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와 지속 가능성 ... 제주 로컬브랜딩의 미래

  • 등록 2025.09.29 10: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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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로컬브랜딩, 길을 묻다⑤] 지원이 끝난 뒤 생존이 문제다

제주 골목상권은 경기 침체와 관광 의존 구조, 낮은 창업 생존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소비자들은 '가치소비'와 '경험'을 중시하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제주도는 민간 전문기업과 손잡고 메뉴 개발, 공간 디자인, 위생·시설 개선, 온라인 홍보까지 지원하는 '로컬브랜드 활성화 지원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기존 사업과의 중복성, 예산 투입 대비 지속 가능성, 관광산업과의 연계 효과 등은 여전히 검증이 필요하다. <제이누리>는 로컬브랜딩이 제주의 상권·관광·문화 전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앞으로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제주 로컬브랜딩은 단순히 점포 몇 곳의 리뉴얼을 넘어 외식업, 청년 창업, 전통시장, 나아가 지역 농수축산업과 관광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처음에는 눈에 잘 띄는 간판 교체와 메뉴 개편 정도로만 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소비자 경험이 달라지고 점포 정체성이 강화되면서 지역 공간 전체를 바꾸는 힘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 실험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이다. 공공예산의 지원이 끝난 뒤에도 브랜드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간 협력과 정책 체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지원 종료 이후의 성과를 살펴보면 명암이 뚜렷하다. 일부 점포는 지원 당시 언론 보도와 SNS 확산을 통해 단기간에 주목을 받고, 눈에 띄는 매출 상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사업 종료 후 1~2년이 지나자 다시 손님이 줄고, 초기 효과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한 청년 창업가는 "리뉴얼 직후에는 방송에도 나오고 손님이 북적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평일엔 텅 비는 날이 많아졌다"며 "결국 꾸준히 손님을 모으는 힘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의 체력에서 나온다"고 현실적인 벽을 전했다.

 

이 같은 고민은 지금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서도 반복된다.

 

청년창업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예비 창업자 강모씨(33)는 “창업교육 과정에서 음료 제조, 마케팅, 운영에 필요한 기초를 배웠다”며 “하지만 실제로 창업에 나선 선배들을 보면 정작 중요한 건 방송 노출이나 SNS 홍보가 아니라 손님을 꾸준히 불러들이는 브랜드의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장기적 관점을 갖고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한 곳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골과 재방문 고객을 확보하며 자리를 잡았다. '메밀밭에 가시리'처럼 프랜차이즈 확장을 염두에 두고 체계적인 브랜딩을 진행한 경우에는 당장의 매출보다는 브랜드 자산 축적이 성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사례는 로컬브랜딩이 단발적인 홍보 효과에 그칠 수 있는 위험과, 꾸준히 정체성을 강화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사이의 갈림길을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제주 기반 시트러스 전문 브랜드 '귤메달'은 로컬브랜딩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귤메달은 "당신의 귤 MBTI는 무엇인가요?"라는 자사몰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며 단순히 과일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귤을 매개로 한 스토리'를 판매하는 전략을 펼쳤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맞는 귤을 찾는 과정에서 브랜드와 감정적으로 연결됐고, 이는 곧 충성 고객으로 이어졌다. 자사몰을 통한 직접 판매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게 만들었고, 이는 오프라인 매장 매출에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귤메달은 후속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미국 벤처캐피털로부터 프리-A 시리즈 투자를 받은 데 이어, 불과 두 달 만에 또 다른 후속 투자를 이끌어냈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레드닷 본상 수상은 브랜드 혁신성과 제품 경쟁력을 동시에 증명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협업해 제주 한정판 티셔츠를 선보였는데 출시 직후 품절되며 '기념품보다 더 제주다운 기념품'이라는 입소문을 탔다.

 

감귤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은 단순한 패션 제품을 넘어 '제주다움'을 담아낸 글로벌 아이템이 되었고, 이는 로컬브랜드가 지역을 넘어 세계 시장과 패션·디자인 산업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성과만큼이나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다. 현재 제주 로컬브랜딩은 도정, 대학, 공공기관 등 여러 주체가 각기 다른 사업을 추진하면서 초기 창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업별로 분산된 구조는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특정 점포가 동시에 여러 지원을 중복으로 받기도 하고, 반대로 지원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점포도 생기는 '중복과 사각지대'가 함께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제주시 건입동 서부두명품횟집거리 대진횟집 곽동영 업주는 "지원사업 덕분에 가게 홍보도 할 수 있었지만 이후는 결국 우리 힘으로 버텨야 했다"며 "제주에 맞는 로컬 창업 생태계가 자리잡으려면 잘된 사례뿐 아니라 실패한 경험도 공유돼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 창업가들이 같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 협력 모델 또한 양면성을 가진다. CJ프레시웨이나 글로벌 패션브랜드처럼 전국구 파트너와 손잡는 것은 판로와 마케팅 확장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자칫 로컬 고유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귤메달처럼 로컬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외부 협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년, 상인, 전문가 세 주체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더욱 입체적인 과제가 드러난다. 청년 창업가들은 홍보 역량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동문시장 청년몰 쳥년대표들은 "메뉴와 공간은 잘 만들었는데 알릴 방법이 없다. 결국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힘이 없으면 오래 버틸 수 없다"며 "공동 마케팅 플랫폼 같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기존 상인들은 상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청년몰만 살린다고 시장이 살아나는 게 아니다. 전통시장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 도민과 관광객이 모두 찾을 수 있는 연결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청년들은 정책적 체계화를 주문했다.

 

제9기 청년참여기구 청년위원 일자리 2분과는 "중앙, 지방, 대학, 기관이 제각각 지원하는 구조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며 "총괄 플랫폼과 장기적 로드맵이 있어야 하고, 실패 사례도 기록해 다음 세대가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외 사례도 시사점을 준다. 일본 가고시마는 지역 특산품을 기반으로 한 '식문화 관광'을 제도화해 농가와 외식업이 동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영국 브리스톨은 '독립상점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규모 브랜드들이 집단적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들 사례는 공통적으로 단발적 지원이 아니라 제도와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제주에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제주 역시 농수축산 자원과 관광 자원을 동시에 갖춘 드문 지역이지만 이 자원들을 장기 전략으로 연결하는 체계는 아직 미비하다. 귤메달 같은 브랜드가 보여주는 실험과 성과를 제도적으로 확산할 수 있을지가 제주형 모델을 만들어가는 관건이 될 것이다.

 

결국 제주 로컬브랜딩의 미래는 "사업 종료 이후에도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원이 끊긴 뒤에도 자생력을 발휘하는 브랜드, 민간 협력과 공공 지원의 균형을 찾는 구조,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모두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승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단순한 이벤트나 단기 홍보 효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주 전역의 상권 회복과 1차 산업 연계, 관광 콘텐츠 확장으로 이어지는 중장기 로컬브랜딩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귤메달처럼 제주에서 출발해 전국과 글로벌 무대로 확장하는 브랜드가 늘어날 때, 로컬브랜딩은 단순한 지원 사업을 넘어 '제주의 미래 산업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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