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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 물질의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 해녀 노래 ... "이어싸나 이여싸나 ..."

 

나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과 더불어 귀향했다. 어머니 고향은 산촌 마을인 표선면 가시리이다. 현해탄을 건넌 이후 어머니가 해녀를 처음 본 것은 시집온 후였다. 그러니 해녀의 삶은 그려보지도 못했고 헤엄칠 줄도 모르니 시집살이는 오죽했을까.

 

반면 나의 장모는 대정골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해녀였다. 삼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물질 덕분이었다. 오래전부터 시행된 잠녀의료보험 덕택에 의료비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서로 다른 삶의 유형을 살아왔으면서도 두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살림살이 기질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인간은 비극에서 희망을 보고, 위기에서 기회를 얻는다. 우리 마을 해녀들은 거친 밭일과 바닷일을 하며 노래를 통하여 기운을 얻기도 한다. 해녀의 노래 역시 삶의 에너지를 스스로 얻기 위함이고 특히 노젓는 기운으로 바다물질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래서 노래는 더욱 더 힘찬 가락과 기상을 지닌다.

 

마을 바다 가까이에서 하는 곳물질 뿐만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심지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원정물질을 나갔던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누이들.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들. 해녀들이 직접 노를 저어가며 부르는 노래도 있고, 어려운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도 있다.

 

해녀들의 노래 첫머리는 주로 이엿사나 이엿사 하고 시작하곤, 끝날 때마다 이를 반복하곤 한다. 어떠한 고난도 넘어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불리고 있는 해녀 노래를 내게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있다.

 

발동선이 생긴 1970년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 되던 해녀 노래는 1989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1993년 우리 마을 출신인 안도인이 보유자로 지정 전승되어 오다, 2005년에 김영자·강등자가 보유자로 지정 되어 후배들을 키우고 있다.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호 해녀 노래 보유자를 중심으로 행원리에는 해녀 노래 보존회가 구성되어 있는 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어싸나 이여싸나 / 요 넬 젓고 어딜 가리 / 진도나 바당 항구로 나 게 / 요 네착을 심어사민 / 어신설움 절로나네 / 이여싸나 이여싸나 / 혼착 손엔 테왁 심엉 / 혼착 손엔 비창심엉 / 혼질 두질 저승길에 저승건당 말리나 강산 / 부모형제 어기여라 이별을 호곡 어리여라 / 요 산천을 이팔청춘 오랏던고 소년들아 / 이어싸나 백발보고 어어도싸나 희롱마라 / 이어싸나 소년 늙어 어어싸나 백발이야 / 이내놈은 비 나이다 해년마다 비나이다 / 소곡소곡 용왕님게 다늙어지네

 

작업도구를 챙기고 테왁망사리를 어깨에 메고 불턱을 나서는 마음 누가 알랴. 테왁에 몸을 싣고 세찬 바람과 굽이치는 물마루를 넘으며 망망대해로 나가며 흥얼거리는 한탄의 소리는 가냘프고 애잔하게 들렸을 것이다. 다음은 우도에서 불리는 노래이다.

 

우리 부모 날 낳을 적에 / 해도 달도 없을 적에 / 나를 낳아 놓았는가 / 어떤 사람 팔자 좋아 / 어떤 사람 복도 좋아 / 해녀 팔자 무슨 팔자 / 혼백상자 등에 지고 / 푸른 물속 오락가락 / 한 손에는 호미 들고 / 내려갈 때 눈물이고 / 올라올 때 한숨이네.

 

제주도 민요 중에 서우젯소리는 굿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동요 일색인 제주에서 유희요로 대표적인 노래이기도 하다. 지금도 영등굿을 할 때 신과 인간이 함께 즐겁게 노는 대목에서 이 노래 를 부른다.

 

이어사나 이어사나 / 물로야 뱅뱅 돌아진 섬에 / 삼시 굶엉 물질허영 / 한푼 두푼 모은 금전 / 낭군님 술잔에 다 들어간다 / 아 조 타 조 아.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섬이기에 제주사람들의 삶은 운명적으로 바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제주의 땅은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 버리는 뜬땅이기에 농사가 잘 안 된다.

 

그러므로 바다는 생활의 주된 터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바다 밭을 일구면서도 어려움을 이겨낸 대가로 받은 돈이 서방님의 술값에 다 들어간다 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누리기도 했던 제주여인들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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