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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일제강점기 제주도내 상설점포를 만난 외지인의 시각

 

다음날 우리 삼인(三人)은 마침 열리는 시장(市場)에 나아갓다. 우리는 이상(異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아모 것이나 물어보고 싶엇다. 그러나 그들 농촌부녀(農村婦女)들은 우리의 묻는 말에 대답(對答)하려고도 안햇다. 나종에야 알엇지만 제주(濟州)에서 보통(普通)쓰고 잇다는 수병(水甁)을 가르치며 그 용도(用途)와 가격(價格)을 물엇드니 그는 대답(對答)은 물론(勿論) 본체도 안는다. 마치 사지도 안흘 것들이 무슨 “히야까시”냐 하는 태도(態度)엇다. 알려고 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냉담(冷淡)하엿고 저윽이 반감(反感)비슷한 감정(感情)을 도발(挑發)한 것도 사실(事實)이다.

 

헐 수 없이 거름을 옴기어 계란(鷄卵)파는 부녀(婦女)의 곁에로 갓다. 한 개(個)의 값을 물엇을 때, 그는 “사꾸과?”하는 소리를 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무슨 책망(責望)을 들은 듯 머니 선노라니 곁에 섯든 “노파(老婆)”가 그것을 친절(親切)히 통역(通譯)하여준다. 그는 육지(陸地)에 다녀온 듯한 노파(老婆)엇다. “사겟느냐?”는 말이다. 우리는 사겟다고 하는 동시(同時)에 이제야 그들의 태도(態度)를 알엇는 지라.

 

모든 것을 알러온 일행(一行)이니 달리 생각말고 이야기하여 달라고 하엿드니 그제야 그들은 우슴으로 대(對)하여준다. 다시 “사겟느냐”는 말을 제주(濟州)말로 하여 달라고 하엿드니 그는 벌서 숨김없는 “사투리”로 “사꾸과 햇줍지기”하며 흔연(欣然)히 아모런 의아(疑訝)없이 우리와 같이 우서댄다.

 

우리는 “닭새기”(독색기 혹(或)은 던색기로 들렷다 계란(鷄卵)이라는 말이다)를 사가지고 돌아온 일이 잇으니 그가 위선(爲先)“ 사겟느냐”고 문책(問責)하든 태도(態度)와 다음 순간 흔연(欣然)히 대(對)하주든 순박(純朴)한 태도(態度)가 다시금 생각된다(동아일보 1937년 9월 7일).

 

일제강점기 제주도내 상설점포의 거래품목은 잡화, 식료품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영업장소는 제주읍 지역이 가장 많았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활발한 영업활동을 했다. 1930년대 말에 가면서 점차 주류판매 및 생산, 보험업, 금융업, 제조업 등이 생겨나고 지역적으로도 한림, 김녕, 모슬, 서귀 등지로 확산되어 간다.

 

이들 지역의 공통적인 특징은 항구가 있어 일본과의 거래가 활발한 지역이며 일본인 거주, 일본인 공장, 일본인 어업 생산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초기 상설점포는 제주도 농촌 구매력을 겨냥하기 보다는 일본인, 혹은 일본과의 교역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소비패턴이 달라진 계층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1930년대 제주도내 상업의 특징은 외부와의 교역증가에 따른 도내 상업의 활성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점차적으로 도내 농촌의 소비증가에 따른 상설점포 영업활동의 증가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이들 점포들 중에는 잡화를 취급하는 상점이 가장 많고, 이외에도 포목상, 약종상(藥種商)이 상업활동을 하고 있다.

 

 

 

위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당시 제조업, 운수업, 금융, 보험업, 창고업 등 비교적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30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농수산물에 대한 가공업, 제조업에 집중되었지만 운송업, 보험업, 금융업 등 다양한 형태의 경제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제조업에서도 외부에서 수입해오던 양말, 식품류, 건축자재류에 대한 생산이 이루어져 수입대체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1940년대에 이르러 문화 및 오락 분야에 대한 관심과 소비도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위 표에 나와 있는 상점들처럼 당국의 허가를 받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점포와 업체 외에 제주지역 각 마을, 동네에는 ‘점빵’들이 있었고 조천, 구좌, 성산에는 산업조합과 소비조합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하도리를 포함한 동부구좌지역에서 영업을 했던 ‘동부구좌소비조합’을 소개하면, 이 소비조합은 소비절약과 일인상품 불매를 목적으로 일상용품을 구입하여 염가로 조합원에게 제공하고 소비생활의 합리화를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로 성냥, 석유, 고무신, 마늘, 옷감 등과 같은 일용품을 농민들에게 염가에 제공했다. 보다 저렴하고 소량도 판매하여 소비자인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도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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