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중.일전쟁에 고심하던 일본의 선택, 그리고 일본이 갖지 못했던 기술

바다, 즉 해양을 향해 발전산업을 고심하는 엔지니어로서 궁금해하던 게 있었다. “왜 일본은 진주만을 공습했을까?”였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진주만을 공습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참전은 없었을 테고, 그리 허망하게 패망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기 관망자의 입장에서 당사자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일본은 미국에 항복하는 좌절을 겪었다.

 

이러 무모한 일을 일본은 왜 저질렀을까?

 

1930년 당시 일본의 군사 기술은 미국을 압도했다. 야마토 전함과 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 미국의 무스탕보다도 항속거리가 길며 뛰어난 전투능력을 갖춘 함상 전투기인 제로센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은 1931년 만주를 침략하고 그 여세를 몰아 1937년 중국을 침략하는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군사력을 맹신한 일본 군 수뇌부는 중국에 비해 50년 이상 앞선 과학기술로 3개월 정도면 간단히 중국을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193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함과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중국은 단 한대의 전투기도 없었다.

 

그러나 변수가 등장했다. 일본의 예상대로 주요 도시는 금세 장악했지만 넓은 면적의 농촌 등 소도시는 점령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곳곳마다 전투성격이 유격대가 들끓는 게릴라식 장기전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결국 중·일전쟁은 장기전으로 변해갔다. 중요한 군수물자인 목재와 석유는 점점 떨어져 갔다. 일본 군 수뇌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전쟁의 성패는 안정적인 군수물자 보급, 즉 목재와 석유의 안정적·장기적 확보에 달렸다. 그 해답은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 군수물자를 조달하는데 있게 됐다. 그 시절 인도차이나 반도는 무주공산이기에 쳐들어가서 깃발만 꽂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딱 한가지 문제가 떠올랐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길목에 자리잡은 필리핀-. 그게 문제였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미군 사령부가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으니 인도차이나 반도 침공에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은 중·일전쟁의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진주만을 공습해야만 했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주둔 미군의 후방지원 역할을 하는 곳이 진주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개월 만에 맥아더 장군은 호주로 피신했다. 물론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간단히 접수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됐다.

 

이 점에서 주목할 게 있다. 미국은 정말로 사소하지만 중요한 2개의 전쟁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독일이 공습을 피하기 위해 영국이 개발한 레이더 기술과 암호해독 기술이다. 영국이 미국에게 공짜로 준 레이더와 애니악 컴퓨터를 이용한 암호해독 기술이다.

 

그 결과가 미드웨이 해전이다. 1942년 일본은 진주만 공습처럼 항모 4척을 이끌고 미드웨이 섬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 이전에 미국은 암호해독기로 일본의 급습일시, 지역, 그리고 함대 규모를 간파하고 있었다. 미국은 고작 항모 2척뿐이었지만 레이더로 수평선 너머 일본 측의 동향을 훤히 꿰뜷어 보고 있었다. 선택과 집중에 따른 반격이 가능했다. 결과는 미군의 승리였다.

 

 

일본은 대패했고, 그 해역에 투입된 항모전단을 모두 잃었다. 태평양의 제해권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맥아더는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왔고 2차 세계대전은 서서히 종막을 향해 달려갔다.

 

육상전쟁과 해양전쟁은 이처럼 양상이 다르다. 거친 비유지만 사실 육상풍력발전산업과 해상발전사업도 유사한 연관관계가 있다.

 

일본 관동군이 중국을 점령하기 위해 멀리 진주만을 공습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아무리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더라도 ‘레이더와 암호해독기’에 해당하는 기술이 없다면 처참히 무너지듯 공룡기업(현대·삼성·대우)만이 아닌 기술력이 있어야 우리의 미래도 보장할 수 있다.

 

육상풍력발전에 이은 해상풍력발전의 미래-. 자세히 살펴보면 우린 반경 200km 거리에 모든 부품 제작이 가능한 기술력과 내수시장을 갖추고 있다.

 

진주만의 교훈은 조선·해양산업 이후의 차세대 산업군을 구상하는 우리에게 충분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장대현은? =현대그룹에 입사, (주)지엠비의 기술상무를 거쳐 (주)한라파워 대표를 지냈다. 2005년 아시아 첫 해상풍력발전단지를 표방했던 삼무 해상풍력발전단지 개발 초기 기술자문역이었다. 한신에너지(주)의 삼달풍력발전소장을 거쳐 현재 WPK(주)의 기술총괄 부사장, H-WIND의 기술부분 총괄본부장,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부유식 분과위원, 대한조선학회 VLFS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