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여름에 많이 돌아가시는 듯 하다. 어제는 고향마을에서 어머니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교회 권사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93세의 권사님은 기력이 다하신 듯, 사진 속에서도 더 바랄 게 없으신 표정으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계신다. 상사(祥事)이신 듯, 상복을 입은 자손들의 표정 또한 평안해 보인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장례를 ‘상사’라 하는데, 보통 별 다른 지병 없이 평균수명 이상 장수하다가 잠 자듯이 죽은 경우에 쓰는 용어다. 장수의 기준은 별도로 없지만, 요즘은 80~90대 이상을 살다가 자연사했다면 호상으로 보는 편이다. 통계청의 생명표에 의하면, 2020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자가 80.5, 여자가 86.5이다. 하지만 장례식장이 너무 슬픔에 차 있는 것을 원치 않아서 고인이 생전에 '내가 지금 죽어도 호상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거나, 유족이 '그래도 괴롭지 않게 평안히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다'라고 당사자들이 말하지 않는 한, 조문객 쪽에서 먼저 ‘호상’이라 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이다. 아무리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더라도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 표현되지 않는 슬픔을 공감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분명 ‘복수극’이지만 통상적인 복수 드라마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중국 무협영화처럼 주인공이 무공을 갈고닦아 악의 최고봉을 화끈하게 짓이겨버리는 식의 복수극이 아니라 대단히 절제되고 승화된 복수극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닮았다. 알렉산더 뒤마의 후손들이 혹시 ‘표절’이라고 꼬집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인공 ‘V’가 그의 아지트에서 이비(Evey·나탈리 포트먼)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TV 화면에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 흑백영화가 돌아가고 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먼드 단테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은 원수와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V는 그의 아지트에서 그 영화를 몇번이고 되돌려보면서 절제된 복수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억울하고 불의하고 부당한 체포를 당해 끔찍한 죽음과도 같은 수감생활 끝에 극적으로 탈출한 선원 에드먼드 단테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란 새로운 신분의 ‘가면’을 쓰고 복수에 나선다. 마찬가지로 V는 ‘가이 포크스’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 태어나 복수에 나선다. 또 다른 공통점은 에드먼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 존은 태어날 때는 괜찮았지만 점점 자라면서 얼굴이나 몸통, 팔과 다리에 기형의 모습을 띠게 되어 사람들이 보면 무서워하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큰 자루에 눈구멍을 뚫어서 쓰고 다녀야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극빈자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어느 유랑 서커스단에 팔려 간다. 이마는 크게 돌출되어서 코끼리 이마를 연상하게 하고, 뒤통수는 엄청나게 불룩 튀어나왔고,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어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기괴한 모양은 머리뿐만 아니라 두꺼운 그의 오른팔과 두 다리는 코끼리의 것처럼 두껍게 부풀었고, 몸통에는 많은 혹들이 엉켜있었다. 서커스단장은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코끼리에게 밟혀서 그 형상을 하고 태어났다. 억울하게 죽은 코끼리의 영혼이 그에게 들어갔다.'와 같은 엉터리 말을 해대며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그런 신비감을 줄수록 관객들이 놀라서 더 많은 박수를 보내게 되고, 그가 등장하는 시간은 큰 인기를 얻어 서커스단에 수입을 많이 올려주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조셉 메릭 또는 존 메릭이지만 서커스 단장은 코끼리 인간, 즉 ‘엘리펀트 맨’으로 불렀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경고음이 울려댄다.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350원을 위협한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구두 개입에 나섰는데도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여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그 여파로 하반기에 반등했던 주식시장도 다시 하락했다. 실물경제도 급속히 위축되는 모습이다.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4월부터 5개월 연속 적자행진이다. 올 들어 8월 20일까지 쌓인 무역적자가 255억 달러로 사상 최대다. 이미 역대 최대 기록(1996년 206억 달러 적자)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1억 달러 이상의 무역적자가 쌓인다. 석유화학·철강·정보기술(IT) 등 주력산업의 재고도 급증했다. 이같은 금융과 실물의 복합위기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원화가치 약세(환율 상승)의 핵심 요인인 미국의 금리인상 등 통화긴축과 달러화 강세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8월 2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한국(2.50%)과 미국(2.25〜2.50%)의 기준금리 상단을 맞췄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9월에 다시 ‘자이언트스텝(금리 0.75%포인트 인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 어느날 인류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핵전쟁이 터지고야 만다. 용케 핵전쟁의 재앙을 피해간 영국은 아수라장이 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통제사회를 택한다. 과거의 망령으로 봉인했던 히틀러의 파시즘이 부활한다. 일당 독재 체제는 모든 민주적 가치를 폐기처분하거나 창고 속에 처박는다. 권력을 독점한 일당은 국민들의 총화단결을 외치고, 이를 해치는 모든 개인적인 소망과 욕구는 철저하게 매도한다. 개인적 욕구를 버리지 못하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살벌한 강제수용소뿐이다. TV를 켜기만 하면 ‘위대한 지도자’ 슈틀러와 그의 나팔수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단결과 질서를 울부짖는다. ‘국가와 전체’는 선(善)이고, 개인과 다양성은 악(惡)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분명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 속 모습이 왠지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는 낯설어야 마땅한데, 그 모습들이 익숙하기만 하다. 분명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상황과 장면일 텐데, 언젠가 어디에선가 경험했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꿈속에서 봤나 싶은 ‘데자뷔()’의 느낌이다. 기시감이 느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54분 동안의 기자회견 중 20분을 모두발언에 할애했다. 통상 모두발언은 5분 안팎으로 짧게 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이례적으로 길었다.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 폐기, 누리호 발사 성공, 민정수석실 폐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한미동맹 재건 등 집권 100일간의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머물렀다. 한국갤럽의 8월 둘째주 여론조사 결과로는 25%다. 부정 평가가 66%로 긍정 평가의 2.6배에 이른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던 시기(2016년 10월 하순)와 같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100일 무렵 지지율과 비교하면 집권 초기 소고기 광우병 논란을 겪은 이명박 전 대통령(21%·2008년 5월 31일) 다음으로 낮다. 취임 100일 무렵 지지율은 김영삼 전 대통령(83%·1993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78%·2017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62%·1998년 6월) 순서로 높았다. 윤 대통령도 낮은 지지율을
내가 얼마 안 남았다. 올해 들어 어머니가 자주 내뱉으시는 혼잣말이다. 하기야 100세의 육신, 그 무거운 장막을 지고 사시니..., 얼마나 힘이 드실까. 걷는 것, 아니 움직임 자체가 고역이지 않겠는가. 더욱이 ‘홀로 나이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쓸쓸하고 외로울 것이다. 고향마을 대포(큰개)에 조카 제이가 있을 때는, ‘대포’라는 소리만 나와도 어머니의 얼굴에 햇살같은 웃음꽃이 번졌다. 가끔은 제이가 참기름이나 소라꼬지, 자리젖 같은 것을 가지고 어머니를 찾아 왔는데,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외치는 첫 마디가 언제나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고모님, 그동안 잘 이십디강? 대포 부택이 어멍은 백두살이라도 온 동네 돌아댕기멍 정광허게 살암수다. 경 허난, 고모님도 꼭 백두살꼬지만 아프지 말곡, 효도 받으멍, 재미나게 사십서, 예!”라고. 조카의 말이 사실대로인지, 그냥 고모가 들으라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의 응답이 메아리쳐 울린다. “니가 이추룩 놀래만 와준댄 허민, 무사 백 두살꼬지만 사느니? 백 세살꼬지라도 오래오래 살아사주!” 바로 이 때부터 어머니의 목소리에 활기가 스며들고, 얼굴에도 천진스런 웃음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보여주는 가까운 미래의 영국은 ‘노스파이어(Norsefire)’라는 이름의 당이 일당독재하는 지독한 파시스트 독재국가로 변해 있다. ‘Strength through Unity Unity through Faith(단결을 통한 힘 충성을 통한 단결)’이란 노스파이어당의 구호가 런던 시내의 모든 곳을 점령하고 있다. ‘히틀러’의 이름을 닮은 아담 슈틀러라는 ‘총통’이 유일정당인 노스파이어당과 국가를 동시에 장악한다. 슈틀러는 연설 스타일도 히틀러의 오마주다. 영국의 왕정도 끝났는지 왕조차 보이지 않는다. 히틀러의 재림 격인 슈틀러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 가치인 ‘안전’ ‘질서’를 위해 ‘자유’ ‘인권’과 같은 다른 가치들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안전과 질서 외 다양한 가치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다른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정치적 반대자들은 수용소에 격리된다. 히틀러와 슈틀러는 ‘진시황제의 아이들’이기도 하다. 진시황제는 법가사상서와 농사, 점복占卜에 필요한 책을 제외한 모든 ‘쓰잘데기 없는’ 책들을 불태워버리고, 그 ‘쓰잘데기 없는’ 이론들을 콩이야 팥이야 따져대는 선비들을 파묻어버렸다. 가히 파시즘의 태두라 부를 만하다. 파시스
외신들이 한국의 폭우 피해를 전하면서 ‘반지하’ 주거 형태에 주목했다. 영어로 ‘semi -basement(준 지하실·절반 지하층)’ ‘under ground apartment(지하의 아파트)’라고 설명하면서 우리말 발음을 알파벳으로 옮긴 ‘banjiha’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반지하가 영화 ‘기생충’의 배경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반지하 침수사고 현장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가수 싸이의 히트곡 ‘강남 스타일’에 등장하는 부촌 강남구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강남이 경제의 중심이고 개발이 잘된 곳이라는데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니 아이러니”라고.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 이중 20만849가구(61.4%)가 집값이 비싼 서울, 서울에서도 침수 피해가 잦은 관악·동작구 등지에 몰려 있다. 저소득층이 폭우 피해를 피하기 어려운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몰리고 있다는 거다. 서울시가 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기존 반지하는 10~20년 유예기간을 두어 순차적으로 없애거나 창고·주차장으로 전환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만큼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확보 등 주거안정 대책이 시급하다
1604년 영국 의사당을 폭파하려다 체포돼 끔찍한 처형을 당했던 인물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화끈한 테러’를 저지르는 영화 속 의문의 사나이는 ‘V’라는 이니셜로만 통한다. 그렇다면 V가 의미하는 건 뭘까. victory(승리), vision(미래의 제시), victim(희생자), vestige(과거의 흔적ㆍ상처) 중 하나일까.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V의 행적을 보노라면 그의 이니셜 V는 victory, vision, victim, vestige 모두가 될 수 있을 듯하다. V의 투쟁은 자유의 승리(victory)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억압된 체제에 의해 상처받은(ves tige) 희생자(victim)의 분노일 수도 있다. 다른 면에선 억압적인 체제를 부수고 진정한 자유를 향하는 비전(vision)으로 읽을 수도 있을 듯하다. 모두 V의 과격한 테러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명분들이다. 그런데 작가는 독자와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원천봉쇄하기라도 하듯 V는 victory나 vision, victim이 아니라 ‘vendetta(복수)’를 의미한다고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들어간다(V for Vendetta).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소설에
인류에게 끊임없이 괴로움을 준 질병을 말하라면 ‘관절염’을 들 수 있다. 개나 말, 소와 같은 반려동물이나 가축은 물론 들짐승들까지도 사지를 가진 동물이라면 누구나 겪는 병이기도 하다. 관절은 인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하는 곳으로 여러 질환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무리하게 사용하다 보니 닳아서 생기는 ‘퇴행성관절염’과 서서히 염증이 심해지면서 관절이 망가지는 자가면역질환인 ‘류마티스 관절염’이 대표 선수들이다. ‘내 사랑(Maudie, 2016)’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성장에 문제를 가진데다가 어린 나이에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게 되면서 걷기도 힘들고 손으로 물건을 쥐기조차 힘든 상태로 오빠와 고모로부터 박대를 받다가 나이브 화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모드 루이스(Maud Kathleen Lewis, 1903~1970)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이브(Naive) 화가란, 단어 뜻처럼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특정 미술 사조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본 자연이나 실물들을 솔직하게 그리는 화가들을 말한다. 일을 하고 싶지만 아무도 일거리를 맡기지 않아서 고민하던 모드(샐리 호킨스)는 입주해서 일할 가정부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마을에서 떨어
날씨도 무덥지만, 정치권과 정부의 국민 무시 행태는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한다.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로 급등한 물가가 서민 생활을 위협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해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한 젊은이들이 늘어난 이자 부담에 한숨을 쉰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역수지가 4~7월 넉달 연속 적자를 냈다. 불어나는 무역적자는 원화가치 하락 압력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국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나서자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졌다.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으려면 우리도 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 경제상황이 악화일로인데 경제팀은 보이지 않는다. 추석을 앞두고 물가는 더 오를 텐데 정부 대책은 유류세 인하 및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인하 외에 뾰족한 게 없다. 여당과 대통령실, 정부가 지혜를 모아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권은 이전투구에 날을 새고 정부는 헛발질 정책으로 국민 신뢰를 갉아먹는다. 교육부가 취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가 나흘 만에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폐기하겠다”고 물러섰다.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시도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