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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여행 (11)] 남해 관음포의 두 변수 ... 좁고 얕은 지형

 

만약 임진왜란이 서양 국가끼리의 전쟁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승전국은 패전한 침략국에 거액의 배상을 요구했을 겁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연합국은 독일에 엄청난 배상금을 물렸습니다. 그 액수와 조건이 어찌나 가혹했던지, 히틀러의 나치가 등장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어쨌든 무장강도가 내 집에 침입해서 재산을 갈취한 뒤 ‘이제 돌아갈 테니 더이상 싸우지 말자’고 하는 말을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순신도 결사반대했습니다. 백성을 짓밟은 왜군을 결코 보내줄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온적이던 진린도 이순신의 호소에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명군은 왜군의 뇌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순신의 수군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이순신의 절절한 호소에 감화된 것입니다. 그래도 일기 내용처럼 조선 수군이 포획한 왜선과 군량을 명군이 빼앗아가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졌습니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답답하고 비통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지막으로 출전(出戰)했습니다.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지(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산125번지)

 

남해 이순신 전몰 유허지에 가면 관음포가 육지로 움푹 들어간 걸 볼 수 있습니다. 육지로 들어가 있어 수심이 얕지만, 제 눈에는 관음포의 물빛이 깊은 바다의 색깔보다 더 예뻐 보입니다. 더 바다다워 보인다고 할까요? 물길이 좁고 수심이 얕다 보니 관음포에서의 전투는 종종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관음포의 지형이 다음과 같은 두가지 변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첫째, 관음포 전투의 패자는 완전히 전멸하거나, 전멸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손자가 말하는 ‘배수의 진’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관음포가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와 있어서 포위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왜군 병사들은 드디어 정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 앞바다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포위돼 버렸습니다.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처절하고 격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겠죠.

 

둘째는 착시현상입니다. 얕고 좁은 관음포는 마치 남해 바다와 육지 사이에 나있는 바닷길처럼 보입니다. 넓은 바다로 나가기 위해 혈안이 돼있던 왜군이 급한 마음에 이 포구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구나 노량해전이 개시된 시간은 한겨울 새벽 4시께였습니다. 낮에도 항해하기 힘든 복잡한 지형입니다. 캄캄한 밤에는 더더욱 분간하기 힘들었겠죠. [본사 제휴 The Scoop=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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