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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몫을 챙기는 정치발판, 그들의 정치장난

‘서구의 텔레비전은 문 밑으로 스며드는 하수구와 같다.’

 

전에 <무한도전> <1박2일> <런닝맨> <나가수> 등이 하도 유명하다하여 일부러 시간 내서 봤는데(집에 TV수상기를 없앤 지 약 20년은 됐다), 보면서 바로 떠오른 건 솔제니친이 한 위의 말이었다.

 

공감하며 동감하며, 동시에 절감하며 통감한다. 하기야 모든 프로그램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TV수신료를 매달 내놓고 이것 아까워 보다보면 이것저것 보게 되는데, 위의 그런 프로로 우리는 그 소중한 나의 시간을 빼앗기고 남 놀고 남 돈 벌고 남 인기 올리는 데에 기여해줄 뿐이다.

 

이윤추구가 최대의 목적인 기업들처럼, 현대 미디어의 최고 목표는 시청률이다. 열심히 봐줬더니 광고가 많이 붙고 천정부지의 연예인 몸값이 이 시청률로 지급되니 소비자인 시청자가 이 모든 비용을 몽땅 지불하는 꼴이다.

 

이러니 미디어회사들은 순간적으로 입맛을 맞춰야하는 인스턴트식품이 되어야하고, 자극적인 조미료나 향료, 향미증진제를 만들어내야하고, 시청을 오래 끌어야하니 방부제도 첨가해야할 거다.

 

모두 우리 몸을 썩게 하는 것들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인스턴트와 같은 유해식품보다도 한 가지 더, 정신을 해친다는 사실이다. 솔제니친이 최근의 우리나라 TV를 보면, ‘한국의 텔레비전은 어떤 두꺼운 방벽도 뚫고 들어오는 파괴된 핵발전소와 같다. 한국 가정은 핵이 누출되고 있는 파괴된 핵발전소를 껴안고 산다.’라고 할지 모르겠다.

 

TV의 유해한 요인 중 가장 폐해가 큰 것은 바로 안일무사와 획일로 몰아가는 우매화이며 동질화로 인한 무감각화다. 그러나, 영악한 TV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너무나 똑똑한 TV제작자들은 결코 우매하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 착각현상도 첨가시킨다. 그러니 TV 앞에서 내가 바보가 되기보다는 똑똑한 것처럼 착각하게도 된다.

 

많은 정보를 TV로 듣고는 이것을 마치 자기 지식이나 지혜인 양 제 입으로 얘기한다. 얼마나 똑똑해 보이는가? 바로 ‘모든 국민의 윤똑똑이화!’다. 정치 얘기나 사회이슈가 되는 얘기들은 특히 그렇다.

 

「기업들이 점점 ‘차별화의 대가’가 아니라 ‘모방의 대가’가 되고 있으며,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사소한 차이를 과대평가한 나머지 끊임없이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며, 하버드대학 비즈니스스쿨의 한 교수가 이야기한다. ‘차별화의 함정’이라고 명명했다.

 

엄연히 모방임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를 했다하며 모방은 감추고 차별을 앞세우며 소비자들을 현혹하며 우롱한다. 소비자는 광고만 보고 차별로만 믿을 수밖에 없다. 매주 그 시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가 깔깔 웃으며 열심히 봐주는, 유명한 연예인이 나와서 광고하는데 믿어줘야하지 않겠는가.

 

미디어는 더 심한다. 이미 미디어의 공기능을 잊고 이윤추가가 목표인 기업이 되어버린 미디어는 ‘차별화의 함정’을 더욱 교묘하게 악용하며 소비자인 시청자를 속이고 정신까지 앗아가고 있다. 인기몰이가 그 방법이다. 하지만 인기몰이는 연예인이나 이런 따위의 미디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의 신문·TV는 대중적인 인기로 유도해 그 사람의 본질-정치적 견해나 주장 등등-에서 벗어난 별 것 아닌 행위를 부각시켜 꽤나 개그화하곤 한다. 조금만 생각해서 생각하면 그들 미디어가 띄우는 말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알 텐데도 웃고 넘기는 개그 프로그램 보듯 모방의 대가, 미디어에서 추구하는 대로 시청자 역시 모방으로 젖어든다.

 

이 ‘차별화의 함정’은 무엇보다도 대중인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게 만드는 착각이 문제다. 이것이 바로 시청자의 무감각화이다. 좀더 심하게 말하면 국민의 무뇌화이다. 최근에 그런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를 보면 한국의 한계와 후진성이 보인다.’

 

클래식음악을 틀어주는 FM라디오가 우리집의 유일한 미디어인데, 그곳에 어울리지 않게 안철수란 이름을 거론한다. 그 유명세를 얘기함인데, 방송진행자가 하는 말, 365일 1년 내내 하루도 빠진 날이 없이 특별 강의가 잡혀있다고 했다. 강의를 해본 사람이라 듣기 무척 부러웠지만 한편에선 그게 가능한가? 똑같은 말만 할 것 아닌가? 하여튼 그 강의를 듣지도 않고 비판할 수는 없었다.

 

그 유명한 안철수란 인물에 관심을 갖고 듣게 됐는데, ‘아, 이 놈(친근감이 듬뿍 섞인 긍정적인 표현이다) 봐라!’했다.

 

기껏 IT의 일 분야 기업에서 성공한 기업인이 세태비판을 하는 것을 듣고 이런 말이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서 허전했고 헛헛하기도 했다. 우연히 출판사의 후배와 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너무나도 적절한 한 마디로 나의 그 헛헛함을 채워주고 방송에 의한 방송의 잠시 정신착란을 꼬집어주었다.

 

‘안철수의 말엔 주어가 없다.’

 

비판은 하지만 모두 싸잡아서 할 뿐, 비판의 구체적 실체가 없다. TV의 개그프로그램의 대사와 같은 것이다. 개그의 목적은 웃는 것이니 웃어주면 그만이지만 사회비판을 하는 영향력 1위인 사람의 주어 없는 대사로는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IT기술자이자 기업인답지 않게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비판하고 나섰으니 정치인들에게 눈에 띄었을 것이고 정치인들도 그의 정치욕구를 그의 언행으로 눈치를 챘을 거다. ‘서울시장출마설’이 급기야 나오고 말았다.

 

다시 나는, ‘이 놈(처음과는 달리 친근감은커녕 괘씸한 마음이 들 정도의 부정적인 표현이다)이 그렇지 뭐!’그의 이력을 보니 더욱 확신이 갔다.

 

서울대 의대 졸업에 미국의 유명 비즈니스스쿨(대학원일 거다) 졸업(이수?), 잘 알다시피 보안프로그램으로 기업인으로도 성공의 길을 걷고 있고,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 1위인 안철수. 최근 모교인 서울대의 대학원원장으로 파격적인 대우로 특별채용되기도 했다.

 

웃기고 있군, 그의 이력이 이 말을 내뱉게 한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 1학기만 마치고 인도로 갔다는데 안철수와 비교하지도 못할 엄청난 성공 뒤 대학 졸업장과 더 좋은 명문대학원 졸업장을 받았던가? 빌 게이츠 역시 하버드 경영대 2년 중퇴 뒤 이 또한 안철수가 흉내나 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성공하고 나서 그의 학벌을 높이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그랬나? 가까운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떠올랐다.

 

무학의 그가 내셔널 전기를 일으키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대성공을 이룬 뒤, 인재, 특히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의 인재가 더 필요하고 요구되는 일본의 미래를 조망하며 그는 마쓰시타정경숙을 세웠다.

 

그는 안철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학벌이 형편없으며, 또 안철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업인으로써 대성공을 거둔 뒤 은퇴 후 노구의 몸을 이끌며 일본의 현재 사회비판이나 미래예측 등의 많은 강연을 소화해 낸 기업인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기업을 안철수의 나이에는 기업 하나에만 전념하며 일본 국내용이 아닌 대형 세계적 기업으로 일궈냈다. 이것만 비교하면 기업인으로써의 안철수에게서 현재에의 안주를 보게 된다. 마쓰시타는 사회비판과 사회개혁의 목소리를 키웠고 이를 정경숙이란 학교를 세우면서 실천에 옮겼다.

 

사카이야 다이치가 쓴 <일본을 이끌어온 12인물>에도 들어가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스스로를 앞세워 정치 속으로 발을 들이지는 않았다. 국민적인 영웅이었던 마쓰시타가 미디어의 천국 일본에서의 인기를 몰랐겠습니까? 이런 그도 경영자는 위대하다는 착각을 초래했다고 위의 책 저자인 다이치 씨는 지적한다.

 

일본의 경제를 세계 2위로 올려놓은 선봉의 기업인이지만 ‘경제적 동물’이라는 세계 속 일본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기도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여튼, 안철수의 서울시장출마설로 떠오른 사람의 면면을 되새김하며, ‘하물며, 그 주제에!’이 말이 나왔다.

 

이 말은 그 분야에서 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큰 자조이며 안타까움에 지르는 조소이기도 한다. 물론 압니다. 국민이 얼마나 답답하면, 특히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또 앞으로 살아내야 할 나이 20~30대등이 얼마나 갈급했으면 ‘안철수라는 허망’에 기대하고 소망하게 되었을까.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나는, 그래서, 나는, ‘안철수를 보면 한국의 한계와 후진성이 보인다.’고 하는 거다.

 

안철수만이 아니라 그를 지지한다는 이런 국민에게도 화살의 시위를 돌린다. ‘아무리 그렇다고...’이 심정이다. 왜 우리 국민은 절대 이성적이어야 할 때 이성적이지 못한지... 우리 국민은 감성만 풍부한 성격 급한 시인들만 사는 것인가? 시도 시 나름이 아니던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안철수, 그의 행보는 더욱 가관이다.

 

‘서울대 대학원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서울시장 출마라니, 있을 수 없다.’

 

‘그는 그의 입으로는 출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평소 대화와는 다른 극구 부인이 없었다. 출마에 관심 없다는 말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아니다. 출마하게 되면 무소속이 100%다.’

 

‘서울시장출마 확실’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다.’(여기까지 그의 행보가 보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2011년 9월 6일 오후다. 이 글이 책으로 나오려면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서너 달은 지나야 될 것이며, 그쯤이면 서울시장선거도 끝난 뒤다. 선거의 결과와 전혀 상관없이 지금 쓰는 글은 이 후라도 한 자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정치적인 견해를 말하는 글은 더욱 아니며, 오로지 이 책의 일부인 <나와 남을 비교하지 않는다-비교하지 않는 삶>의 일부분의 예로써 쓸 뿐이다. 아직 전혀 모를 독자들과 약속드린다.)

 

 

 

며칠 사이에 인터넷에 띄워진 기사들의 요약이다. 며칠 사이의 행보에서 안철수, 그가 보인다. 한 마디로, 뜨내기 안철수다.

 

상당수 국민들을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그의 화려한 듯한 이력 때문이다. 화려한 듯한 이력에서 보면 그는 한 곳에 머무는 듬직함이 없는, 대단히 영리한 사람이며, 이래서 영특하기도 하고 영악하기도 하다. 이 점이 그를 결국 불행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불행은 결핍에서가 아니라 풍요로부터 시작한다.’ 던 러셀의 말이, 넘침이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중국의 고사와 맞물려 동시에 그를 부정하게 한다. 또 ‘한 우물을 파라’라고 어릴 적부터 배우고 익힌 진리 같은 교훈을 이 한 사람이 뒤집고 있다. 의대는 다른 학과와는 상당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명의식이 더 요구되며 의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학과라고 여긴다. 그가 들어갔다는 서울대 의대의 자리는 그가 포기한 의사직으로 인해 어쩌면 소명의식이 강했을 장래 전도유망한 의사 하나를 잃게 한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 안철수의 뛰어난 시험능력에서 무책임이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함께 입학해 지금도 묵묵히 의사를 하고 있는 그의 동급생이 훨씬 존경스럽고 삶에 대해 소신 있어 보인다. 또 의대 졸업 후 IT분야로 옮겨 현재 기업인으로써 꽤 성공하고 있는 사실도 지적 받아야 할 것이다.

 

바뀐 IT에로의 선택에서 안철수의 기회주의적 성공열망 또는 성공지향의 맹목성까지 보인다. 왜 하필 IT일까? 서울대 법대를 나온 국악인 황병기 씨와 비교가 된다. 어쩌면 가능했을 판검사 대신 그가 가야금을 선택한 때는 국악을 우리 국민이 천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황병기 씨와 달리 안철수 씨는 그의 재능과 같은 능력을 돈벌이 분야로 선회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돈벌이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다만 그의 선택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더니 외국 유명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다시 전공하며 경영인으로써도 두각을 보인다.

 

기업을 세습 받을 재벌 2세들이나 언론 재벌 2세들의 행적과 매우 흡사하다. 인기가 쇄도하며 우리의 청년들이 그의 화려한 듯한 이력과 돈벌이 성공에 닮고 싶은 인물 1위로 올려놓았다. 그즈음, 그의 부인 속에서도 서울시장출마설은 점점 불거지고 있다. (이 쯤 글을 쓰는데 아들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가 박원순 변호사를 방금 전에 만났고 서울시장불출마선언을 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 글이 달라질 순 없다. 이미 구상한 대로 쓸 것이다.)

 

그가 이뤘다는 IT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국내용이 아닌가? 더 사업에 그의 능력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할 나이가 아닌가? 그리고, 전교 1등만 해왔다 하고 법대 등 사회과학이 아닌 의대라는 극히 특수한 분야를 전공했으며 그 이후에도 컴퓨터 앞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이다. ‘책상 맡에서만 평생’이란 말이 그에게 더 어울릴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안목이 없다고, 정치적 소신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단, 인기 하나로, 다분히 인기로 얻을 수 있는 정치에 뛰어든 그의 태도나 자세에서 나는 안철수, 그를 이렇게 단언한다.

 

‘잘난 뜨내기’ 이 말은 잘나면 잘날수록, 능력이 출중하면 출중할수록 더욱 욕으로 부풀려지는 말이다. 또, 이른 평가를 서둘러하고만 듯한 우리 국민들을 보며, 귀가 옅은 우리 국민들에게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최근(2011년 9월 6일 오후)에 들어온 기사를 보니, 안철수 씨가 서울대학이나 대학원에 강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잦다고 한다. 아들 역시 그의 강의를 무척 듣고 싶어 하는 학생에 속한다. 여기서도 역시 무책임이 보이며 인기몰이와 인기천착으로 점철된 그의 삶의 비천한 철학을 엿보게 된다. 그의 재능이 그의 욕구로 상실되고 말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는 아직 너무나 젊고 그 분야에서 더 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

 

공부로 뛰어나다싶으면 혼자 다해먹으려 하고, 다 시키려고 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급의 반장이 떠오른다. 선생이 그렇고 학부모가 그렇고 학급학생도 그렇고 본인이 더 야단이고... 이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초등학교 학급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 수준의 한국사회를 보며, ‘안철수를 보면 한국의 한계와 후진성이 보인다.’ 다시 되뇌게 된다. 

 

이런 사회에선 제3의 안철수는 또 나올 수밖에 없다. 제1의 안철수로는 이찬진인가, 이름도 가물가물한 한글과 컴퓨터의 그 사람, 한창 일할 때 정치에 뛰어들어 제 재능을 다 소진시키고만 과거의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인기는 지금의 안철수, 저리가라였다.

 

파스칼의 다음 말을 안철수나 제3~4의 안철수와 같은 재능 뛰어난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

 

「인간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제시해주지 않고 그가 얼마나 동물과 흡사한지를 너무 잘 알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인간에게 자신의 저급함을 제시해주지 않고 자신의 위대함을 지나치게 느끼게 하는 것도 역시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양쪽 모두를 그들의 눈 앞에 보여주는 것은 좋다. 인간은 자신이 짐승일 뿐이라고도, 천사와 같다고도 믿어서는 안 되며, 양쪽 모두에 대해서 무지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양쪽을 다 알아야한다. 인간은 짐승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불행한 일은 한 인간에게서 천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가 그 인간에게서 짐승을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다.」

 

나도 이런 일은 없었는지, 또 읽고 또 읽어본다.

 

‘천리마는 있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라는 중국속담으로 나를 알아봐주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하고 탓해본 적은 없는가? 모든 것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사람은 오히려 위축된다. 내가 노출되어서가 아니라 미디어에 노출된 극히 일부분의 사람과 그 사람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우리는 소침해지고 위축된다는 말이다. 반대급부가 맞을지 대리만족이 맞을지 모르지만 그러면서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짜에 마음을 주고 결국 속고 만다.

 

남과 비교하지마라, 이 말과 함께 불행은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종종 듣다. TV나 신문 같은 미디어는 남과 비교하게 만들며 그 자극으로 시청률을 높이고 구독률을 높이면서 ‘나’를 죽여가고 있다. 나는 가진 게 없는 게 아니다. 단지 남과 비교하니 적게 가진 것을 알 뿐이다. 돈 다 쥐어줘 가며 미디어에 계속 휘둘려 속고만 살 건가?

 

이제 ‘지워가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남과 비교하면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자극 받기보다는 갖자고 만하는 마음을 지워가고 남과 비교하면서 내가 좀 더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마음도 지워가는 거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삶의 모델, 멘토를 지우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집약하자는 말이다. 더욱 나다운 일에 나를 집중하자는 말이다. 파스칼이 갈파했듯이 그들이 마치 천사처럼 전지전능한 자로 부러워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양쪽을 다 안다는 것, 이러면서 지워가기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특질을 찾는 일로 집약하고 요약하게 한다. 지워가기는 나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더 찾아가는 일이다.

 

나를 찾아내어 이에 집중시키는 일이다. 더불어 차별화의 함정은 자기의 함정을 파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도 경계해야한다. 이는 눈을 어둡게 해서 나를 제대로, 적확히 볼 수 없게 만든다. 정치인 안철수 씨 역시 현대기업이 안고 있다는 문제점인 차별화의 함정을 자기 개인에게로도 빠져들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인재가 나오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불행이기도 한다. 휴렛 패커드의 공동창업자인 데이비드 패커드가 한 말을 소위 국내용 성공자인 안철수 같은 사람이 읽기를 바라며 이 글을 끝낼까 한다.

 

“자신이 이룩한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만족스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단지 좀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뿐이다.”

 

<작은 하나, 바로 실천>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듯한 나의 재능을 연필로 썼다가 하나씩 지워가기. 최종, 하나나 둘만 남겨놓기. 남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듯한 내가 부족한 점을 연필로 모두 썼다가 덜 못한 것부터 지워가며 남보다 가장 못한 하나 또는 둘만 남겨놓기. 마치 디지털카메라로 잔뜩 찍어둔 사진들을 정리하듯이.

 

필요해서 찍었지만 후에 보면 초점도 안 맞고 구도 등 어색한 사진, 중복촬영된 사진들은 놔둬봐야 용량만 차지하고 거듭 클릭으로 시간낭비만 할 뿐이다. 정리는 ‘너 자신을 알라’의 실천과정이다. 정리는, 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이기에 나를 극대화시키는 일이기도 한다. 잘났고 못난 것, 이렇게 남은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리가 되면 답은 스스로 얻게 될 거다. 순전히 나를 위한 답이 나올 거다.

 

---이 글은 오래 전에 낸 저의 책 <울지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에 빠진 글이다. 출판사의 대표가 안철수 팬이라는 이유로 이 글은 빠졌다. 지난 대선까지 치룬 한참 뒤지만 우리 국민들이 언론에 속임을 당하는 것을 수없이 보며 이 글을 이제라도 여기에 올려본다.

 

처음 정치를 시작한 지역구는 다들 알듯이 노회찬 의원이 이명박의 정치보복적 악의에 의해 빼앗긴 자리의 보궐선거로 당선된 안철수에게서 어떤 정치적 소신을 보게 되나? 정치적 도덕은? 그가 요즘 말하는 개혁 혁신? 이런 정치적 처신이 그의 정치철학을 가늠하게 하는데 그 정치성 기회적 무소신이 감히 개혁이라니?

 

또 지난 대선 때 투표하자마자 개표 결과를 보지도 않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던 안철수, 안철수의 일부 행각만 보더라도 그를 우린 평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언론이 띄운 한 사례를 든다. 주변에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가 깨끗, 청렴하다고 한다. 그 예는 언론에 의해서 각인됐을 텐데 일테면 이런 거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밤 12시에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봤다. 지나는 차도 없고 지나는 행인도 없는데, 신호를 기다리는 준법자... 알고 보니 안철수였다.’ 언론이 한 얘기다. 무조건 믿는 것도 바보가 된다. 조금만 생각해자. 언론의 저의, 속셈이 보인다. 그런 준법자라면 믿을 수 있다는 토를 다는데... 지나는 차도 없고 행인도 없는데 이런 말은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만들어진 거란 걸 바로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게 청렴·결백으로 이어지게 하는 게 바로 우리의 언론 수준이다.

 

속아서는 ‘깨끗하다’한다. 그런 수준의 준법자라면 나도 대통령감이 된다. 없는 것을 만들어 그럴 듯하게? 속여대는 언론에 속는 것도 자신을 천치로 만드는 것일 거다. 보라! 앞다퉈 박근혜를 성토하며 나서대던 언론이 지난 대선 때 박근혜에 대해 얼마나 우호적이었는지!

 

그런 자들이 돌변한 듯 언론의 정도를 걷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작태를 보며 가증스럽기까지 하더니 이제 또 이번 대선에 그 장난짓을 즐긴다. 그런 순전히 이익집단이 되어버린 언론에 그리고 그런 언론의 하수인인 방송인에 대해 이제 우린 더는 속지 말아야 한다.

 

꼭 때만 되면 언론이 만든 가상적인 인물로 국민은 혼란을 넘어 기만당하곤 한다. 이번 대선에 발을 들였다 지지도가 떨어지고 거품으로 드러나자 발빼버린 반기문. 그의 힘이었는가? 언론이 부풀려 만들어낸 거품이 거품임이 드러나자 반기문의 그 기회적인 발상은 수포로 넘어갔지만... 그 반기문으로 안 되니 이젠 안철수라는 가상-‘사실에 더 접근한 기사가 아님’으로 가상으로 보는 거다!-이 만들어지고... 그전 비슷한 ‘깨끗’ 이미지를 부각하며 그 이유로 정치에 등장했다 사라진 언론용 인물 문국현.

 

요즘 문제되는 ‘양자구도에선 누가 대통령 된다’는 보도. 오래 전이지만 중앙일보의 기자로 있던 때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중앙일보는 반짝이지만 인기몰이에 성공하는 듯한 정치인 이인제를 양자구도로 몰며 이인제를 몰아낸다. 그 신문사의 저의는 단지 이인제를 내몰기 위한 것일까?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 전략, 계략, 모략이었다.

 

결국 막상막하의 대항자인 김대중을 떨어트리기 위한 정치언론행각의 마각이었다. 몇 십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언론의 이런 작태를 이번에 국민이 정치인 박근혜에게 했듯이 앞으로 더는 그런 정치장난을 치며 자기네들의 정치적 몫이나 정치발판 등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극히 자기 문제-중앙일보와 JTBC-로 손석희 JTBC 사장은 지금 온전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믿어지나? 문재인이 말한 5기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뜯는 그 유치함에서 자연스럽게 근묵자흑을 떠올린다. 물들었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흰 집단으로 알고 있었을까? 또 대통령뽑기가 아이들 달고나뽑기 장난치듯 언론이 장난질하니 참다못해...... 이제 이쯤 해두겠다. 대통령이 되지 않아 미국인들에겐 더욱 친숙하고 더 진정한 미국 건국자로 가슴에 남아있는 프랭클린이 한 말을 대신하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지혜를 살 수도 있고 빌릴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시간과 대가를 지불하면서 그 지혜를 사려고만 한다. 여기에 우리의 비극이 있다.”(벤자민 프랭클린)  [오동명=제이누리 객원논설위원]

 

** 외부필진의 견해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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