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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제주] 제주이주 6년 작가생활 차영민씨 ... "제주는 내게 행운"
"어머니 간병으로 제주행 ... 편의점 알바하며 제주 이야기 풀어내"

많은 사람처럼 제주가 좋아서 온 게 아니다. 그저 스물의 젊은 나이에 부모를 따라 왔을 뿐이었다. 특별한 재능도, 특별한 목표도 없었다.

 

그 청년은 제주시 애월읍 애월파출소 앞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장장 11시간에 걸쳐 일을 한다. 이른바 '알바생'이다.

 

그리고 그 생활이 3년이 됐다. 제주에 내려온지 6년이 됐지만 그중 3년을 애월에서 밤을 지켰다. 그리고 그 새벽무렵 아님 주말에 자신의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에 담는다.

 

올해 27세의 청년 차영민씨.

 

유명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작가'다. 2012년 소설책을 첫 출간한 후 3년여만에 에세이집을 냈다. ‘효리누나, 혼저옵서예-제주로 간 젊은 작가의 알바학 개론’이 에세지집 제목이다.

 

애월 편의점에서 보낸 3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편의점에서 만난 수많은 인간군상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휴먼스토리를 따뜻한 감성으로 담았다.

 

"진짜 고마워요 제 인생을 바꿔줬잖아요. 제주가 저에게는 큰 선물을 줬어요. 조금이나마 예상이라도 했으면 모르겠지만 아무런 예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쑥 제주로 온 뒤 얻은 행운이거든요."

 

그가 주저없이 꺼낸 제주에 대한 느낌이다.

 

"전 제주도를 안 좋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욱 더 제주도에 대한 글을 써야만 해요"

 

제주에 내려오지 않았으면 '작가'라는 타이틀은 물론 자신은 무엇을 잘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채 살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6년 전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간병차 가족이 제주도행을 결심했다.  다른 간병인보다는 가족이 맡아서 간병을 해야 한다는 가족회의를 마친 후 서울살이를 정리해 제주로 내려왔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어요. 시내만 보이니까 여타 다른 중소도시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하지만 택시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자 상황이 바뀌었다.

"조금 지나니까 밭하고 바다만 보였어요. 건물은 사라지고 자연만 보였어요. 그렇게 곽지에 도착했지요”

 

그는 첫 도착의 느낌을 이렇게 전한다. 편의점도 없고 슈퍼도 없는 동네에 도착한 그는 맨 먼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단다.

 

가족끼리 새로운 곳에 내려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공기 좋은 곳을 찾았고 집 값을 아끼느라 곽지까지 왔다는 설명이다. 아버지가 돈을 벌고 외아들인 영민씨의 일은 어머니의 간병을 맡는 것.

 

간병하는 일 외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친구도 없으니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공부가 재미있다고 해도 심심하고 힘들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무리 즐거워도 공부는 공부더라구요.”

 

어느 날 도서관에 온 시인을 만났다. 30분 정도 시인의 글을 타이핑 해 주는 일을 하게 됐다. 그 시인은 영민씨에게 영감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어떻게 바다를 매일 보면서 글 한 줄이 안나올 수가 있겠니?”

“바다를 매일 보면서 감성적으로 무언가 솟아나는 것을 느끼기는 했어요. 오름도 가까이 보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과 제주에도 적응하기 시작하니까 뭔가 이야기가 쓰고 싶다는 욕구가 내 안에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글쓰기는 영 '잼병'이었다. 어린시절 일기장도 못채워 매일 끙끙거리던 기억이 생생한데 무언가 글을 쓴다는게 도통 어렵기만 했다.

 

마침 도서관에서 보던 잡지에서 글을 보내서 채택되면 원고료를 준다는 내용을 보고는 매달 글을 보냈다. 몇 달만에 글이 채택이 되고 첫 원고료를 받았다. 3만5000원. 돈도 돈이지만 자신의 글이 실리는 게 재미있었다. 원고료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겠다고 결심한 시점과 알바를 하겠다는 시점은 거의 비슷한 시기.

 

"어느 출판사의 ‘나는 작가다’라는 코너에 참여하게 됐어요. 오디션식 공모전을 진행하는 것으로 매일 원고지 10매 분량을 연재해서 장편소설을 하나 완성하는 형식이었죠."

물론 최종단계에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소설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한 편의 장편소설을 마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됐다. 더구나 같은 오디션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글쓰는 방법, 맞춤법, 문장배열, 이야기 구성 등 진심어린 코멘트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글 쓰는 방법을 오롯이 배울수 있었다.

 

그 덕택인지 평소에 쓰고 싶었던 주제로 소설을 완성, 출판사에 투고를 했더니 일주일만에 연락이 왔다. 그렇게 처음 출판한 소설책이 <그녀석의 몽타주>라는 제목의 청소년 소설이다. 2012년 작가로 첫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소설책 출판 계약을 맺은 후 가족회의를 가졌다.  취미로 글을 쓸 지, 전문적으로 글을 쓸 지를 논의하는 자리를 부모님과 함께 협의하기로 한 것이다.

 

“내 청춘이 이리로 흘러가도 되는 것인지 고민했어요. 제주도에 내려오면서 일반적인 내 또래의 아이들하고는 다른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아쉽지만 공부를 하는 것보다 창조적인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영민씨는 그렇게 글쓰기와의 인연을 받아들였다. 그 때쯤 가족의 벌이도 시원찮았다. '알바전선'에 나서기로 한 것도 그 때다.

 

“마침 동네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구하고 있었어요. 예전에 PC방에서 밤 새는 알바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 밤에 일을 하면서 글을 쓰고 낮에는 필요한 일을 하면 되겠다 싶었거든요.”

 

3개월간 시한부로 시작한 야간 알바가 3년이 넘었다. 야간근무에다 11시간을 근무하니 모으지는 못해도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게 됐다.

“집세내고 밥먹고 기본생활을 하는 비용은 감당할 수 있게 됐어요.”

 

 

그는 편의점 공간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사람들의 생김새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도 필요한데 편의점은 제격인 장소거든요. 무엇보다 알바라는 존재를 사람들이 편하게 생각해요. 편의점에 오는 것도 다 내려놓고 오잖아요. 무게 잡을 필요가 없구요. 솔직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요.”

 

특히나 야간이면 그렇게 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니란다. 술 취해서 오거나 고독한 영혼들이 많이 온다는 설명. 애월에는 밤이 되면 불을 밝힌 곳은 편의점 2곳밖에 없단다.

"야간 손님들은 알바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요.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요. 갈 곳은 없고 잠을 못자면 편의점으로 오게 되요. 제가 비교적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라서 응대를 해 주면 신이나서 말을 해요. 동네 사랑방의 느낌을 주나봐요.”

 

알바는 그에게 용돈벌이가 아니다. 3년이 넘도록 알바를 한 이유다. 생계벌이니까 버틸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는 주 5일만 야간알바를 한다. 주 7일간 계속 일을 했으면 못 버텼을 것이다. 나머지 이틀은 어떻게든 밤에 잔다. 편의점에서 한가할 때와 이틀간 얻은 주말에 열심히 글을 쓴다. 

 

제주도에 살면서 느낀 감정에 대해 물었다. 물론 살기가 만만치 않은 장소였다. 환경도 다르고 인간관계도 달랐으니 한참 혈기왕성한 청년에게는 너무나 힘든 장소였다.

 

“제주사람들은 고향이 제주가 아니면 일단 벽을 치는 느낌이에요. 여기 오래 살 거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니까 그 때부터 마음의 문을 열더라구요.”

 

 

2013년이다. 애월 체육대회를 하는데 동네 형들이 찾아왔다.

 

“너 이 동네 사람이잖아. 당연히 체육대회에 나와야지.”

 

처음으로 마을체육대회의 축구경기에 참석을 하게 된 사연이자 제주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은 사소한 사건이 있는 날을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계기는 '알바'가 만들어줬다. 인정받기 전에는 투명인간처럼 분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던 그가 이제 어였한 애월 주민으로 동네 형과 친구들과 함께 친하게 지낸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젊은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블루오션이 될 수 있어요.”  도시에 치이기보다는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저도 제주에 내려왔으니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글을 쓴다는 것을 생각도 못했을 거에요. 지금쯤 다른 친구들 처럼 스펙 쌓느라 정신이 없었을 거에요. 나를 객관적으로 되돌아 보고 내가 진정 원하는게 뭔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슬슬 그는 이제 제주 곳곳을 돌아다닌다. 글 소재를 찾기 위해서다. 우도도 5년만에 가봤다. 진짜 제주도 스러운 내용에 대해 쓰고 싶어한다. 제주도에 몇 일이나 몇 달 여행하면서 겉핥기로 여행기를 쓰는 경우 말고 진정한 제주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

 

 

제주다운 것을 쓰기 위해 영민씨는 제주의 역사와 사실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찾아보고 있다고 말한다. 장기적으로 제주도 근현대사의 사건에 대해 쓰고 싶다는 포부도 밝힌다. 대신 섣불리 쓰기 힘들고 민감한 내용인데다 의도와 달리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지켜보려고 한다.

 

“제가 제주에서 살고 제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제주의 이야기를 쓰는 일은 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우선은 쉽고 가볍게 쓸 생각입니다. 청소년 이야기인데 책을 잘 안읽는 청소년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안될 것 같아요. 특히 내 책을 읽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책을 읽을 용기가 생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어린시절 책을 읽지 않던 사람으로 그 느낌을 잘 알거든요.”

 

그는 제주로 오지 않았으면 절대 글을 쓰지 않았다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문학소년도 아니었고 글쓰기에 관심조차 없었을 뿐더러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도 받지 않은 그에게 제주도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준다.

 

"배부른 이야기지만 시간이 없어 글을 못쓰는 지경이에요."

그는 투덜대며 다시 그의 '알바 거점'인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이누리=이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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