 자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네팔은 북위 28도이고 해발 1500m 이상의 눈 내리는 곳에서도 커피나무가 자란다. 커피가 추위에 약하다면 온실이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키울 수 있다.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궁하면 통한다.

 

 


 

 

김영한은?

 

=40살에 삼성전자 임원을 그만두고 경영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54살 되던 해에 국민대학교 교수가 되고, 64살 되던 해에 64권의 책을 썼다. 대표작으로는 <총각네 야채가게>, <스타벅스 감성마케팅>, <민들레영토 희망스토리> 등이 있다. 65세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이주하여 카페를 경영하고 있다. 지금은 산방산커피농장을 만들어서 제주형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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