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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국제 상인, ‘누란미녀(樓蘭美女)’이권홍의 '중국, 중국인'(89)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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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05  16: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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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서역의 누란 왕국은 기원전후 비단길에 번성했다. 교역의 중심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국도는 누란성(현 위구르 로프노르 서북 공작하(孔雀河) 북쪽 기슭)이다. “사자(使者)들이 길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낙타 방울소리가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방울의 물처럼 뜨거운 태양 속으로 증발해 버렸다.

1980년 4월 위구르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팀이 ‘새도 날지 않은 황사’ 속의 로프노르에서 탐사하다가 옛 누란 왕국의 철판하(鐵板河) 삼각주 지역에서 3800년 전의 여자 시신을 발굴해냈다. 미라 상태였다.

얼굴은 청수하고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졌으며 코가 높고 움푹 들어간 눈은 살포시 감고 있었다. 뾰족한 턱, 얇은 입술. 피부는 고동색이요 길고 긴 속눈썹, 몸에는 솜털이 나 있었다. 고고학자들이 그녀의 얼굴과 팔다리를 만져보니 탄력이 있었다. 황갈색의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땋아 어깨 위에 보풀보풀 드리워져 있었다. 머리에는 전모가 씌워져 있었다. 전모에는 기러기 깃털이 꽂혀 있었다. 상체는 직조된 모포로 감싸 있었고 가슴께 모포는 뾰족하게 깎은 작은 나뭇가지로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하체는 가공 처리된 맨송맨송한 양피로 감싸 있었다. 발은 겉에 털이 달린 모피 신이 신겨 있었다. 미라 머리 왼쪽에 짚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오른 손 아래는 나무빗이 놓여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큰 눈을 가진 금발 미녀가 생전에 건장하고 풍만했으며 용모가 단려한 중년의 부인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래서 ‘누란미녀(樓蘭美女)’라는 이름 붙였다. 문제는 그 미녀가 어떤 종족에 속하는가하는 것이었다.

 
   
 

상하이 의과대학, 상하이 자연박물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누란미녀’는 40세 전후의 나이에 고 유럽인종에 속하며 O형임이 밝혀졌다. 종족을 따지자면 학술계의 연구가들은 ‘누란미녀’가 ‘사카(Saka)족’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

사카족은 B.C.1000년대에 중앙아시아 북부, 현재의 카자흐스탄에서 남부는 파미르 고원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유목하던 인도 유럽어족이다. 중국 사료에는 새(塞)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광의로는 그리스인이 유목민 모두를 스키타이라 불렀다는 것처럼 페르시아 유목민을 사카라 불렀다.

사카족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 종족이다. 이란족에 속하며 이란어를 쓰고 기마술에 능해 유목하며 살았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에서 활동했다. 중국 서부에 살았던 사카족은 그 일부다. 서양인들은 ‘스키타이 인(Scythians)’이라 부르는데 기원전 9세기에 알타이 동쪽 지역에서 생활했다. 중앙아시아 북부에 분포됐던 부족으로 기원전 8세기 그들의 근친인 사르마트(Sarmat)인들에 의해 흑해 북쪽으로 쫓겨났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여러 번 스키타이 인을 거론했다. “스키타이 인들은 스스로 세계의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젊은 민족이라 자부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흥기했다고 한다. 당시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막한 사막에 최초로 타르기타오스(Targitaus)라 불리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타르기타오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라 한다. 전체 민족은 국왕의 이름을 근거로 하는데 스콜로토이(Skolotoi)라고 부른다(농경에 종사하는 스키타이 인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스키타이 인은 그리스 사람들이 부르는 말일 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스키타이 인들의 풍속은 특이했다고 한다. 그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은 ‘타비티(Tabiti)’다. 호머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나오는 ‘헤스티아’라고 했는데 그는 화덕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 신화 중의 최고신이며 만민의 아버지인 제우스(Zeus)와 같은 ‘파이오우스’이다. 그 다음은 ‘거이투어쉬루어스’인데 그리스 신화 중의 태양신 아폴로와 비슷하다. 그들은 돼지 이외의 여러 가축을 희생으로 삼아 제를 지냈다. 그중에서 말을 가장 중시했다. 어떤 때에는 포로를 희생으로 삼아 전쟁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인들이 스키타이 인들을 ‘사카이(Sacae)’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는 “스키타이의 사카이 인들은 높은 모자를 썼다. 모자는 곧고도 단단하며 꼭대기는 뾰족하다. 그들은 바지를 입고 본국에서 제작한 활과 단검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 ‘Sagalisi’라고 부르는 금도끼(Golden AXE 戰斧)를 지니고 다닌다. 아밀지오우이(阿米尔吉欧伊)․스키타이 인이지만 사카이라 불린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페르시아 다리우스(Darius I, BC 550 - BC 486)는 비스툰 석비에 아프가니스탄 바마얀 지역의 스키타이 인들을 ‘좋은 목장의 사카이’, 시드 다리야와 카스피 해 이북의 스키타이 인들을 ‘첨모(尖帽) 사카이’로, 흑해 이북의 스키타이 인들을 ‘대해 맞은편 기슭 사카이’라고 구분해 불렀다. ‘누란미녀’가 전모(氈帽)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면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사카이’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명칭은 ‘스키타이’의 페르시아 어를 음역한 것일 뿐이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시즈(錫支), 시즈(析支), 시앤즈(鮮支)라는 명칭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민족은 한자의 ‘정(繒, 증)’을 풀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카이(Sacae), 스키타이(Scythians), 사카(Sake, Shaka)의 명칭은 고 페르시아어 Saraqh(쓰[絲])에서 기원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쓰(絲)를 Silk(라틴어 Serica 명주실)을 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자 ‘絲’의 상고 독음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외국의 학자들은 사카인들의 명칭은 토템과 관련이 있다고 추론한다. 소련 학자 아바예프(Abayev)는 Saka를 ‘사슴’을 가리킨다고 봤고 프랑스 학자 아리․마자하리(Mazalleri A.)는 ‘개’라는 말에서 왔다고 봤다.

스키타이 인들은 중국의 실크를 서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실크로드는 두 갈래가 있었다고 보았다. 하나는 서역,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아시아에 이르는 오아시스 길과 광주(廣州)를 출발하여 해상으로 서아시아에 이르는 해양의 길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스키타이 인들이 개척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초원의 길’이 있었다. 동쪽으로 몽골 고원에서 서쪽으로는 흑해 연안까지 북위 50도 부근에 위치하던 길이다. 이 길은 오아시스 길이나 해상 로드보다도 더 오래됐다.

 
   
 

다시 말해 실크로드는 3갈래가 있다. 하나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북방 초원의 길, 중아시아 사막 지대의 오아시스 길, 남해 해양 로드. 이 3갈래 유형이 기본이었다. 그중 유럽과 아시아 초원의 길은 고비사막, 몽골 고원, 시베리아 산림지대, 남 러시아 초원을 경유하여 아랄 해, 카스피 해 연안에 이르는 길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역사 기록에 따르면 가장 먼저 열린 길이 바로 ‘초원의 길’이다. 북위 50도 전후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 지대의 동서 교통로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제4권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7세기 중엽에 그리스 시인 아리스티에야스가 스키타이 무역로를 탐험했다고 한다. 흑해 연안의 타나이스(Tanais)에서 동쪽으로 출발하여 우랄 산맥을 넘어 알타이 산맥에 도달했다. 부띠눠이에 둘레가 5.5킬로미터나 되는 그리스 식민지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장 먼 무역 지역은 알지파이(Argippaei)다. 그리스 상인이 7명의 통역을 데리고 7종의 언어로 무역했다고 했다. 스키타이 인들이 멀리 알타이 지역까지 가서 장사했다면 그들의 문화도 분명 그 일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스키타이 인들은 위구르 지역의 오아시스에 성곽을 두른 왕국을 건설했다. 중국어로 수러(疏勒)국이 그 중 하나다. ‘수러’는 스키타이어 ‘Surlaq’를 음역한 것으로 현재 위구르 카스(카슈가르[Kashgar])를 가리킨다. Surlaq와 고 페르시아어 Saraqh(絲), 라틴어 Serica(명주실)의 독음이 무척 비슷하다. 이런 까닭에 ‘수러’는 실크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수러’라고 음역한 왕국의 그리스어 이름은 ‘소그디아나가’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기원전 6세기 수러(疏勒) 인들은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Sogdiana) 지역(현재 아무다리야 강, 시르다리야 강 사이의 제라프샨[Zeravshan] 강 유역)에 건국했다. 수도는 아프라시아브(현 사마르칸트[Samarqand])였다. 소그드 인들은 상업에 능통했다. 중국 실크 무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중국 내지까지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동로마 제국, 남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고비사막 이북지역이 활동 무대였다. 실크로드에 있는 타림 분지, 하서주랑(河西走廊)에서 장안, 낙양까지 소그드 인들이 거주했다. 이 소그드 인이 바로 스키타이 인들의 한 부류이다.

오랫동안 스키타이 인들은 실크로드의 국제 무역을 담당하던 국제 무역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전파자였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민족이다. 원고 시기 그들은 중국의 정치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문화의 한 주류를 이루는 민족이라 할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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