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굴, 우리가 모르는 마음의 세계가 있다. 꿈은 그 세계로 가는 왕도이다. (사진출처:구글) 아침잠에서 깨기 전 자각몽을 꾸는 경우가 종종 있죠. 경험해 보셨어요? 꿈을 꾸는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중간단계 말이에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지금 보고 경험하는 이게 꿈이라는 걸 자각한다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꿈의 내용을 통제할 수 있죠. 꿈 내용이 뭔가 이상하면 중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요. 때론 등장인물 교체나 내용 교정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조금 길게 꾼다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감독처럼 영화 한 편 제작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길게 꾸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이제 깨려고 하거나, 계속 꾸려는데 알람이 울리는 순간 자각몽은 깨지는 거죠. 지난 달 독서모임은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한나 모니어, 문예출판사)였는데, 자각몽 이야기가 나왔죠. 친구K는 그런 이상한 현상도 다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친구L도 저처럼 자각몽 경험이 있다더군요. 그 책에서 한나 모니어는 자각몽을 통해 이기는 법을 훈련하는 운동선수 예도 들었어요. 자각몽을 꾸려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자각몽이 훈련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였죠. 세
▲ somnambulism (사진출처:구글) 나뭇가지 혹은 가시에 긁힌 상처, 어디에 부딪힌 듯 멍든 자국. 이게 뭐야? 너 밤에 어디 갔다 왔어? 글쎄, 전혀 모르겠어. 그런데 자다 말고 내가 어딜 가? 하숙집 룸메이트는 이상했다. 한두 번이어야지. 그래, 오늘은 잠을 자는 척하고 지켜보자. 밤중에 이 녀석이 도대체 어딜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아야겠어. 크게 배어먹힌 달이 은은한 밤이었죠. 어디선가 야옹 고양이 소리만 스산하게 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녀석이 갑자기 부스럭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거예요. 어디로 가는 거지? 가만히 방문을 열고 숨죽여 지켜봤지요. 아, 글쎄 창고에서 웬 삽을 들고 나오는 거예요. 뭐, 뭐야. 조용조용 뒤를 밟아 따라 갔지요. 둔한 녀석이 걸음은 왜 저리 빠른지요. 동네 어귀를 지나 산으로. 겁이 바짝. 으악. 공동묘지 쪽 아냐? 엊그제 묻은 묘지 앞에 우두커니.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 거예요. 앗, 들켰을까. 잽싸게 돌담에 바짝 붙었죠. 두근두근. 아 글쎄 그 녀석이 삽질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왜 저러는 거야. 무서워. 발소리를 죽이고 가만가만 내려오다 걸음아 나 살려라 달음박질을 쳤습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등 선출직 공무원이 동문회나 어떤 단체가 주관하는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와서 돌아다니며 인사하고 악수도 청하잖아요? 다음 선거 어장관리, 아니 유권자관리 차원에서 말이에요. 언제나 활짝 웃는 얼굴이죠. 평소 억하심정이 없는 한 그 웃는 얼굴에다 대고 “여보쇼, 당신 언제 날 봤다고 실실 쪼개는 거요?”라고 한다면 너무 거시기 하잖습니까? 미소근육을 움직이는 신경경로에는 불수의적 경로(진정한 미소)와 수의적 경로(“웃는 표정을 지어야지”)가 있습니다. 코미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 경우나 귀여운 아기 사진을 보며 빙긋 미소 질 때, 문뜩 반가운 친구를 만나 웃게 될 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될 때는 불수의적 신경경로입니다. 불수의적 경로의 미소인지, 수의적 경로의 미소인지 어떻게 구별 하냐고요? 안륜근(눈둘레근, Orbicularis oculi m.)의 수축 여부를 보세요. 불수의적 경로의 미소는 대광대근(큰광대뼈살, Zygomatic m, greater)은 물론 안륜근이 분명하게 수축 됩니다. 진정한 미소라는 증거에요. 하지만 수의적 경로는 대광대근만 수축될
모든 행동은 뇌 활동의 생성물이다.우리가 느끼는 감정 또한 그러하다.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뇌는 왼쪽 오른쪽 짝을 이룬 반구로 구성됐다. 오래 전부터 각 반구의 기능차이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있었고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같은 구성체(예를 들어 편도체)라 하더라도 좌우 위치에 따른 차이도 알아내고 있다. 가령 뇌과학자 한나 모니어(『기억은 미래를 향한다』, 문예출판사)는 왼쪽 편도체가 오른쪽 것보다 더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우뇌 편도체는 주로 공포나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지만, 좌뇌 편도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도 우리가 기쁜 소식을 처리할 때 우뇌보다 좌뇌를 더 많이 사용하고, 새로운 상황을 평가할 때 비판적 반론의 대다수는 우뇌에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M씨는 뇌졸중이 있었다. 퇴원하여 많이 좋아졌지만 오른쪽 하지 마비는 호전이 조금 더디다. 우울해 보인다. 부인에 따르면 M씨는 대화 도중에 급작스레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자주 있다. 상실감이나 자기 연민으로 운다고 보기엔 좀 이상해 보인다고 말한다. 당시 대화 분위기나 정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뇌졸중 이후에 많은 환자들은 우울병 증상을 보인다. 뇌졸중후우울병(po
<기억은 미래를 말한다>(한나 모이어, 마르틴 게스만 지음, 문예출판사)를 읽었는데요. ‘뇌과학과 철학으로 보는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부제인데 인간에게 기억이 갖는 의미에 대해 방점을 둔 책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뇌과학보다는 철학에 더 무게를 실은 거죠. 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최근에는 모든 정신현상을 뇌의 물리적 작용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게 대세지요. 가령 해리장애는 해마(hippocampus)와 언어표현 영역(Broca's area)에 활성저하가 돼 있다, 뇌피질의 단절과 관련이 있으며 언어생산 등 고위 인지기능이 방해받고 있다, 이런 형태로 말이죠. 인간 이해에 생물학적 접근도 중요합니다만 그 부분만 강조하다보면 어떤 결핍감을 느끼게 되요. 전체로서 사람이 어딘가 소외되는 느낌이랄까. 그 사람만이 갖는 경험, 비슷한 경험에 대한 그 만의 생각과 감정, 등 개인의 독자성과 독자적 가치는 구석 자리로 내몰려 소외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요. “네 뇌의 물리적 현상에 관심이 있지, 네겐 관심 없어.” “얘가 정신적 충격으로 넋이 나갔어.” 종종 그런 말을 하잖아요. 오늘은
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생각한 것보다는 언제나 빨리 찾아오지요. 그 날이 내일이 될 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여기’ 삶이 황금보다도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라고 말하지요. “살고 싶지 않아요.” 사는 게 괴롭고 힘들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살을 생각한다고 짐작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라면 “야, 죽을 바엔 차라리...”로 시작되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실제 자살을 한 경우도 사후에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다른 모습의 삶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왜 죽을 생각을 하냐고요. ‘터널 시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울병 환자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터널에서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볼 수 있는 풍경이 한정되지요. 터널 밖으로 나와야 전체풍경이 다 보이잖아요? 우울병 환자는 터널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방향과 풍경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진실의 한 부분일 겁니다. 문제는 오로지 그 부분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 사진에서 보이는
“누구라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그는 밉상이다. 아주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그가 모난 성격장애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런 부분은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학교나 직장, 친구 사회에선 그렇지 않은데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 등 사적이고 특별한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모양이 정신치료 진료실에서 재현되는 경우가 있어요. 역할놀이처럼 말이죠. 실제 현실이 아니라 내담자의 "심리적 현실"을 바탕으로 말하는 겁니다. 가령 피해자-가해자 관계라면 그 가운데 한 역할을 치료자에게 주고 내담자는 상대역을 맡는 겁니다. 마음에 있는 가해자를 내게 투사하고 나는 그 가해자처럼 행동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얼핏 생각하면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만, 서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실제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인 A가 매 진료 회기마다 엄마를 비난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생각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태도와 말로 아동학대를 했다, 지금도 엄마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난 학대받고 있다고 말입니다. 치료자는 A가 억지 쓴다고 느끼고 이상하게 자신이
▲ 인천 초등생 살인범 A양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재판이 시작됐군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살해된 아이의 부모 심정을 헤아려보면 이런 재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B양은 살인방조인지 살인교사인지 쟁점이 되는 가운데, 살인범 A양은 <아스퍼거 증후군>인지, <사이코패스>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예전에 ‘미네르바 사건’에서도 거론됐던 진단명이지요. 아스퍼거 증후군은 전반적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s)에 속하는 하위 진단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상위범주인 전반적 발달장애를 생각해 봅니다. 전반적 발달장애는 예전에 ‘소아자폐증’이라고 불렸던 병이에요. 전반적 발달장애는 크게 사회적 발달장애, 언어와 대화의 발달장애, 행동발달의 장애 세 가지 임상양상을 보입니다. 사회적 발달장애는 대인관계 회피를 의미하는데요. 전혀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는 경우, 수동적이지만 사회적 접근을 받아들이고 구조화된 놀이상황에서는 또래관계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경우, 자발적인 사회적 접근이 일어나지만 부
▲ 「안젤리카를 구출하는 로저」 앵그르, 1819년. 로저의 창과 괴물의 입은 남녀의 성적 결합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괴물의 이빨이 창 끝에 단단히 걸린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안젤리카의 몸을 통과하여, 괴물이 넓게 벌린 입에 꽂힌다. 순간 안젤리나는 완전히 목을 뒤로 젖히고 허연 눈자위를 드러낸다. 오르가슴에 도달한 상태다. ---『성의 미학』(미와교코/진중권, 세종서적) 중에서.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저 사슬은 억압이다. 성의 억압이다. 억압된만큼 환상은 커진다. 환상에는 오르가슴과 색이 다른 쾌락이 있다. S씨는 자기 환상을 깡그리 산산조각 낸 연적(戀敵)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것일까? 6개월 전이다. 30대 중반 여성 S씨는 화가 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미혼이다. 좋아하는 외국 배우가 있다. 애도 있는 유부남이다. 2달 전에 20살 가까이 어린 여성(그 나라 연예인?)이 그를 유혹했으며 이제 그 여성과 가깝게 지낸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화가 난다. 울기까지 했다. 더 절망스러운 일은 팬 카페에 들어가 댓글들을 사전 찾아 번역하며 다 읽어보았는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희희낙락 좋은 댓글만 있다. 어쩌면
어떤 남자 알코올 중독자(나도 알코올 ‘중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오해 소지가 많은 용어다. 알코올 ‘의존’이 더 적합하다)가 술을 끊겠다며 병원에 온다. 알코올 치료하는 병원에 다니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통보를 받는 등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온 거라면 앞으로 단주 가능성 희박하다. 그는 정기적으로 병원 방문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얼마 없어 아무런 고민 없이 술 중독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제 발로 찾아온 거라면 희망이 있다. “끊으려면 얼마든지 끊지“ 그 분은 병원에 오기 전에 스스로 단주를 결심하고 시도했을 것이다. 단주가 두어 달 꽤 오래 간 적도 없진 않지만 어느 순간 다시 술 중독세계로 돌아가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아, 사람의 의지로는 안 되는 거구나“ 그걸 깨달은 단계에서 제 발로 병원을 찾았다면 훌륭한 환자다. 술 생각이 안 나게 하는 약은 없을까요. 술을 못 마시게 하는 약은 없을까요. 생물학 이론에 따라 알코올 갈망을 ‘줄이는’ 약은 나와 있지만, 약이 술 생각
“노름이 뭐 나쁜 건가?” 나쁜 게 아니지요. 노름의 어원은 ‘놀음’일 겁니다. 놀이. 놀다. 뉘앙스에서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호모루덴스 인간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 아니겠습니까. 명절에 가족끼리, 상가(喪家)에서 문상객끼리,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친목활동으로 화투 많이들 치잖아요. 화투(花鬪). 꽃들의 싸움.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도 말했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입니까? 노름도 술처럼 중독(의존)되니 그게 문제지요. 정신과에서 병적도박(Pathologic gambling)이란 진단명이 있습니다. 상위 범주는 충동조절장애에 속해요. 도박 중독자가 ‘내 언젠가...’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혹은 잃은 돈을 기어이 만회하기 위해서 영혼을 노름에 저당 잡힌 거라고요? 처음엔 그랬을지 몰라요. 나중엔 도박 그 자체, 가령 도박판에 딱 앉았을 때 느끼는 편안함, 화투나 트럼프를 쪼이는 그 느낌, 오르가즘과 유사한 그 쾌감을 잊지 못해서 결국 도박판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웬 노름 이야기냐고요? 노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행위 중독’의
눈에 보이는 현실 자체가 뇌의 해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현실이란 우리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그림자를 가지고 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우리가 서로를 ‘완벽히’ 알아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각자 다른 뇌를 가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요. 저 옛날 플라톤부터 데카르트, 칸트, 사르트르 등등 수많은 철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한없이 확장해서 철학의 불을 품어왔지 않습니까. 가소성(plasticity)이란 물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외력에 의해 형태가 변한 물체가 외력이 없어져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 물질의 성질이며 탄력성 한계를 넘는 힘이 작용할 때 나타난다.’고 설명하는군요. ‘물기가 있는 찰흙에 외부의 힘을 가하여 여러 형태로 변형시킨 뒤, 더 이상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아도 점토는 변형된 그대로의 모양을 유지한다. 추가로 힘을 가하지 않는 이상 변형된 형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찰흙의 특성과 같은 성질을 가소성이라고 한다.’고요. 정리하면 가소성은 탄력성 한계를 넘는 외부 자극에 의해 구조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된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