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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해녀항일운동 주도 ... 해녀조합의 수탈과 착취에 항거

 

일제강점기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선생이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선생을 ‘2022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들은 1931~1932년에 걸쳐 제주도 일대 해녀들을 중심으로 일제와 해녀조합의 수탈과 착취에 항거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강점기 여성들이 주체가 된 민족운동으로, 연인원 1만7000여 명이 참여한 제주도 최대 항일운동이다.

 

이들 모두는 제주도 구좌면(현 구좌읍) 출생으로, 부춘화 선생은 15세에, 김옥련 선생은 9세에, 부덕량 선생은 13세에 가족 생계에 보탬을 위해 어린 나이에 해녀 생활을 시작했다.

 

세 선생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함께 공부하고 근대 항일·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1930년 해녀조합의 우뭇가사리 해조류 부정판매에 항의하던 하도리 청년들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하도리 해녀들도 함께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31년 12월 일제의 해녀 착취에 항의하기 위해 세 선생은 하도리 해녀 회의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1932년 1월 12일 하도리 해녀들을 포함한 제주 일대 해녀들이 호미와 비창(전복을 따는 도구)을 휘두르며 시위를 시작했다. 세 선생은 해녀들을 규합하며 시위에 앞장섰다. 

 

세 선생은 경찰에 체포돼 미결수로 수개월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고초를 겪었다. 부덕량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28세 나이로 사망했다.

 

정부는 부춘화 선생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부덕량 선생에게는 2005년 건국포장을 각각 추서했다. 김옥련 선생에게는 2003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사업을 시작한 1992년 이래 처음으로 건국포장자로 선정된 '이달의 독립운동가'다. 제주도 출신으로도 처음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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